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혐오자》 by 몰리에르
프랑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중적인 인상을 받게 된다. 분명하고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표현한다. 때로는 그 말을 듣는 상대가 불편할 만큼 날카롭고 직설적 일 때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언사에는 언제나 품격이 묻어난다. 격식을 갖춘 언어와 매너를 중요시하고, 사회적 관계에서는 우아하게 돌려 말하거나 불편한 진실을 굳이 말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에 익숙하다.
이렇게 직설성과 위선, 진심과 체면 사이의 긴장은 프랑스 문화의 대화 방식에서 오랜 시간 공존해 온 특징이다. 이러한 이중적 모습은 단순히 개인의 말하기 습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 사회가 중시해 온 솔직함(franchise)과 정중함(politesse)의 문화적 전통에서 기인한다.
프랑스에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사회적 조화와 체면을 위해 적절한 연기와 예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요구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직장에서의 공손하지만 복잡한 암묵적 규칙들, 그리고 일상적 인간관계에서의 미묘한 간접화법은 모두 이러한 문화적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 기술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얼마나 솔직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디까지가 정중함이고 어디서부터가 가식인가?"라는 물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진정성과 체면, 직설과 우회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려 노력한다.
이러한 문화적 긴장은 이미 수백 년 전 문학 작품 속에서도 생생하게 나타난다. 특히 17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극작가 몰리에르(Molière)의 대표작 《인간 혐오자(Le Misanthrope)》는 이러한 갈등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작품은 17세기 프랑스 귀족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일찍 과부가 된 셀리멘의 살롱을 무대로 그녀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알세스트를 비롯한 여러 젊은 귀족들이 경합을 벌이는 것을 주요 사건으로 다룬다.
희곡은 알세스트와 그의 친구 팔랭트의 대화로 시작한다. 알세스트는 프랑스 사회의 부패와 위선을 무자비하게 비난한다. 알세스트는 진실과 정직만이 진정한 미덕이라고 주장하지만, 팔랭트는 사회적 조화를 위해 적당한 타협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세운다.
둘의 논쟁 중간에 귀족 오롱트가 등장해서 알세스트와 자신이 쓴 소네트를 평가해 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알세스트는 그 시를 매우 혹평하면서 시인의 꿈을 포기하라고 이야기한다, 오롱트는 이에 격분해서 자리를 떠나고, 이 사건으로 알세스트는 오롱트에게 명예훼손 소송을 당하게 된다.
한편 알세스트는 아름답고 사교적인 젊은 미망인 셀리멘을 사랑하지만, 그녀가 여러 남성들과 가볍게 교류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중이다. 셀리멘은 그와 진지한 관계를 원한다고 주장하지만, 계속해서 다른 구혼자들과도 가벼운 교제를 이어간다. 아카스트나 클리탕드 같은 다른 구혼자들은 셀리멘과의 만남을 즐기고, 그녀가 퍼뜨리는 궁정 사람들에 대한 가십을 듣고 즐거워한다. 알세스트는 이들의 위선적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지만 그들은 알세스트의 말을 무시할 뿐이다.
셀리멘과 갈등 관계에 있는 아르지노에는 알세스트에게 접근하여, 셀리멘이 다른 남성들에게 보낸 연애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폭로한다. 충격을 받은 알세스트는 셀리멘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엘리앙트와 가까워지려 하지만, 엘리앙트는 알세스트에게 경솔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알세스트가 오롱트와의 소송에서 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그는 사회에 대한 환멸과 분노로 은둔 생활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 마지막으로 셀리멘에게 자신의 사랑을 시험하기 위해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셀리멘은 자신이 너무 젊어 그런 삶을 선택할 수 없다고 거절한다.
하지만 셀리멘이 다른 구혼자들에게 쓴 편지가 공개되어, 그녀에게 구애를 하던 모든 남성들은 그녀를 떠나가게 된다. 알세스트는 셀리멘을 용서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셀리멘은 알세스트와 함께 은둔 생활을 할 것을 거부한다. 결국 혼자 길을 떠나는 알세스트를 위로하기 위해 팔랭트가 그를 따라가면서 작품은 끝이 난다.
작품은 희극이라는 외형을 취하고 있지만, 외형적 단순함과는 다르게 인간 본성과 사회적 위선을 심층적으로 해부하는 철학적 작품이다. 그 중심에는 알세스트라는 독특한 인물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작품의 제목 그대로 인간 혐오자로 묘사되지만, 사실상 인간 자체를 혐오한다기보다, 인간 사회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허위의식에 대한 극도의 반감을 가진 인물이다. 알세스트는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까운 신념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체면을 차리거나 남을 배려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을 굴욕적인 행동으로 여기면서 모든 갈등이 시작된다.
알세스트의 성격은 그가 살아가는 17세기 프랑스 궁정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극명하게 충돌한다. 당시의 프랑스 궁정 문화는 겉모습의 세련됨과 언어적 유희, 수사적 기교, 사교적 태도가 중시되었는데, 진심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한 사회였다. 이처럼 화려하고 정제된 언어로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포장하는 것이 일종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알세스트는 솔직함과 정직함만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다. 그는 화려한 말장난이나 형식적인 칭찬, 그리고 사회적 관계를 위한 가식적인 언행을 철저히 거부하고, 오히려 이러한 위선적인 문화 자체를 경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알세스트의 태도는 주변 인물들과 끊임없는 충돌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친구 팔랭트의 관용적이고 외교적인 말투를 비겁하다고 비난하고, 사교계의 중심에 있는 세리멘의 표리부동한 언행에 대해서도 실망과 분노를 느낀다. 알세스트는 사회 속에서 타인과의 조화는 신경 쓰지 않는다. 개인의 신념과 도덕적 원칙을 지키는 것에 함몰되어 있다. 이렇게 비타협적인 모습은 스스로를 점점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게 된다. 누구와도 깊은 유대감을 맺지 못한 채 외로운 존재가 되어간다. 그의 철저한 정직함은 때로는 고귀한 신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인간관계의 섬세함과 복잡성을 외면하는 냉정한 태도로도 비치기도 한다.
알세스트는 종종 도덕적 이상주의자, 혹은 시대를 앞서간 진실주의자로 평가되지만, 그의 성격은 단순히 윤리적 고결함에만 기초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이라는 절대 가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되, 위선에 대한 타협 없는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그의 솔직함은 언제나 정의롭거나 타당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타인의 감정과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못한 채, 진실을 말하는 것을 무기로 삼는다. 그의 말은 상대를 위한 진심이기보다는 스스로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수단이 되어 타인을 상처 입히는 인물이 된다.
그의 내면에는 모순도 존재한다. 사회 전체의 위선을 거침없이 비판하면서도, 그는 셀리멘에 대한 감정을 놓지 못한다. 셀리멘의 모호하고 가식적인 태도를 비판하면서도 그녀 곁에 머물기를 원하고,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려 애쓴다. 알세스트는 자신이 비난하는 사회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내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알세스트는 반복적으로 사회적 갈등과 배척을 경험한다. 그는 사교적인 대화나 관습적인 인사조차 거부하며, 날카롭고 직설적인 태도로 타인과의 관계 맺기를 거부한다. 그는 자신의 이상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 타협을 거부하지만, 그 대가로 점점 더 외톨이가 되어간다. 결국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하고 거북한 존재로 인식되고,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간다. 진실을 지키려는 그의 결단은 도덕적으로는 강직하게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불화와 단절이라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알세스트는 몰리에르가 프랑스 사회에 던진 거울 같은 존재다. 그는 진실만을 말하는 인물처럼 보이지만, 그의 방식은 언제나 옳다고만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화하면서 타인을 단죄하고, 타협 없는 도덕의 잣대로 사람들을 재단한다. 이로 인해 그의 진실은 때로는 편협하고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그가 극의 마지막에 선택한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는 몰리에르가 제시한 문제의식을 집약하는 장면이다. 사회의 위선 속에서 진실을 고수하는 일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지를, 알세스트는 극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알세스트의 선택은 개인이 도덕적 이상을 실현하려 할 때, 사회 속에서 감당해야 하는 희생과 고립의 무게를 상징한다.
알세스트는 프랑스 사회, 특히 언어와 예절, 사교성과 체면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진실과 체면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몰리에르는 프랑스 사회가 오랫동안 지녀온 소통의 본질, 문화적 긴장과 갈등을 깊이 있게 드러냈다. 그리고 묻는다. “어디까지 솔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솔직함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
17세기 프랑스는 루이 14세가 절대왕정을 확립한 시기로, 왕권은 강화되고 귀족들은 베르사유 궁정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 시기의 베르사유는 단순한 정치적 중심지를 넘어, 사회적 위계와 인간관계의 방식을 규정짓는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궁정은 겉으로는 우아함과 세련됨, 그리고 고상한 예절이 넘쳐나는 곳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는 권력 투쟁과 체면 경쟁, 끊임없는 자기 연출이 존재했다. 몰리에르는 바로 이러한 궁정 사회의 양면성을 작품 속에 날카롭게 녹여냈다.
작품 속 인물들은 각자 자신이 속한 사회적 위치를 유지하고 영향력을 확장하기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언어를 포장한다. 그들의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조율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설계하는 전략적 도구로 활용된다. 대표적인 인물인 셀리멘은 젊고 매력적인 미망인으로, 여러 남성과의 관계 속에서 재치 있는 언변과 유쾌한 분위기를 통해 사교계에서의 인기를 관리한다. 그녀는 노골적으로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사람들의 기대에 맞춰 반응하는 데 매우 능숙하다. 알세스트는 그녀의 이런 태도를 가식적이고 위선적이라고 비판하지만, 셀리멘의 행동은 당시 궁정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요구되던 일종의 생존 방식이었다.
또 다른 인물인 팔랭트 역시 궁정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체화한 인물이다. 그는 갈등을 피하고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때로는 진심이 아닌 칭찬이나 동의도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는 타인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나치게 솔직한 표현보다는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언행을 택한다.
이처럼 작품은 진실보다 체면이, 솔직함보다 예절이 중시되는 사회였다. 이러한 언행은 몰리에르에게는 세련되었지만 본질적으로 위선적인 모습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에게 점잖고 예의 바른 대화가 얼마나 진정성 없고 진실하지 않게 느껴졌는지 작품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당시 언행은 권력과 지위를 드러내고 유지하는 하나의 장치로써 역할을 했다. 말의 선택, 말투, 인사법, 심지어 침묵의 방식까지도 세심하게 계산된 사회적 기호였으며,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에둘러 표현하는 수사학적 기술을 통해 대화에 임했다. 이러한 언어적 유희와 형식적인 매너는 당대 사회가 기대한 이상적인 인간상을 연기하기 위한 필수 도구였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곧 사회적 생존을 의미하던 베르사유 궁정에서는, 감정보다 겉모습이, 진심보다 말의 형태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졌다.
이와 같은 예절 중심의 문화는 단지 귀족 사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후 프랑스 전역에 깊게 뿌리내린 문화적 습속이 되었다. 프랑스 특유의 예의와 대화법은 겉으로 보기엔 세련되고 우아하지만, 그 이면에는 감정을 숨기고 긴장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방식이 보편화된 것이다. 이렇게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갈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암시적 언어로 피해 가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을 정도의 포장을 더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진심을 전달하되, 정중함과 형식을 갖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 프랑스 사회에서 이상적인 소통의 규범으로 여겨지지만, 결코 쉬운 목표는 아니다. 프랑스인들은 예의와 체면을 중시하면서도, 정직과 직설 역시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한다. 이처럼 상반되는 가치를 동시에 소중히 여기는 문화 속에서 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조율하고 균형을 맞추려 고민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프랑스인은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우아하게 말하는 기술을 기대받는다. 지나치게 직설적인 표현은 불쾌감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말의 방식과 분위기에 대한 감각은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핵심을 피하지 않되, 상대로 하여금 얼굴을 잃지 않게 하는 언어적 감각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적인 균형은 늘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예의를 지키려는 태도가 오히려 위선처럼 보이기도 하고, 반대로 지나치게 솔직한 표현이 무례하거나 공격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런 긴장은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프랑스인들은 사회적 역할에 맞는 언어와 태도를 유지하려 노력하면서도, 자신이 진심을 얼마나 담아 말하고 있는지를 늘 고민한다. 이로 인해 프랑스 사회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공손하지만 내면에서는 갈등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언어문화가 형성되어 왔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은 무례하다고 말한다. 직설적이고,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무뚝뚝함이나 오만하다 평가한다. 실제로 내부에서도 동일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솔직함과 예의라는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표현 방식을 끊임없이 조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히려 말이 지나치게 부드러우면 진심이 없다고 평가한다. 직설적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회적 충돌보다는 가식적인 말을 더욱 위험하다 말한다. 이처럼 언어의 강도와 방향을 조절하는 긴장 상태는 프랑스의 소통 문화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직설적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친절함은 공격이나 냉소가 아니라, 진심과 신념을 전달하려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동시에 정중함은 결코 단순한 격식이 아닌 관계를 존중하는 태도로써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거침없는 말투 속에는 때로는 더 깊은 진정성과 존중이 숨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