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할머니에겐 죄책감을, 할아버지에겐 책임감을 물려받았다
엄마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다. 언니 오빠들이 너무 일찍 떠나서 어쩌다 보니 맏이가 되었다.
운명이라 순응하며 희생하고 감내한 본인의 인생을 자신이 낳은 세 자매에게까지 강요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사별 후에도 혼자서 농사지으며 일궈오신 집안에 얼마 되지 않은 땅과 재산조차 모두 아들들에게 양보하라 하였던 과거를 후회하신다.
세 자매가 아직 젊은 시절, 밑에 줄줄이 딸린 어린 동생들이 눈에 밟혀 할머니가 농사지은 쌀 한 섬, 직접 담근 고추장조차 욕심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양보하고 사는 게 당연하다 가르친 할머니의 뜻에 따랐던 것이다. 조선시대 여인(?) 밑에 자라 출가외인이 된 딸들은 본인들의 것을 내어놓을지언정 고생하는 어머니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힘들어도 감내했으리라. 100세가 넘어 귀 멀고 눈멀고 거동까지 불편한 외할머니의 때 늦은 후회와 회한이 안타까운 이유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어쩌면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위함일 수도 있다. 세 자매처럼 차라리 가난할지언정 욕심부리지 말고 소박하게 평안하게 사는 삶을 고수하라고 말이다. 바보 같고 미련해 보여도 그게 맞다 생각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그 엄마의 그 딸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