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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24. 2021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의 총체적 연결

1-10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 어학 시험공부를 넘어선 언어 학습

영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발목을 잡는 도구입니다. 저도 굉장히 오랫동안 영어를 못했고, 심지어 싫어하고 자신없어했습니다. 영어 자체가 스트레스였고 영어를 보면 검은 것은 글씨이고 흰 것은 종이인데 읽으려면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영어는 그저 점수가 필요한 커다란 짐이었습니다.


요즘 교재는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유명한 기본영어 문법서를 공부했습니다. 이러한 책은 살아있는 언어를 가르쳐주는 어학서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일단 오디오 자료 중심의, 말 중심의 교재가 아닙니다. 영어를 네이티브 화자가 보는 방식으로 파악하고 바라보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쪼개고 분석하고 이름을 붙입니다.


영어권 네이티브 발화자는 동명사니 to부정사니를 생각하며 발화하지 않습니다. 그들 안에 들어있는 것이 이러한 “문법”이 아니라 to부정사가 가지는 느낌, 동명사가 가지는 느낌의 어감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네이티브는 to부정사의 자리에 동명사를 넣으면 뭔가 어색함을 느낍니다. 어감이 들어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문법으로서 “정답”인 규칙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어감”을 키워가면서 형성이 됩니다. 외국인의 완전하지 않은 한국어를 들으면 한국인은 누구나 즉각적으로 뭔가 “어색하다”고 느낍니다. 그것은 발음일 수도 있고 어조일수도 있고, 어떤 단어의 사용일 수도 있고 문법적인 오류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숨에 느끼는 “어색함”은 머리로 계산해서 ‘아 저기의 저 문법을 잘못 썼네’하며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국인에게 문법적인 설명을 하지 못하는 한국인일지라도 좀 더 자연스러운 발음, 자연스러운 문장을 들려줄 수 있습니다. 언어는 그렇게 좀 더 즉각적이고 직접적이며 총체적인 영역입니다. 기본 영어 문법서에 들어있는 영어에 대한 문법적인 설명은 언어라는 총체적인 다채로움의 매우 조그마한 일부만을 담고 있는 것이고 심지어 그 문법적인 설명을 모른다 하더라도 목표 외국어를 자연스럽게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것은 그 네이티브 외국인이 특정 어떤 상황에서 어떤 어조로 어떤 단어를 골라서 어떻게 엮어서 어떻게 발화했는가를 보고, 느끼고, 나도 따라해 보는데서 시작됩니다. 그것이 기본 영어 문법서에 적힌 영어가 아니라 좀 더 살아있는 영어입니다. 언어는 문법이 아니고 발화입니다. 그리고 문법은 발화의 너무나 작은 일부분만을 차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아무도 “‘꽃’은 주어니까 ‘이’라는 조사를 붙인 다음에 예쁘다는 형용사로 마무리해야지. 형용사는 맨 뒤에 와야 하고 꽃은 주어니까 앞에 와야 해.”같은 생각을 하며 “꽃이 예쁘다”고 발화하지 않습니다. 내 안의 어떤 뭉클한 느낌에 대한 발화가 “꽃이 예쁘다”라는 것으로 학습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발화는 매우 자연스럽고 즉각적으로 말합니다. 문장구조를 나누고 하나하나의 기능을 생각하고 그것을 세세하게 고민하며 발화하는 순간, 이러한 작업은 어문학적으로는 굉장히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일 수는 있지만, 그 발화는 죽은 언어가 됩니다. 복잡한 머리의 생각 속에서 하나하나 더듬더듬 말하는 문장 속에 나의 느낌도 감정도, 어떤 의지도, 전달하고자 하는 바도 실릴 공간이 사라집니다. 그냥 그것은 살아있는 말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기계적으로 번역된 문장일 뿐입니다. 국어책을 읽는 듯한 영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영어 문법서는 그 책 안에 살아있는 발화로서의 문장 자체를 담아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본영어 문법 공부를 한다고 해서 영어의 구조는 익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영어를 접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안에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영어가 이미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아있는 언어는 발화 속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발화를 듣고 발화의 어감을 이해하고 그 어감을 나도 내 느낌과 감정과 연결을 한 후 나도 발화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 어학 공부과정을 가진 커리큘럼은 드뭅니다. 마치 제가 한 문장도 제대로 읽지 못하면서 수능 영어 고득점을 맞을 수 있었듯이 많은 영어 학습은 읽기와 문장 분석과 해석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영어 문법서의 그 영어가 중심이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살아있는 언어의 흔적은 아주 작습니다.




우리나라에 영어가 중요한 만큼 많은 영어 학원이 존재합니다. 저도 몇몇 학원을 잠시 다니며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토익 학원입니다. 제가 일부 토익학원에 가면 주로 배우는 것이 문제풀이 전략이라든가 자주 나오는 표현, 단어장 암기였습니다. 말로서의 영어, 실제 발화로서의 영어를 배우지 못했고 영어는 저에게 그렇게 언젠가 한번 열심히 파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큰 숙제였습니다. 영어를 언어 자체로 즐긴다는 것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습니다. 


영어는 언어입니다. 의사소통의 도구이고, 단 한마디 말을 알아들어도, 단 한마디 문장을 제대로 말하고 그것이 전달되어도 두근거리는 행복함을 얻을 수 있는 소통의 도구 입니다. 그러한 소통의 도구로서의,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영어는 시험 풀이, 문제풀이 중심의 영어 학습에는 부재합니다. 어떻게 시험에 고득점이 나와도 영어를 한 문장도 말할 수 없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아니면 스피킹 시험을 위해서 따로 스피킹 공부를 합니다. 언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총체적으로 연계되어있는데 읽기를 따로 공부하고 듣기를 따로 공부하고 나중에 말하기를 따로 공부합니다.


사실 토익 듣기 지문을 내가 듣고 이해할 수 있으면 듣기가 되고 그것을 내가 외워서 정확한 발음으로 말할 수 있으면 말하기가 되며 그것을 받아 쓸 수 있으면 쓰기가 되고 그 쓰인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읽기가 됩니다. 읽기용 교재, 쓰기용 교재, 말하기용 교재, 듣기용 교재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쓰인 지문은 독해용 교재니까 소리 내서 읽지 못해도 글씨만 보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지문을 읽으면 말하기가 되고 네이티브가 그 지문을 읽은 것을 들으면 듣기가 되고 내가 옮겨 적어보면 쓰기가 됩니다. 언어는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가 총체적이라서 어느 하나만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맹에게는 따로 떨어져서 존재한다고 해도 말하기, 듣기가 우선입니다. 말하기, 듣기가 언어의 기본이고 읽기와 쓰기는 그 말하고 들은 것을 시각화해서 남겨놓은 부산물입니다. 그 부산물로부터 말하기 듣기의 정확한 정보를 따로 재생해서 알 수는 없습니다. 토익 듣기 지문만으로도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다 공부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총체적인 언어로서의 어학 공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든 공부를 따로 합니다. 독해는 하는데 듣기는 안 되고 듣기는 하는데 말하기는 안 됩니다. 이미 하고 있는 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은 언어로서의 영어를 익히게 되면 토익을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고득점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어학 시험은 어학시험 자체를 공부하라고 만들어진 시험이 아니라 가진 언어 능력 자체를 테스트하려고 디자인된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언어로서의 영어를 공부하고 토익은 그 이후의 시험으로 접해야 합니다. 토익의 영역별 시험공부 답안 찾기 연습은 살아있는 언어로서의 어학공부가 되지 못합니다. 토익 독해 지문을 봐도 그게 네이티브의 음성으로 들리고, 내가 그 음성으로 발음해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토익 듣기를 들어도 그걸 나도 말할 수 있고 또 어떻게 글자로 쓸 수 있는지 떠올라야합니다. 듣기와 읽기, 말하기와 쓰기는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문장 구조를 알고 문법을 아는 것이 그 언어를 마스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한국 국어학 규정이나 용어를 다 몰라도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국어학 문법 규칙은 그 단어와 문장의 어조와 표현 방식을 그 안에 다 담아내지 못합니다. 스스로 소리로서 한국어를 재생해서 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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