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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렌치 북스토어 Mar 13. 2024

여성주의 문학의 기초를 다진 20세기 실존주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와 《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는 프랑스 여성 작가들에 흥미를 갖게 만든, 개인적으로는 너무나도 흥미로운 인물이다. 그녀의 사상과 현실을 직시하는 시각, 또 그녀의 냉철함은 시간적 괴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그녀의 작품 《제2의 성Le Deuxième Sexe》은 그녀의 가치관을 집대성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고 이 작품은 여성주의 문학과 사상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남았다.






《제2의 성》, 을유문화사





《제2의 성》은 20세기 중반 프랑스에서 출판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광범위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작품 속에서 보부아르는 우리에게 여성의 삶과 경험을 깊이 있게 사고한다. 먼저 간략하게 요약하면 책은 사회적, 문화적 구조 속에서 여성이 어떻게 타자, '제2의 성'으로 취급되는지를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분석한다.


20세기는 여성의 권리와 지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하는 시기였다. 여성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여성 작가들의 문학적 기여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 시기에 활동한 많은 여성 작가 중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유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단순히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을 넘어, 여성이라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고, 성별에 대한 사회적 구성을 탈피할 것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이러한 시각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의 사상이 담긴 작품들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그녀의 이러한 행보는 여성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개인의 자유와 실존적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녀의 철학은 《제2의 성》에서 시작되었다. 책의 출판으로 인해 여성의 자기 인식과 사회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의식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녀의 작품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고, 20세기 여성주의 문학의 기초를 다졌다고 해도 크게 과장이 아닐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시몬 드 보부아르, 1946년, 파리




책에서는 모든 여성은 자신만의 명확한 운명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 집중한다. 그녀는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을 출신과 배경으로 정의하는 결정론적 시선을 배제하고, 주체적인 개체라고 정의한다. 성별에 관계없이 여성 또한 주체적이고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상의 내면에는 여성 또한 스스로의 완전한 권리와 책임을 가져야 함과 동시에 여성의 수동성과 스스로 복종하려는 가치관을 비난하는 시선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의 이러한 철학은 대학 시절 시작되었다. 보부아르는 파리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시절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를 만난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만남은 그녀의 삶과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그녀의 실존주의적 사상의 많은 부분 사르트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이후 이 두 사람은 평생에 걸쳐 동반자이자 지적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남게 된다.


그녀는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구조 속에서 억압받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고 정의했다. 여성에 대한 남다른 관점과 여성을 향한 사회적 구조가 그녀들의 자유와 개성을 발휘하는데 저해가 된다고 비판했다. 보부아르는 이러한 여성의 삶을 (남성과는) 다른 존재, 즉 타자他者라고 정의했고, 그녀는 여성이 단순히 '타자'로 정의되는 것을 거부했으며, 오히려 여성 스스로가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타자로서의
여성을
거부하다



1949년에 출판된 《제2의 성》이 여성주의 사상을 집대성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단순히 당시의 여성을 향한 여성의 관념을 사회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한다. 당시 여성이 경험했던 다양한 억압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통해 성, 역사,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의 지위를 재고하기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이 방향이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여성의 자아실현, 사회적 편견 탈피, 차별로부터의 해방이다.




《제2의 성》, original edition




그녀가 이러한 논리를 펴나가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 우선 책의 서론에서는 여성을 둘러싼 역사적 사실과 신화에 대해 탐구한다. 당시 여성에 대한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신화가 여성의 자아 인식과 사회적 지위를 형성하는데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그녀의 책에 따르면 여성을 향한, 그리고 여성 스스로가 갖고 있는 순결에 대한 집착,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요구, 또 이러한 가치관을 신성화하는 신화 속 여성의 모습들이 그녀 스스로를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은 단지
인간일 뿐이다 :
꿈은 이보다
더 취하게 만드는 것을
만들 수 없다.

- 시몬 드 보부아르 -
《제2의 성》




또, 그녀는 당대 여성을 향한 보편적인 인식을 설명하기 위해 당대 남성 작가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헨리 드 몽테를랑Henry de Montherlant에서 스탕달Stendhal(본명: Henri Beyle)에 이르기까지 당대 가장 여성혐오적인 작가부터 가장 페미니스트적인 작가까지 다섯 작가의 작품 속에서 보여지는 여성에 대한 인식을 예로 들고 있다. 그중에 특히 스탕달의 소설은 가장 여성주의적인 면이 두드러졌는데 보부아르는 스탕달의 작품이 기존 여성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편견과 부르주아 가치로부터 자유롭게 여성을 표현하고 있다며 이야기하며 '여성 또한 단순히 인간일 뿐, 그 어떠한 꿈과 상상은 이보다 더 중독적인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작품에서는 또한 성별이 어떻게 사회적 구성물로 이해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책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녀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억압적 관행과 이데올로기를 비판함과 동시에, 여성이 경험하는 결혼, 어머니로서의 역할, 성적 대상화 같은 구체적인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녀는 여성의 자유와 개인적 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 독립을 얻고, 자신의 열망과 욕구를 실현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평가했다. 여성의 해방은 단순히 법적이거나 정치적 변화를 넘어서, 개인적 차원에서의 자유와 자아실현의 문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입장이었다.




여성들의
나르시시즘,
헌신적 관계,
그리고
그녀들만의
신비주의




그녀는 또한 여성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정당화하는 가치관을 꼬집었다. 특히 여성 스스로를 향한 나르시시즘, 남녀 관계에서의 헌신에 대한 자기반성, 그리고 사랑에 대한 신비주의를 비판했는데, 이러한 관념 속에서 여성들은 스스로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자기애적 가치관으로 인해 스스로 불행한 척하고, 불평등한 현실에 불평하고,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가치관을 갖고 있는 여성은 스스로를 마치 신화 속 뮤즈처럼 신비한 존재라고 믿고 있고, 스스로를 신격화는 스스로에게 우월감과 특별한 환상에 빠지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또한 연인 관계에서 사랑은 남자와 여자가 동일한 위치에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남성에게는 연애란 하나의 선택이고, 여성에게는 연애가 완전한 자기 헌신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남성에게 헌신적인 여성은 자신에게는 냉혹할 경우가 많다'며 스스로를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존재와 무L'Etre et le Neant》에서 묘사한 요염한 여자la coquette라고 평가했다.


이 의미는 순종적인 여성이 아니라는 의미인데, 보부아르는 열정적으로 순종하는 사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녀에게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자유와 상대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 실존주의적 입장에서 남성과 여성은 모두 자율적인 존재이며, 서로의 삶을 통제하거나 구속할 수 없는 독립적인 존재라는 관점에서 남녀 관계를 바라본 것이다. 







그녀는 시민의 자유만으로는 여성 해방에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작품 마지막에 잘 드러난다. 그녀는 여성은 실제로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통해서만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썼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는 여전히 남성에게 유리하고, 여성은 대부분 억압받는 계급에 속하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녀는 직업에서의 임금 차이, 여성에게만 주어지는 도덕적 책임, 일부 여성들의 수동적인 가치관 등을 예로 들며, 이러한 사회적 구조와 사람들의 관점이 여성들의 지위를 변화시키는 주된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자유로운 여자는
이제 막 태어났다
La femme libre
est
seulement
en train de
naître

- 시몬 드 보부아르 -
《제2의 성》




그녀는 스스로를 평범하고, 작은 야망을 갖고 있는, 이미 혼자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여성이라고 정의했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언제나 주변의 남성과 심지어는 여성들에게까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에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러한 요구는 오늘 우리에게 똑같이 묻는다. 단순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로부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것을 요구받는다. 놀랍게도 100년 전 프랑스에서 시작된 질문이 우리에게까지 대답할 것을 강요한다.


보부아르는 여성들에게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갈 자유로운 여성들은 그녀의 작품과 함께 이제 막 태어났다고 말하며 작품을 마무리한다.




시몬 드 보부아르, 1945년




그녀의 냉철한 관점에도 비판적인 의견은 있었다. 일부 비평가들은 보부아르의 분석이 주로 서구 중산층 여성의 경험에 근거하고 있다며, 다양한 문화적, 경제적 배경을 가진 여성들의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특정한 사회적 계층이나 맥락에 한정되어 있어 일반화할 수 없으며, 동시에 전 세계 여성들의 다양성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강조하고,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개인적 차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 되어 왔다. 보부아르의 작품은 여성의 자기실현과 성적 평등을 추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에는 여성의 다양한 선택과 경험을 존중하고, 동반자로서의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를 모색하는데 주요한 이론적 뒷받침으로 인용되고 있다. 







보부아르는 여성의 실존적 조건과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문학적 주제로 삼아, 여성이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명료하게 풀어냈다. 그녀는 여성이 사회적, 경제적, 성적 억압을 극복하고 자신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경로를 제시하고, 이러한 관점은 여성주의 문학이 단순히 여성의 억압을 묘사하는 차원을 넘어 해방과 자유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성별 구분은 자연스러운 현성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관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면서 여성을 사회적 억압에서 탈출시켰다. 하지만 아직도 길고 긴 역사적 맥락에서부터 시작된 성적 구분은 여성을 '제2의 성'으로 만들고 있다.


현실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이러한 관점은 이후 문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심리학, 문화 연구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여성주의 문학을 탄생시키고, 많은 작가들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과 역할에서 탈피하고, 다양한 여성의 목소리와 경험을 포괄하는 작품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이론적 바탕이 되었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철학과 그녀의 작품 《제2의 성》은 여성의 권리와 성 평등을 위한 논의에 중요한 특이점에 서 있는 작품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직면한 도전과 기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작품은 여전히 이론적이고 실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당분간 여성의 자기실현과 해방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지속적인 영감의 원천이 될 거라 생각된다. 남녀평등에 대한 논의와 노력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서 제시하는 질문과 주제는 양극화된 현대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이 함께 고민하고 탐구해야 볼만 한 중요한 과제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 평등, 그리고 상호 존중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보다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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