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면 아무도 없는 집에 간다》ㅡ17
차는 조용하지만 빠르게 도심 속으로 향했다.
창밖은 아직 이른 어둠이 걷히는 중.
신호등은 아무도 없는 교차로 위에서 붉은 불빛을 천천히
깜빡인다. 도로는 비어 있었지만, 이른 출근을 준비하는 몇몇 차량들이
간헐적으로 스쳐갔다.
도시의 실루엣이 점점 또렷해진다.
새벽 5시 50분 1층 로비 앞.
도착한 그곳, 익숙한 그 호텔이다. 그는 정해진 동선으로
천천히 차에서 내린다. 늘 그래왔듯,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셨고
나는 그 모든 신호를 읽는다.
그의 하루는 언제나, 이곳에서 시작된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호텔이지만, 그 안쪽엔 오직 선택된 이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층이 있다. 회사 계열사가 직접 운영하는 VIP 전용 플로어. 엘리베이터는
그 층의 버튼조차 노출되어 있지 않다
보이지 않는 인증, 일반 투숙객은 알 수 없고, 직원들조차 함부로 입에 담지 않는,
고요하고 완벽하게 관리된 공간이다. 정확히 1시간 40분. 그분의 운동시간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고, 나는 어둠 속으로
내려간다.
지하 3층. 전용 주차 공간.
엔진을 끄고, 의자를 뒤로 젖힌 후 스마트폰 1시간 30분
타이머를 맞춘다. 이 시간은 나에게 허락된 익숙한 정적.
눈꺼풀이 닿기도 전, 의식은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드르르륵— 알람보다 빠르게, 진동이 먼저 깨운다.
화면을 켜자, 익숙한 번호. “1층 로비로 올라와 주세요.”
“네,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빠르게 자세를 고치고, 옷을 단정히 여민다.
로비 앞, 호텔 직원이 도어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운동을 마친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주저함 없이 로비를 가로지른다.
1층 한편에서 외국인 투숙객들이 웃고 떠들며 셔터를
눌렀지만, 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다.
소음과 시선을 가볍게 밀어낸 채, 익숙한 리듬으로 곧장
차로 다가온다.
문이 열리자 자연스럽게 뒷좌석에 올라탄다. 차 안에는
이름도 모를 그의 은은한 시그니처 향이 공간을 단숨에 장악한다.
어딘가 모르게 권위적인 그 향.
차는 조용히 본사를 향해 달린다.
차가운 정문이 눈앞에 들어올 때쯤, 나는 다시 오늘 하루의 페이스를
머릿속에 그린다. 본사 1층 도착.
차 뒷문이 묵직하게 열리고, 잠시 숨을 고르는 그.
책임의 무게를 발끝에 담아, 묵묵히 엘리베이터를 향해
걷는다.
나는 그 뒷모습을 확인한 뒤,
조용히 운전석에 앉아 재킷을 벗는다.
오늘도,
그와 나 사이의 정밀한 톱니바퀴는
한 치의 오차 없이 맞물려 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