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오 영감》 by 발자크
프랑스에서 ‘성공’이란 단어는 단순히 경제적 부를 축적하거나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프랑스인들에게 성공은 얼마나 풍요롭고 조화로운 삶을 사는가 하는 삶의 질(qualité de vie)과 더 깊은 관련이 있다.
과거 한 때 성공이란 책을 사고, 미술관에 가고, 여름휴가를 떠나는 삶이라고 정의했을 만큼,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은 물질보다 문화적 여유, 지적 충만함, 인간다운 삶을 향한 균형감각에 가치를 두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시각에서 바라볼 때, 프랑스식 성공 신화는 단지 개인의 출세나 소득의 문제가 아니다. 나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삶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충실함을 동시에 만들어가는 노력에 더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돈만을 위한 삶, 혹은 경제적 성공에만 집착하는 삶을 일종의 천박한 것으로 보는 문화적 정서마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나 이상은 현실과 충돌하게 마련이다. 특히 19세기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지나 복잡한 정치적 격변 속에서, 돈은 점점 더 인간관계와 사회 구조를 지배하는 힘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부르주아 계급이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성공의 조건은 혈통에서 자본으로, 교양에서 계산으로 바뀌어 갔다. 이 시기에는 사랑조차도 사회적 자산으로 간주되어 거래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사랑은 개인적인 감정이라기보다, 신분 상승을 위한 전략, 혹은 경제적 안정과 상류층 진입을 위한 교환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돈과 사랑이 갈등하면서도 서로 불가분의 관계로 얽히는 구조 속에서, 인간의 감정은 점차 무게를 잃어 갔고, 성공의 목표는 감정을 뛰어넘는 것으로 변해 갔다.
돈과 사랑, 성공에 대한 이 복잡한 질문에 가장 강렬하고 솔직한 답을 던지는 문학 작품은 무려 200년 전에 등장했다.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은 라스티냐크라는 인물을 통해 프랑스적 성공 신화의 그림자, 그리고 그 안에서 돈과 사랑이 인간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주었다. 더욱이 이 작품은 발자크는 그가 구상한 거대한 문학 연작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 중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발자크는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통해서 개인의 욕망과 사회 구조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를 집요하고도 정교하게 그려냈다.
이야기를 따라가는 과정은 성공에 대한 야망, 돈, 사랑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어떻게 얽히고 부딪히는지, 그리고 결국 인간의 내면과 도덕, 감정까지 변화시키는지를 살펴보는 여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공을 꿈꾸는 젊은 법학생, 라스티냐크는 시골 출신으로 파리의 상류층이 가진 부와 권력, 그리고 세련된 문화에 매혹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단순한 노력이나 개인적 능력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파리 사교계의 비정한 법칙은 돈과 권력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다. 상류층 사교계에 들어가 함께 어울리는 것, 그것이 라스티냐크가 생각하는 성공이었다.
라스티냐크는 상류층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부유한 여성인 델핀(고리오 영감의 딸)과의 관계를 이용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델핀의 아버지 고리오가 자식들에게 헌신적으로 바치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이 철저히 외면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의 가치와 현실적 괴리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이 두 관계 속에서, 그는 갈등하고, 배우고, 변화하면서 결국 성공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으로서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소설은 개인의 야망과 도덕적 딜레마만을 다루지 않는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치고, 당시 젊은 세대들이 지향하는 성공을 둘러싼 인간의 심리와 윤리의 경계의 줄타기를 치밀하게 그려낸 문학적 보고서이다. 발자크는 이 작품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에 만연했던 물질주의와 위선, 그리고 그 안에서 개인이 어떻게 갈등하고 무너지는지, 그리고 또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냉철한 시선으로 그려냈다.
소설은 1819년 파리의 한 거리에서 시작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음울하고 퀴퀴한 분위기를 풍기는 곳은 보케르 부인이 운영하는 보케르 하우스라는 하숙집이다. 그녀의 하숙집에는 몰락한 중산층, 외로운 은퇴자, 젊은 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하숙집에는 몇몇 인물이 특히 주목을 끈다. 그중 한 명은 외젠 드 라스티냐크였다. 그는 가난하지만 영리하고 야망에 찬 법대생으로, 시골 출신이지만 파리 사교계에 진입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인물이다. 또 다른 한 명은 보트랭이라는 거친 말투와 투박한 태도를 지닌 수수께끼의 남자이다. 체격이 크고 존재감이 강한 그는 겉보기엔 유쾌하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고리오 영감은 혁명 시기 국수 제조업으로 큰돈을 벌었지만, 두 딸을 위해 전 재산을 내어준 후 빈털터리가 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리오가 처음 하숙집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는 부유하고 품위 있는 노인이었다. 보케르 부인은 그의 재력에 관심을 갖고 내심 혼인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고리오에 대한 오해가 생기고, 보케르 부인은 돌변하게 됐다. 그녀는 고리오에게 모욕적인 태도를 보였고, 존칭인 ‘고리오 씨’ 대신 ‘고리오 영감’이라는 경멸 어린 별명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지속적인 험담은 하숙집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고리오는 하숙집에서 조롱과 무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의 과묵하고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은 더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하숙집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방탕한 과거를 가졌다는 둥,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다는 둥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한다.
소설의 주인공 라스티냐크는 파리에서 성공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는 우연히 사촌인 보세앙 자작 부인의 무도회에 참석하면서 처음으로 파리 사교계의 화려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 자리에서 라스티냐크는 고리오 영감의 큰딸인 아나스타지 드 레스토에게 매혹되어버리고 만다. 라스티냐크는 레스토 부인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녀의 집에 방문하지만, 하숙집의 하찮은 하숙생이라는 신분을 의식하지 못한 채 실수를 저지르고, 결국 그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만다.
크게 낙담한 라스티냐크는 다시 보세앙 자작 부인을 찾아가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그녀는 레스토 부인이 고리오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면서 상류 사회에서는 감정이나 도덕보다 계산과 냉철함이 더 중요하다는 냉소적인 조언을 건넨다. 그러면서 고리오 영감의 또 다른 딸, 델핀 드 뉘싱겐에게 접근해 볼 것을 제안한다. 델핀은 은행가와 불행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외로움과 인정욕구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하숙집의 미스터리한 인물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보세앙 자작 부인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그는 상류 사회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덕이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빅토린 타유페르와 결혼을 하라고 제안한다. 빅토린은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지만, 아버지는 아들만을 편애하고 있었기 때문에 빅토린에게는 상속조차 줄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보트랭은 라스티냐크에게 한 남자에게 사주를 해서 빅토린의 오빠와 결투를 벌이게 하고, 그를 죽게 만들어 모든 상속이 빅토린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털어놓는다. 라스티냐크는 이 끔찍한 제안에 격분하며 단호히 거절한다.
그는 자신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성공을 이루겠다고 결심하지만 그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한다. 보트랭의 냉혹한 현실 인식은 라스티냐크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갈등 속에서도 결국 다시 델핀을 향한 감정을 좇아 극장에서 그녀를 만나게 되고, 자신이 그녀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착각하고는 기분 좋은 확신에 사로잡힌다.
고리오 영감은 두 딸에 대한 사랑은 더없이 깊었다. 고리오 영감은 딸들의 행복을 위해 마치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치듯, 모든 재산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기에 부를 쌓은 그의 출신 배경은 왕정복고 시대의 귀족적 가치관과는 맞지 않았다. 상류층 계급이었던 사위들은 그를 곱게 보지 않았고, 딸들을 설득해 점차 그와 거리를 두도록 만들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고리오 영감 자신도 딸들의 사회적 지위와 행복을 생각해 그런 상황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리오 영감은 딸들이 남편들에게 정서적‧경제적으로 학대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무렵, 라스티냐크가 둘째 딸 델핀에게 관심을 보이자, 고리오 영감은 두 사람이 가까워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그는 라스티냐크와 딸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두 사람을 위한 아파트까지 마련해 주며, 그들을 연결해 보려 노력한다. 그는 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큰딸 아나스타시가 남편 몰래 정부(情夫)의 빚을 갚기 위해 남편 가문의 귀중한 유산을 팔아야 한다는 고백을 한다. 이 말을 들은 고리오 영감은 자신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이게 된다. 그 충격은 결국 고리오 영감을 뇌졸중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임종의 순간조차, 그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딸들은 오지 않았다. 델핀은 끝내 방문하지 않고, 아나스타시는 너무 늦게 도착하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죽음을 앞두고, 절망과 분노, 그리고 끝끝내 사라지지 않는 사랑 사이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들의 배은망덕함을 한탄함과 동시에 라스티냐크에게 자신의 딸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게 된다. 그의 죽음 앞에서 마지막 희망은 자신이 사랑한 딸들을 축복하는 일이었다.
그의 장례식은 쓸쓸했다. 오랜 세월 모든 것을 바쳐온 딸들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대신 각자의 귀족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빈 마차만이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하숙집 하인 크리스토프와 라스티냐크만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짧은 장례가 끝난 뒤, 라스티냐크는 파리 시내가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는 언덕 위에서 도시를 바라본다. 그리고 결연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는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À nous deux maintenant, Paris!”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초 파리는, 한마디로 요동치는 사회였다. 프랑스 대혁명(1789년)이 무너뜨린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의 유산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귀족 계급의 흔적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를 빠르게 채운 것은 부르주아 계층이었다. 그들은 상공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로 새로운 계급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특히 1830년 7월 혁명(‘7월 왕정’의 시작)은 정치적 권력을 왕과 귀족에게서 자본가 계층에게로 이동시킨 전환점이었다. 오를레앙 공 루이 필리프가 왕이 되며 입헌군주제를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 정치를 주도한 것은 경제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이었다. 이들은 공직과 정치 참여, 사교계 입장권까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는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다시 말해, 피의 귀족(혈통)은 몰락하고, 돈의 귀족(자본가)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성공의 의미는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가문, 혈통, 토지 소유 여부가 개인의 사회적 위치를 결정지었다면, 이제는 돈과 그 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인간관계가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 부르주아 계층이 장악한 사교계는 곧 정치, 경제, 결혼까지 좌우하는 권력의 장이 되었고, 그 세계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은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있어도 하층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안에서, 라스티냐크는 ‘성공’이라는 목표 앞에 필연적으로 물음을 던지게 된다. 그는 시골 출신의 평범한 법학생으로 파리에 올라와 학문을 통해 성공하려 했지만, 곧 현실은 교과서나 강의실이 아닌, 사교계와 살롱, 인맥과 연줄,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권력과 영향력이 보장된 상류 계층에 오르기 위해서는, 법률 지식이나 성실함만으로는 부족했다. 그가 원하는 성공은 이제 사랑, 관계, 도덕성마저도 거래의 대상이 되는 세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발자크는 이러한 시대적 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냈다. 작품 속 파리는 치열한 경쟁과 계급 상승의 욕망이 뒤엉킨 사회적 전쟁터로 그려냈고, 젊은이들에게는 무대이자 시험대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점차 그 법칙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감정과 가치관마저 의심하게 되는 라스티냐크를 창작해 낸 것이다.
라스티냐크가 파리에서 마주한 현실은 잔혹할 정도로 명확했다. 성공은 누구나 꿈꾸지만,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통과해야 할 문턱이 있었다. 바로 돈과 사교계,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해 주는 관계와 애정의 거래였다.
그가 도달하고자 한 세계는 단순히 부유해지는 것을 넘어, 파리 상류 사회라는 상징적 권력 공간이었다. 이곳에 진입하려면 경제력뿐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세련된 태도, 인맥, 교양, 그리고 적절한 연애 관계가 필요했다. 라스티냐크는 자신의 출신 배경이나 재산으로는 그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부족한 조건을 메우기 위해 돈과 사랑을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했다.
우선, 돈은 이 세계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열쇠였다. 하지만 그가 지닌 경제력은 턱없이 부족했고, 심지어 가족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해서 빚을 얻어야 할 정도로 절박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라스티냐크가 선택한 또 다른 수단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계였다. 그는 고리오 영감의 딸, 델핀을 통해 상류층과의 관계를 맺고, 그녀의 후원과 인맥을 이용해 사교계에 들어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겉보기에는 애정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사랑은 어느새 야망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기능을 하고 있었다. 델핀 또한 라스티냐크와의 관계를 통해 젊고 매력적인 이미지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이러한 관계는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에서 성공 공식처럼 받아들여졌다. 사회적 성공을 꿈꾸는 사람에게 더욱 높고 배타적인 기준을 드리대고 있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라스티냐크가 델핀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가족에게 희생을 요구했던 것처럼, 그들의 틈에 인정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라스티냐크와 델핀의 관계는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라스티냐크는 델핀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동시에 그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위와 기회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델핀 역시 라스티냐크에게 마음을 열지만, 그의 젊음과 가능성, 순수함을 통해 자신이 잃어버린 열정을 대리 만족하려 했다. 감정은 존재하지만, 그 감정은 언제나 이익과 연결된 방식으로 표현되고 소비되고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라스티냐크 역시 이 관계가 순수한 사랑만으로 유지될 수 없다는 점을 점차 자각해 간다는 사실이다. 그는 델핀에게 애정을 느끼지만, 그것이 순수항 사랑의 감정인지, 아니면 성공에 대한 욕망이 투사된 착각인지 혼란스러워했다. 이러한 혼란은 그의 인간성과 도덕의 경계를 흔들고, 사랑조차도 수단화되는 사회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품게 만들었다.
이러한 사랑의 조건화와 전략화는 19세기 프랑스 사회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사회적 재편과 7월 왕정 시기의 계급 이동 가능성은 파리 사교계를 철저히 경쟁과 생존의 장으로 만들어 놓았기에, 이러한 변화 속에서 관계의 전략화는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 되었다.
혁명을 통해 귀족 계급의 법적 특권은 사라졌지만, 이들이 가진 가문, 품위, 전통, 교양과 같은 상징적 자본은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동시에 부르주아 계층은 산업과 금융을 통해 급격히 부를 축적하며 정치와 경제에서 실권을 잡았지만, 사교계의 입문과 사회적 인정을 위해서는 여전히 귀족 문화와 연결되어야 했다. 즉, 돈과 계급이라는 두 질서가 충돌하면서도 서로 얽혀 있는 혼종적 구조 속에서, 두 세계를 모두 활용해야만 더욱 안전하게 생존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사랑은 순수한 감정이기 이전에 사회적 자산으로 변모하는 수난을 겪어야 했다. 결혼은 신분과 재산의 결합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했고, 연애는 감정의 교류가 아닌 사회적 위치와 인간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전략적 관계로 이해되었다. 여성은 자신의 결혼과 연애를 통해 가족의 명예를 관리해야 했고, 남성은 후원자나 연인 관계를 통해 사교계에 진입하거나 계층 상승의 기회를 마련해야 했다.
델핀 역시 단순히 라스티냐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상실해 버린 젊음과 감정의 열정을 그를 통해 회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라스티냐크는 델핀의 후원을 통해 사교계에 입성하려 했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의 감정과 야망의 경계를 혼란스러워하며 내면의 분열과 윤리적 갈등을 겪게 된다.
이러한 관계는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계산적이고 비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당시의 사회 구조 속에서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발자크는 이러한 인간 군상을 통해, 사랑조차도 개인의 순수한 감정으로 남아 있을 수 없었던 시대의 잔혹한 메커니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 19세기 프랑스의 사랑은 이미 감정이 아닌 조건으로 정의된 관계였고, 그런 구조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사람들의 선택은 비판이 아닌 이해의 시선으로 읽혀야 한다.
이러한 무자비함은 남녀관계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리오는 원래 파리에서 성공한 국수 제조업자였다. 그는 막대한 부를 일궈냈고, 그것을 아낌없이 두 딸에게 쏟아부었다. 두 딸을 상류층 귀족과의 결혼을 허락한 것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뒷받침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금전을 지원한 것도 모두 딸들의 행복을 위한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고리오는 두 딸에게 사랑받기 위해 모든 것을 내주었고, 심지어 자신을 찾지 않더라도 그들의 근처에 머무르기 위해 빈민층이 사는 하숙집에 머무는 고통조차 감내했다.
그러나 딸들의 반응은 냉혹했다. 그들은 아버지의 존재를 사회적 체면을 해치는 부담으로 여겼다. 그리고는 자신들이 경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할 때만 고리오를 찾아왔다. 특히, 무도회나 사교 활동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를 부끄러워하면서 외면하는 모습까지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딸들의 행동은 개인적 결함과 더불어 당시 프랑스 부르주아 계층의 가치관과 감정의 구조화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환경에서 자랐고, 감정보다 유용성과 체면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에 익숙해져 있었다.
고리오의 사랑은 진심이고 절실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실용적 가치가 없는 감정으로 인식되었다. 부녀 관계였지만 고리오는 경제적 기여가 끝났을 때, 자연스럽게 소멸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리오는 끝내 병들어 쓰러지고, 딸들에게도 외면당한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딸들의 사랑을 기다리던 그는, 끝내 아무도 곁에 두지 못하고 죽어갔다. 이러한 고리오의 비참한 말로는 단순한 가족의 붕괴 이상으로 사랑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유효하지 않은 감정이 되어버린 시대의 상징적 장례였다.
개인의 성공과 경제적 풍요가 가장 중요해진 사회. 그러한 사회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바라보면서 발자크의 시선은 명확하다. 사랑이 실용성을 잃었을 때, 그 가치도 함께 잃는다. 고리오의 몰락은 19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감정의 기능과 역할이 얼마나 철저히 경제적 기준에 의해 재단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랑은 더 이상 인간적인 연결이 아니게 되어버렸고, 계약이나 교환처럼 작동하는 사회적 구조의 일부로 편입되고 말았던 것이다.
고리오의 죽음 이후 라스티냐크는 깊은 슬픔과 회의에 잠기지만, 그 감정이 곧 결심으로 바뀌는 장면에서 발자크는 이 인물의 상징성을 극대화한다. "이제부터 파리와 나와의 대결이야!"
이 외침은 곧 자신이 도달하고자 했던 세계와의 본격적인 전면 대결 선언처럼 들린다. 이제는 감정도 윤리도 내려놓고, 오직 성공만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장면은 라스티냐크가 어떤 도덕적 갈등이나 회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결단을 내렸음을 보여준다.
이 선택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고리오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사랑, 인간의 따뜻함, 도덕적 일관성은 현실 세계에서 철저히 무시되었고, 라스티냐크는 그것이 실패한 가치임을 직접 목격했다. 그는 더 이상 순수한 감정이나 이상을 붙잡지 않는다. 대신, 성공이라는 이름의 신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도덕적 타협과 감정의 절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라스티냐크는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에서 등장한 새로운 인간형, 즉 능동적으로 타협하며 성공을 쟁취하는 현실주의자의 전형으로 변모하는 시점인 것이다. 영웅도 악인도 아니고, 이상주의자도 냉혈한도 아니다. 마침내 그는 그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회적 위치를 얻기 위해 현실의 법칙을 학습하고 순응한 인물이 되었다. 이 점에서 라스티냐크는 당대 수많은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동시에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해석된다.
발자크가 바라본 19세기 프랑스는 겉은 우아하고 정교하나, 속은 냉혹하고 계산된 세계로 설명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번영과 세련됨의 시대였다. 혁명 이후의 정치적 혼란은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었고, 파리는 유럽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상류층의 살롱에서는 문학과 음악, 철학이 논의되었고, 세련된 복식과 정교한 예절이 사회적 품격을 규정했다. 겉으로 보기에 이 사회는 문명화된, 질서 정연한 고급 사회로 비쳤다.
그러나 발자크는 이 외관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거대한 위선과 냉혹한 현실의 민낯을 집요하게 파헤쳐내고자 했다. 결국 그는 《고리오 영감》를 통해 그 민낯을 파헤치고 말았다.
발자크가 비판하는 프랑스 사회의 이중성은 크게 두 층위에서 드러난다. 도덕적 언어와 그렇지 못한 비도덕적 행동, 그리고 인간성이 자본의 논리로 재편되는 사회 구조를 꼬집었다.
부르주아 사회는 겉으로는 도덕과 가치를 중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 헌신, 사랑, 명예와 같은 전통적 가치가 말로는 강조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이 따르는 규칙은 전혀 다르다. 도덕은 단지 체면을 위한 장식일 뿐, 실질적인 행동은 철저하게 개인의 이익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델핀과 아나스타지의 경우, 그들은 좋은 어머니 혹은 사회의 품위 있는 여성으로 보이기를 원하지만,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의 사회적 입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판단되자, 가차 없이 그를 외면한다. 심지어 고리오가 병들고 죽어갈 때조차, 명목상 책임을 회피하고, 눈앞의 이익과 체면을 우선시한다.
이러한 장면은 감정이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진정한 인간적 관계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사랑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언어일 뿐, 실제로는 감정조차 위선적으로 연기되는 사회인 것이다. 라스티냐크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점차 물들어간다. 처음엔 위선을 경멸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선 그 위선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점차 체득해 간다.
발자크가 특히 날카롭게 비판하는 지점은, 이 사회에서 인간의 감정과 관계마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기능화되고 평가된다는 사실이다. 사랑은 무조건적인 헌신이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올릴 수 있는 수단, 혹은 경제적 유용성을 지닌 감정적 계약으로 이해된다. 고리오의 무조건적인 부정은 사회적으로 철저히 무시되며, 오히려 그를 어리석은 노인으로 전락시킨다. 왜냐하면 그는 효율적이지 않으며, 아무런 실익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라스티냐크와 델핀의 관계 또한 감정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십으로 작동한다. 델핀은 라스티냐크에게 사교계 입문 통로이자 재정적 지원자이며, 라스티냐크는 그녀에게 젊음과 활력을 제공하는 사회적 장식이다.
감정의 진정성은 의미를 잃고, 관계는 기능에 따라 가치를 판단받는다. 인간은 이제 감정을 나누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를 사용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러한 인간관계의 타락은, 발자크가 보기에 프랑스 부르주아 사회가 표방하는 성공 신화가 결코 도덕적 이상 위에 세워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신화는 탐욕, 위선, 무관심, 경쟁이라는 토대 위에 올라선 것이며, 진정한 감정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발자크는 날카로운 현실 인식 위에, 인간성에 대한 깊은 우려와 도덕적 긴장감을 함께 드러냈다. 이러한 이중성을 결코 냉소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의 문체는 차갑고 분석적이지만, 작품 곳곳에서 고리오의 무력한 사랑, 라스티냐크의 갈등, 인간성에 대한 흔들림을 묘사할 때는 애틋함과 분노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 시대에 인간다운 삶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성공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가 무엇을 잃게 되는지를.
이러한 시선이 작품을 사회비판 소설에서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의 문학으로 격상시켰다. 발자크는 이중적 사회를 가차 없이 해부하면서도, “당신은 어떤 세상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라고 묻는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 사회에서 성공은 더 이상 단순히 부와 지위, 명성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성공이란,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며, 내적으로 충만하고 균형 잡힌 삶을 실현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성공관은 프랑스가 걸어온 역사적 경험, 문화적 전통, 그리고 사회제도적 기반 위에 형성된 결과이다.
프랑스의 근현대사는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과 체제 변화의 연속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을 시작으로, 왕정의 몰락과 부활, 제정과 공화정의 반복, 세계대전과 나치 점령, 해방과 복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사회는 수많은 변화를 겪으며 외부의 성공 조건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가를 집단적으로 체험해 왔다. 이러한 불안정한 역사 속에서, 프랑스인들은 점차 사회적 지위나 외적 명성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가치와 자율적인 삶의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프랑스 특유의 철학과 예술 전통에서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라고 말하며 자기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장 자크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외침을 통해 문명과 과도한 물질주의에 대한 경계를 촉구했다. 프랑스 문학과 영화 또한 오랫동안 세속적 성공보다 인간 내면의 복잡함, 고통, 자유, 자아 탐색을 조명해 왔다.
이러한 철학적·예술적 흐름은 프랑스 사회 전반에 “성공은 타인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는 삶의 과정”이라는 인식을 퍼뜨렸다.
사회제도 또한 이러한 가치관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프랑스는 평등과 복지를 핵심으로 한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 국민 개개인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다. 35시간 노동제, 긴 유급휴가, 공공 의료와 교육, 노동자 보호법 등은 과도한 경쟁을 조장하기보다, 모두가 삶의 질을 보장받는 것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다. 덕분에 프랑스 사회에서는 성공이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가 자기 삶에서 만족을 찾는 일상의 권리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왔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IFOP, CEVIPOF, INSEE 등의 조사와 사회학 연구 결과를 보면, 프랑스인들이 성공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프랑스인의 성공 요소 (복수 응답 기준)
-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 – 85%
-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 78%
- 사회적 안정과 자율적인 삶 – 71%
- 경제적 독립 – 68%
-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거나 인정받는 것 – 63%
- 많은 돈을 버는 것 – 35%
- 높은 지위나 명성을 얻는 것 – 28%
19세기 프랑스의 성공이 돈 + 계급 + 인맥(사교)이라는 외적 조건에 의존했다면, 현대 프랑스의 성공 공식은 점점 자율성 + 정체성 + 사회적 의미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 타인의 기대보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 높은 연봉보다도 주 35시간 노동과 여가를 선호하고,
- 단순한 출세보다 공익, 환경, 교육, 문화 등에서의 영향력을 지향하고,
- 광범위한 네트워크보다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찾고,
- 명품, 자동차보다 자기 계발, 독서, 예술 향유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과거에는 “사회가 원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원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프랑스식 성공의 핵심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