Chapter03. 울리지 않는 전화기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03

by 한자카

Chapter03.


울리지 않는 전화기


회사 주차장.

사람들이 하루를 시작할 무렵, 나는 이미 뽀송한 얼굴로 구내식당 앞에 섰다.

허기라기보다는 의무에 가까운 한 끼. 뜨거운 국과 반찬 몇 가지, 공기밥.한 그릇을 끝내자마자

식당을 빠져나왔다.


지정된 주유소로 향한다.

차창 너머로 비스듬한 햇빛이 떨어지고, 계기판의 숫자들이 정렬된다. 기름을 가득 채우고,

세차장으로 이동. 거대한 브러시가 차체를 훑을 때, 눈을 감는다. 물결이 지나가듯, 잠깐의 백색소음.


세차가 끝난 뒤, 마른 수건을 꺼낸다.

후드 열고 트렁크 덮고 사이드미러를 닦는다.

대충 슥슥 ~이게 나만의 마무리.


차 안으로 들어와 아이패드를 켠다. YouTube의 구독 목록, 늘 보던 영어 회화 채널.

오늘은 패턴 49. “Could you tell me how to get to the station?”

발음을 천천히 따라 한다. 스피커 너머 강사의 억양을 베끼듯 되뇐다. 공부도 공부지만…

이럴 때면 누군가와 짧게라도 말을 섞는 기분이 들어서, 괜히 좋다. 비록 화면 너머의

목소리일지라도, 이 정적 속에선 그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그렇게 한두 시간쯤 흘렀을까. 어느 순간, 갑갑하게 느껴진다.

아이패드를 꺼두고 차에서 내린다. 움직여야 했다.


회사를 등지고 인근 골목으로 천천히 걷는다,

의도 없이 움직이는 걸음이 오히려 마음을 식혀주듯, 사람 없는 작은 공원까지 이끌리듯 걸어가

벤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두 눈을 감는다.


점심시간.

사무실 앞 작은 공원 벤치에 혼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바람은 부드러웠지만, 손끝은 묘하게 차가운 느낌.

휴대폰 화면에 '아버지'라는 텍스트가 잠깐 올라왔다가 사라진다. 딱히 전화 온 건 아니다.

단지 멍하니 연락처를 넘기다 마주친 이름들.


지운 적 없고, 지울 수 없는 이름들. 어머니, 군대 동기, 액션선후배들. 그리고 과거 한동안

마음을 열었던 그녀의 이름이 지나간다.

‘다들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지만 손끝은 “전화하기”를 누르지 못한다.


나 자신이 지금 그들에게 들려줄 이야기, 자랑할만한 무언가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늘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그냥, 다음에, 다음에 연락하자.”

난 늘 그렇게 뒤로 미룬다. 누군가의 안부를 궁금해하지만, 그 마음을

털어놓는 게 더 무겁게 느껴지는 오후.


옆 벤치에 앉은 중년 여성이 휴대폰을 붙잡고 웃는다.

“응, 엄마 나 방금 점심 먹었어.”. 호호호

그 짧은 한마디에 왠지 더 수그러든다


그리고 혼잣말 “지금은, , 조금만 더 준비하자.”


나는 아직,

세상에 꺼내지 못한 마음을 가슴 안에 고요히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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