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 소리 언어의 학습
언어 학습에 있어서 네이티브 발음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의 노출이 언어 학습에 중요하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 외국어가 쓰이는 외국에 살아야만 그 외국어를 잘 학습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는 일본에 가기 이전에 일본어 JLPT 구1급에 합격하고 일본 츠쿠바대학교로 1년간 교환학생을 다녀왔지만, 일본에 갔을 때 이미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데는 불편함이 없는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었고, 일부 일본 친구들에게 잠시 동안은 제가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착각할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제 일본어는 네이티브 수준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일본어로 된 작품을 즐기고, 듣고, 읽고, 일본어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표현하고, 글을 적는데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것은 실제로 학습을 하고자 하는 언어권에서 생활하거나 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학습을 통해서 그 언어의 일정 수준에 충분히 도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는 네이티브 발음을 들을 수 있는 환경에의 충분한 노출은 영화, 드라마, TV쇼, 노래 등을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소리정보를 담은 장르의 작품들은 해당 언어를 학습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학습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어학 학습 교제에 첨부된 녹음테이프에는 제한된 환경에서 제한된 언어가 녹음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생생한 소리 언어 정보를 모두 포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학습 언어의 네이티브 교사의 경우에는 장단점이 존재할 수 있는데, 초급의 학습자의 경우에는 대상 언어의 네이티브 교사가 아니라 대상 외국어를 고급레벨 수준까지 학습하고 발음도 좋은 모국어를 네이티브로 하는 교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됩니다. 학습 언어의 네이티브 교사의 경우에 물론 네이티브 발음을 계속 들려줄 수 있다는 장점이 존재할 수도 있지만 그 교사가 한국어 등 학습자 모국어 언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면 그 차이에 따른 언어를 가르치는 데는 한계가 따를 수도 있습니다. 학습 언어를 고급 수준까지 공부한 모국어 네이티브 교사의 경우의 장점은 이미 같은 모국어를 구사하고 있고 학습 언어를 학습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 두 언어의 차이와 유사점, 공부 방향성 등을 설정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모국어를 충분히 공부한 학습 언어 네이티브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두 언어를 모두 “언어로서” 사용하고 다룰 수 있는 교사를 찾을 수 있다면 언어 자체에 대한 접근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습니다. 저도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어학이 빠르게 성장한 부분이 있어서 교사의 자질과 방향성은 중요합니다.
수업 방식이 그냥 토익의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풀어야되는지를 알려주는 식의 언어 학습과, 언어 그 자체의 구사와 발음, 대화와 언어의 틀 자체를 가르쳐 주는 학습은 커다란 차이가 납니다. 그냥 영어 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늘게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언어든 언어로서 그 언어를 접하고 가르치는 교사를 만날 수 있다면 그 언어학습에 굉장히 유리합니다.
모국어를 모르는 네이티브 교사의 경우 초급자에게는 한계가 있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네이티브 교사의 설명을 초급 학습자가 모두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따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상 언어로 그 언어를 모두 가르치는 집중 학습 방법도 존재하지만 반드시 그래야만 그 언어가 더욱 발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한국어를 모어로 하는 외국어 고급 학습자 선생님들께 언어를 배웠지만 초급에서 중급, 고급까지 올라가는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네이티브 발음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 반드시 네이티브 선생님을 구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언어가 고급과정에 오르게 되면 자연히 외국어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져서 더 많은 자료를 외국어로 접하는데 어려움이 없게 되고, 또 그 외국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친구를 사귀기에도 더 수월해져서 네이티브 발음을 들을 수 있는 환경 구축이 더 수월해지거나 넓어질 수 있습니다.
초급 단계에서는 학습 외국어의 모든 문장, 언어가 알아듣지 못하는 외계어에 가깝기 때문에 그저 너무 많은 노출은 학습이 아니라 스트레스나 피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처음 단계의 외국어 소리 언어의 노출은 외국어 자막과 한국어 동시 자막으로 듣는 영어 매체나 좋아하는 그 외국어의 노래 등으로 충분합니다.
네이티브 언어 발음 환경에의 노출이 언어 학습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어떤 매체가 외국어 학습에 좋을까요? 그런 고민을 할 수 있습니다.
답은 “절대적으로 무조건 더 뛰어나고 좋은 교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미국 시트콤 프렌즈로 영어 공부를 했다더라, 누구는 이런 책을 봤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을 듣기도 하고 ‘나도 한번?’하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 경험 속에서 매체를 통해서 외국어를 익히는 데 있어서 더 좋거나 더 뛰어나거나 더 훌륭한 교재는 없습니다. 다른 이야기로는 그 학습 외국어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장르에 있어서는 차이가 납니다. 말했듯이 단순히 책을 읽어서 언어실력을 높이려고 하면 음성정보의 많은 부분을 책이 바로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상 매체도 차이가 날 수 있는데 어학 학습에서 많이 쓰려고 하는 CNN등의 뉴스나 다큐멘터리 방송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한 매체는 좀 더 고급 학습자의 교재로 적합합니다. 그 이유는 CNN등에서 쓰이는 뉴스언어도 일종의 “죽은 언어”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도 “오늘 날씨입니다.”라던가 “다음 소식입니다.”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말하기는 뉴스 특유의 화법에 가깝고, 일상 언어와는 거리가 먼 언어에 가깝기도 합니다. 그러한 발화에는 목소리 정보에 담긴 감정이나 뉘앙스 등이 많이 배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언어는 이러한 감정적인 부분을 포함하는 언어입니다. 같은 “배고파”를 이야기해도 힘이 없이 외치는 “배고파”인지, 내가 배고프다는 것을 주장하는 “배고파”인지가 다릅니다. 인토네이션도, 목소리 톤도, 발음의 길이조차도 다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살아 있는 언어 입니다. 그리고 단순히 “배고파”라는 말을 듣고 그 문자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조, 말투, 행동, 표정까지도 보면서 그 “배고파”에 담긴 의미를 총체적으로 느끼고 그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언어 학습이 됩니다.
그래서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매체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보다 일상 회화나 대화가 등장하는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 등 입니다. 이러한 장르는 등장인물들이 특정 상황 속에서 감정 선을 가지고 움직이고 발화하기 때문에 상황과 감정에 따른 인토네이션과 음색, 음성을 듣고 익숙해지기 더 좋습니다.
물론 아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상태라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본다 할지라도 그것이 직접적인 외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따로 기초 학습은 필요합니다. 책과 교재를 통해 문장 구조를 배우고 기초 단어부터 단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그리고 그 발음된 단어가 글씨로는 하나씩 어떻게 쓰이는지 익혀가는 속에서 일반 TV프로그램, 애니메이션, 영화 등을 본다면 들리는 단어도 더 많아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사용되는 외국어는 책에 나온 외국어와 다를 수 있는데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일상적인 표현이 훨씬 많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정말로 사용되는 “살아있는 언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에 따라서는 사투리를 쓸 수도 있고, 좀 더 격식 있는 말투를 쓸 수도 있고, 비속어를 많이 쓸 수도 있습니다. 그 캐릭터 특유의 말투가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까지도 느끼며 보다 보면 그 외국어의 다양한 형태들에 조금씩 익숙해지게 됩니다. 비속어를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어떤 말투의 어떤 말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네이티브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각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대화 중심의 소리 언어 매체를 가지고 학습하는 방법으로 섀도잉 학습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각 캐릭터의 대사를 한 문장씩 끊어서 나도 최대한 비슷하게 흉내 내거나 따라하며 말을 해보는 훈련입니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그냥 겉을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그 캐릭터가 가진 마음, 감정, 느낌을 이해하고 그 캐릭터가 되었다는 마음가짐으로 하는 것입니다. 배우를 위한 연기훈련 중에서 화법을 익힐 때 중요한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연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가짜로 그러한 대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의 상황에 몰입해서 그 감정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배우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역량이 됩니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 영화의 연기가 우리에게는 더 감동적이고 자연스럽게 들릴 수 있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담긴 말, 진심이 담긴 말은 마음을 어떤 형태로든지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은 살아있는 말입니다.
내가 외국어를 단지 내 머릿속에서 작문한 모국어를 그대로 번역해서 내뱉게 되면 그 머리로 일어나는 과정 때문에 감정이 말에 실릴 공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즉, 죽은 말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외국어도 그 나라 사람에게는 우리말과 똑같은 말입니다. 그 이야기는 발화자의 상태, 생각, 마음, 감정이 실려 있고 그런 것들을 전달하는 도구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말 속에 감정을 실으며 떠오른 감정과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뇌를 거쳐서가 아니라 그대로 발화로 즉각적으로 연결하는 훈련은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쁜 꽃이 있으면 “아 예쁜 꽃이다. 그러면 예쁘다는 형용사로 이것을 표현해야지.”하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발화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꽃을 보고 일어난 어떤 뭉클한 감정, 기분 좋은 감정이 “예쁘다”고 느낀 감정이라고 사회 속에서 익히며, 내 안에서 감정이 일어나면 그 감정이 “예쁘다”라는 표현과 내 안에서 연결이 되어 바로 나옵니다. 외국어를 익히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예쁘다”가 영어로는 pretty, 일본어로는 可愛い라고 번역이 된다고 그 1:1의 뜻을 치환하면서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일어난 이 어떤 뭉클한 감정, 기분 좋은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한국어로는 ‘예쁘다’였는데 영어로 표현하면 pretty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식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개념, 의미, 몸의 반응, 상태, 감정과 단어의 직접적인 연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