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과거는 과거일 뿐, 안 좋은 기억은 떠나보내고 좋은 추억만 남겨야겠다

by 별사색
이사, 출처:Pixabay 무료 이미지

이사를 했다. 지붕에 기와가 얹어진 낡은 집에서 신축빌라로. 갑자기 움막에서 궁궐로 업그레이드됐다. 거의 환골탈태 수준이다.


자가가 아니기에 특별히 재산이 증식된 게 아니라 비슷한 집세를 지불하고 건물과 위치가 달라졌을 뿐인데 삶의 질이 달라졌다.


오전 8시부터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짐을 옮기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침대에 누우니 밤 10시가 넘었다. 모든 짐들이 자기 자릴 찾으려면 어림 잡아도 일주일 이상 걸릴 정도로 정리할 물건들이 여기저기 집안 곳곳에 뭉쳐 쌓여있다. 멍하니 배터리가 나간 것처럼 손 하나 까닥 못할 만큼 피곤함이 몰려오자 곧장 잠자리에 들었다.


이삿짐 정리하고 치울 생각에 막막해도 새 집으로 이사 와서 너무나 좋다. 건축한 지 얼마 안 된 새집인 데다 작은 평수에도 구조나 배치 덕분에 널찍하고 쾌적하다. 특히 곳곳에 콘센트가 많아서 가지고 있는 전기용품에 넉넉하게 연결할 수 있고 핸드폰 충전할 때 빈 곳을 찾아 여기저기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서 좋다.


전에 살던 집은 2층짜리 주택으로 집주인이 1층이고 우리 집은 2층이었는데 집주인이 수시로 올라와 한참 연상인 엄마에게 큰 목소리로 반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억센 여자였다. 재래시장서 소매품 판매를 하는 사람이라 목소리도 크고 드센 성격에다 직업상 '을'로 쌓인 게 많은 건지 본디 화가 많아서인지 모르겠다. 최근 몇 개월간 히스테리가 심해지고 수시로 찾아와 별참견을 다해서 엄마를 힘들게 했다. 결국 못 견디고 계약기간이 여러 달이나 남았으나 선불로 낸 집세를 포기하고 이사하게 되었다.


평소 늘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길고양이 밥까지 챙기는 순한 엄마에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꼬투리를 잡아 '갑질'하며 괴롭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 차라리 나한테 하면 참을 수 있는데 70대 엄마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직접 봤을 땐 눈이 뒤집힐 만큼 화가 치밀었다. 결국 엄마의 만류로 계속 참다가 이사 직전 대차게 싸우고 사과 같지 않은 어색한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도 그간 말 못 하고 당한 엄마 생각에 억장이 무너진다.


게다가 집 상태는 더 심각했다. 지붕에 씌워진 기와장이 깨지고 바닥과 벽 시멘트가 금이 갈 만큼 워낙 오래된 옛날 집이어서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운 게 가장 힘들었다. 방충, 방한, 방음 등을 기대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보니 더울 땐 각종 벌레들과 동거하고 추운 겨울엔 아무리 석유보일러를 때고 창문에 뽁뽁이 등 방한처리를 해도 실내에서 털옷을 입고 있어야 할 만큼 한기와 한파에 시달려야 했다. 벽과 창문 틈새 찬바람이 끊임없이 들어오는 추위만으로도 힘든데 집주인 여자의 신경증적인 갑질이 점점 심해지니 결단을 내려야 했다. 선불로 낸 집세를 돌려주지 못하겠다는 집주인이 얄밉지만 차라리 이사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겠다 싶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하게 된 것이다.


옛날 집과 비교하면 새로 이사 온 곳은 천국이나 다름없다. 새집이라 모든 것이 다 새롭고 쾌적하고 편리하며 무엇보다 따뜻하고 아늑하다. 작은 평수라도 잘 짜인 구조와 배치 덕분에 충분히 넓게 느껴지고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한기를 느낄 수 없을 만큼 아늑하고 좋은 곳으로 이사 와서 너무나 기쁘다. 전처럼 추워서 몇 겹의 옷을 입고 이불로 꽁꽁 싸매고 잠들지 않아도 된다는 게 가장 좋다.


전에 살던 집을 떠올렸을 때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게 있다. 주택가 골목 고만고만한 2층 집들 사이에 있다 보니 시야가 탁 뜨인 마당에서 쬐는 햇볕만큼은 원 없이 누렸다는 점이다. 날이 좋으면 햇빛에 바싹 마른 수건과 옷가지들의 바삭바삭한 촉감까지 즐거웠던 기억이 남아있다. 엄마는 벌써부터 빨래 널 곳 없다고 걱정하지만 스트레스원에서 벗어나 백 번 천 번 이사 잘했다고 좋아하신다. 나 역시 집 앞에 작지만 알찬 공원이 있어 원할 때 언제든 산책할 수 있다는 게 제일 흡족하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곳에서 있었던 안 좋은 기억은 모두 떠나보내고 좋은 추억만 남겨야겠다. 부디 앞으로는 새 집에서 즐겁고 행복하고 좋은 일만 많기를 바란다. 많은 짐들을 버리고 왔음에도 정리할 물건이 언덕처럼 거실 한편에 쌓여있지만 엄마 말 마따라 전날까지 스트레스받던 상황에서 탈출(^^?) 한 것만으로도 평화와 안정을 찾아서 앞으로가 기대되고 행복하다.

내 마음속 꿈꾸는 집, 출처: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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