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란

언제 만나도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

by 별사색
친구들, 출처: Pexels 무료 이미지
우리는 사랑하는 친구들에 의해서 알려진 자들 -셰익스 피어-

1시간여를 직행버스를 타고 고교 동창 친구 집에 오랜만에 놀러 갔다. 팬데믹으로 전화 통화가 아니라 직접 만나는 건 2년여 만이다.


함께 점심으로 리소토와 파스타를 먹으며 수다의 물꼬를 틀었다. 만난 순간부터 헤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랜만이라 어색함이 찾아올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대화거리가 끊어지지 않고 샘솟았다.


천방지축 어린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는 만나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 둘 다 어른이 되고 각자의 삶을 살아온 만큼 거리가 벌어질 거라는 걱정은 휘발되고 그렇게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시 소녀 시절로 돌아간다. 말이나 행동은 좀 더 가볍고 기분도 들뜨게 된다.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평소보다 훨씬 많이 소리 내 웃게 된다.


친구 집에서 커피도 마시고 근처 호수공원에 산책도 다녀왔다. 어깨가 닿을 만큼 가깝게 붙어 걸으며 각자의 근황, 가족 이야기, 친구나 지인에 대해 또 일상의 소소한 에피소드, 최근 관심사 등등 화수분처럼 이야깃거리가 이어져 한 시간이 10분처럼 느껴졌다.


어느새 어둑해지고 저녁식사 전에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는 친구 딸이 귀가했다. 초등학생 때 보고 처음 본 거라 나를 기억하지 못해 어색해하면서도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함께 거실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데 유독 조카 생각이 났다. 호감이 있어도 표현하지 못하고 낯가리면서도 무심한 듯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조카가 떠올랐다. 친구가 준비해준 떡국 밥상에 둘러앉아 함께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싹싹 비운 뒤에야 떨어지지 않은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친구가 정류장까지 함께 나와 주었는데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배차간격이 길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30여분의 시간이 지루할까 싶었는데 못다 한 이야기로 버스가 더 천천히 오길 바랄 지경이었다.


길가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 주제는, 예상치 못한, 어쩌면 가장 속 깊게 묻어 둔 것들이었다. 지금까지 했던 얘기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한 전초전이었던 셈이다.


몇 년 전 이혼위기까지 갔었던 시댁과의 갈등, 그 이후 위기는 넘겼으나 해결되지 못한 채 앙금이 남았다는 친구의 덤덤한 말속에 아픈 속내가 읽혀 안타까웠다. 무언가 위로든 상담이든 해주고 싶었으나 경험도 식견도 부족해서 열심히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그동안 혼자 삭여야 했던 파혼 후 심경과 그로 인한 우울감 등 묻어두고 방치해 곪아가는 이야기를 하였고 현재 나의 소소한 일상과 작은 어려움들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되어 좋았다. 속이 좀 후련했다. 막힌 줄도 몰랐던 속을 뻥 뚫어주었다.

이런 대화가 속풀이 같다. 어쩌면 그냥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했나 보다. 섣부른 조언이나 뻔한 위로가 아니라.


다음에 또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다가 오늘처럼 오랜 벗과 만나 묵히고 삭인 이야기를 풀어내야겠다. 늘 그렇듯 한 숨 돌리고 다시 힘을 내 전투적으로 열정적으로 열심히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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