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를 가기 위해서는 송악산으로 가야 한다. 지난주에 가파도를 갔던 선착장에서도 마라도를 갈 수 있었지만 오늘은 특별히 송악산을 구경하고 마라도로 가기로 했다. '송악산'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는 산이 있다. 그는 바로 '황진이'와 '서경덕'의 고사에 등장하는 산이다. 하지만 그 산과 이 산은 전혀 다른 산이다. 고사에 등장하는 송악 사는 경기도에 위치하고 있고 북한에 있는 산인 반면, 내가 말하는 산은 제주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에 위치한 송악산은 오름이다. 이는 산방산과 이웃하고 있으며 가파도와 마라도를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이곳에서는 한라산까지 한눈에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에 제주 경치를 즐길 아주 좋은 위치이기도 하다. 송악산은 둘레길을 포함하여 장관을 이루고 있다. 사실상 송악산을 목적지로 와도 충분히 괜찮은 듯하다. 혹여나 마라도를 가지 못하더라도 바로 둘러볼 곳이 있다는 점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최남단, '마라도 가는 여객선'이라는 귀여운 매표소가 보였다. 주차 시설이 좋고 주변에 스타벅스도 있어 배를 기다리는 동안 이것저것 구경할 것이 많아 좋았다. 이번 여행은 어머니와 함께 했다.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겨두고 혼자서 마라도 배편을 예약하러 들렸다. 그냥 무조건 가서 "성인 둘에, 아이 둘이요"라고 외쳤더니 매표소 직원분이 신분증을 가지고 와야 한단다. 당연한 거였지만 몹시 당혹했다. 우여곡절 끝에 배편을 예약하고 건물을 나오는데, 절경이 보인다. 아직 마라도는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진 찍을 것들 투성이다. 오늘도 다율이는 우산을 꼭 쥐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다율이는 우산을 좋아한다. 이 나이가 원래 한 가지 아이템에 꽂히는 시기인 건 맞는 듯한데, 요즘 장마기간이라 어른들이 우산을 쓰고 다니는 행위가 참 부러웠나 보다. 아마 아빠와만 출발했다면 우산을 갖고 가지 못했겠지만, 다율이는 '할머니 찬스를 쓰고 기어코 저 우산을 마라도까지 들고 갔다.
깎아 내린 듯한 절벽이 마라도 선착장을 휘어 감고 있다. 이곳은 마치 뉴질랜드의 '블랙 비치'가 생각나게 하는 곳이다. 어느 나라에나 이런 멋진 절경이 있겠지만,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사실 내가 있는 마을 앞바다도 많은 사진작가나 여행가들이 즐겨 찾고 사진을 촬영하는 곳이지만 집 앞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너무 소홀히 하고 있진 않은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마라도로 가는 배가 들어온다. 배에도 '마라도로 가는 여객선'이라는 귀여운 글이 쓰여 있었다. 오늘은 가파도를 가는 날에 비해 덥고 습하긴 했지만, 파도가 잔잔한 편이라 안심이었다. 사실 가파도를 가는 날에는 배가 너무 출렁이느라 대양 해시대에 폭풍우를 만난 바이킹이 된 느낌이었다. 사실 망망대해를 떠다니는 기분이 어떤 기분일지 가파도를 가는 10분에 느낀다는 건 너무나 비약이지만, '왜 동양인들은 배를 타고 대양을 떠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종종 떠올리곤 했는데, 생각해보니, 유럽에는 우리와 같은 태풍이 없다. 때문에 유럽인이 바라보는 바다와 동양인이 바라보는 바다가 사뭇 달랐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풍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적도 부군의 뜨거운 바다와 수온을 올려주는 난류가 있어야 하는데 유럽은 그 밑으로 아프리카 대륙이 바다 대신 데워지고 있다. 덕분에 유럽은 태풍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대륙에 속했다. 그런 이유로 유럽은 태풍 피해가 많지 않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은 오랜 시절부터 바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이런 험난한 바다는 어디로도 나갈 수 없게 하는 폐쇄성을 불러주기도 했지만, 어떤 나라도 쉽사리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는 방패막이도 되어 주었다. 울렁거리는 뱃속을 진정하는 데는 하루가 꼬박이 걸렸다.
솔직히 마라도가 가파도보다 더 멀다는 설명에 까마득하긴 했지만, 잔잔한 바다를 타고 가니 가파도보다 뱃멀미는커녕 시간이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리니 바로 눈 앞에 절경이 보인다. 용암 섬인 제주의 특징은 독특한 자연환경이 많다는 것이다. 빠르게 해수에 의해 식어지는 용암이 그 모양 그대로 굳어지며 섬이 만들어지는 이런 자연환경은 제주의 특징이기도 하다. 제주는 세계에 내놔도 절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이 보물이라는 사실은 매 순간 느낀다.
마라도에 들어갔더니 넓은 초원이 보인다. 마라도는 이상하게도 초원지대였다. 원래 마라도는 나무가 울창한 섬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초원지대가 형성되기에는 기온이 따뜻하고 강수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이다. 역사적인 이유를 찾아봤더니 첫 이주민들이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숲을 태워버리면서 초원지대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라도는 전반적으로 평평하기 때문에 바다의 해풍을 직격으로 받을 수 있다. 마치 떠다니는 항공모함처럼 섬 전체가 커다란 배인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섬에 도착했다는 느낌보다는 바다 한가운데 도착했다는 느낌이 드는 마라도이다.
마라도를 빠른 속도로 돌면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어린아이 들와 왔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고, 섬의 반쪽만 보고 나가는 방향으로 정했다. 이곳에 사는 분의 이야기로는 이곳을 무리하게 돌아보려고 하다가 꼭 일 년에 몇 분은 쓰러지셔서 헬기로 실어 나르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단다. 그래서 그런지 마라도 선착장 가까이에 커다랗게 헬기가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곳이 보이기도 했다. 확실히 가파도와 마라도는 분위기가 많이 다른 편이다. 일단 마을의 느낌 자체가 달랐다. 가파도는 약간 마을 다운 마을을 형성한 곳이었다. 적당히 차도 다니기도 했고 웬만한 시설들은 모두 존재하는 듯했다. 하지만 마라도는 가파도에 비해서 아주 소박한 섬이었다. 우리는 배에서 내리자마자 참지 못하고 바로 처음에 보이는 집에서 팥빙수를 먹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먹이느니 차라리 팥빙수를 먹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빙수를 먹으러 들어왔더니 시원하게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참 의외였다. 마라도는 어떤 방식으로 전기를 공급하는지 궁금했다. 혹시 태양광이 풍부하여 태양광으로 전력을 공급받나 싶었으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했다. 자가 발전기를 통해 공급받고, 아마 가끔씩 주유를 받아서 전기를 생성하는 듯했다. 아이들과 팥빙수 한 그릇을 시켰다. 팥빙수는 1만 원 정도 했는데, 이곳에서 팥빙수를 먹는다는 느낌 자체가 신선했다. 사실 마라도에 도착하면 자장면 집 몇 개가 있고 허허벌판이라고 생각했는데 딱히 그러지도 않았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팥빙수의 기원은 중국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눈에 과일즙을 섞어 먹었다는 것이 팥빙수의 기원이라고 하는데, 사실 이걸 기원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으려나 싶긴 하다. 어쩌면 제주나 강원도에서 먼저 먹을 수도 있는 거지 않을까? 벌써 지쳐가는 하율이다. 이날은 날씨가 몹시 더웠는데 워낙 주변이 바다다 보니 햇볕이 너무 강했다. 우산을 뭐하러 들고 왔냐고 다율이에게 말했지만 우산은 좋은 양산이 되어 주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은 안아달라고 졸랐다. 칙칙한 기온 탓에 아이들을 안지 않아도 기운이 쭉 쭉 하고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안고 마을 깊숙이 까지 들어간다
들어가니 TV에서 보이던 여러 가지 자장면 집이 보인다. 사실 알고 봤더니 마라도에 있는 자장면 집은 거의 모두가 방송에 한 번씩 촬영을 했던 집이라고 했다. 마라도는 60가구도 되지 않는 작은 인구가 모여사는 섬이다. 그 인구는 127명으로 대게 관광객을 상대로 수입을 얻는 다고 했다. 다율이른 놔두고 몇 걸음 앞서갔더니 다율이가 심통이 났다. 뒤를 돌아보니 다율이는 우산을 들고 '아빠 같이 가야지!' 하며 되려 나를 혼내고 있었다. 다시 뒤를 돌아가 다율 이를 안고 몇 걸음을 걸었다. 마라도는 대한민국 최남단 섬으로 해안선의 길이가 4.2km 밖에 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곳도 39m로 대부분이 평지이다.
가파 초등학교 마라 분교장이라는 학교가 있었다. 재밌는 건 마라 초등학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가파초등학교 마라 분교장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다가 사진을 선별하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는데 호기심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더니 학생수는 1명으로 나온다.
재밌게도 내가 걸었던 거리도 마라도 58이라는 도로명이 있었다. 또한 이 학교의 대표전화도 있었다. 비록 한 명이 다니는 초등학교이지만, 시설은 꽤나 괜찮았다. 관리도 잘 되어 있는 듯한 것이 아마 너나 할 것 없이 마라도 주민들이 함께 관리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어코 우산을 혼자 쓰고 갈 수 있다는 다율이가 세찬 바닷바람에 우산을 놓치고 쓰러졌다. 다행히 잔디가 푹신해서 다치진 않았지만, 우산이 바다 방향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다율이는 우산을 쥐고 함께 딸려 갈 뻔했는데, 사진을 찍다가 놀라서 번뜩하고 달려 나가 우산을 잡았다.. 거의 대부분의 식당에서 자장면을 판다. 우리는 자장면을 먹지는 못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자장면을 먹다 보면 마라도의 경치를 아예 포기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고 나오는 사람들의 평을 듣기에, 아주 만족하는 사람과 별로라는 사람이 명확하게 나눠져 있었다. 역시 입 맛은 개인의 취향인 듯하다.
가파도처럼 멋진 벽화나 카페가 즐비하진 않지만 마라도는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는 섬이다. 200해리를 배타적 경제 수역으로 지정하는데 마라도는 아주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마라도가 갖고 있는 국토의 최남단이라는 상징성과 해양 자원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마라도 땅을 밟는 것은 그저 자연 경치나 구경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자면 독도 또한 그냥 돌섬일 뿐이다. 그곳에 의미를 지정할수록 우리는 그것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다.
가다 보니 이렇게 앉아서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과 여자분들이 많이 앉아 계셨는데 아마 섬을 돌아보기는 포기하신 듯했다. 아이들은 마라도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머물러 있었다. 태양만 가려져도 바닷바람 때문에 몹시 시원한 곳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마라도에는 원래 숲이 우거져 있었다는 것을 반증이라도 하듯 커다란 나무가 한 구루가 쓰러져 있다.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답게 종교 시설도 갖추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은 교회와 불교였는데, 더 깊게 들어가면 성당까지 있어서 마라도는 3개의 종교가 모두 있다고 한다. 절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불상에 기도와 절을 했는데 교회는 안을 들어가 보니는 못했다. 마라도는 낚시로도 매우 유명하다. 이곳에는 우리 아버지가 낚시를 하러 오셨다는 이야기만 많이 들었던 곳이었는데 실제로 몇 분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 들어갈 때는 몰랐지만, 마라도는 천연기념물 제42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때문에 흡연이나 야영 취사 등이 금지되어 있는데, 이곳 저것에서 당 배공 초들나 쓰레기들이 보였다. 한국인들이 해외 명소를 돌아다니며 낙서를 하거나 쓰레기를 버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고는 했다. 하지만 세대가 달라지면서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천염기념물인데, 혹시 방문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음 관광객들과 자연을 위해 훼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마라도에는 현무암 돌담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신을 모시는 신당이 있다. 마라도 할머니당에는 아기 업개(아기를 돌보는 처녀)에 대한 가슴 아픈 전설이 내려온다고 하는데, 내용은 이렇다.
무인도였던 마라도는 유난히도 해산물이 많아서 해녀들이 금지된 걸 알면서도 몰래 들어오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 한 무리의 해녀들이 식량을 챙겨 마라도를 갔는데 풍성한 해산물을 채취하고 돌아가는 날 갑자기 바다가 거칠어져서 배를 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며칠 동안 섬에 갇혀 지내다, 한 해녀가 꿈을 꾸었는데 섬을 떠나면서 아기 업계를 떼어놓고 가면 무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배가 파선되어 모두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해녀들이 아기업개에게 섬 언덕에 아기 기저귀를 놓고 왔다고 가져오라고 하고 아기업개가 뛰어간 사이에 배룰 출발시켰다고 한다. 그랬더니 바다가 바람 한점 없이 잔잔해졌다고 한다.
해가 지나고, 해녀들이 다시 조업을 하러 마라도에 갔더니 바닷가에는 울다 지쳐 굶어 죽은 아기 업계의 유골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해녀들은 그녀의 희생에 대한 넋을 기리기 위해 당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라 할머니당이다. 이번에도 역시 가파도처럼 우리를 구하러 들어오는 구조선이 도착하는 듯하다. 아이들은 멋모르고 좋아한다. 자신들이 어디를 갔다 왔는지 기억은 할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