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04. 멍의 기술

《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04

by 한자카

Chapter 04.


멍의 기술

내비가 필요한 건 길이 아니라 나,


Inner Monologue (내면 독백)ㅡ


운전석에 앉으면 나는 멍~

아무 말도, 감정도 없는 듯한 상태. 마트든 집이든, 익숙한 길도 내비를 켜야만

겨우 도착하는 요즘.


생각은 뿌옇고, 시야는 멀어지고, 도로 위 나는 멍해진다.

가만히 돌아보면,

그 멍함은 마지막 연애가 끝난 후부터였던 것 같다.


처음엔 그저 정신이 없었고, 그러다 어느 날부터 자연스럽게 ‘생각 없음’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무감정처럼 보이는 하루였지만, 실은 그 안에 온갖 감정이 뭉쳐서 눌려 있었던 거다.


강아지들과 눈 마주치면 그 순간만큼은 따뜻하다

반갑고, 웃기고, 귀엽고, 살아 있는 느낌.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멍.


가끔,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면

갑자기, 멈췄던 말들이 마구 터져 나온다.

이건 이랬고, 나는 그랬고, 왜 그런지 모르겠다. 하소연이 폭발한다.

그러다 돌아서면 항상 또다시 멍.


‘내가 왜 그런 얘길 했지? 민망하게…’

그래도, 어쩌면 그런 폭발이라도 있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 무표정의 틈새에서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무언가를 애타게 붙잡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


멍하다는 건, 사실은 마음이 고장 난 게 아니라

천천히 스스로를 정비하고 있는 중..ㅡ


이전 03화Chapter03. 울리지 않는 전화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