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환동은 한라산을 기준으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동네이다. 한라산을 끼고 있기 때문에 날씨가 변화무쌍 하지만 대체로 연중 따뜻한 동네이다. 나는 서귀포 중에서는 법환동을 가장 많이 방문한다. 이곳은 월드컵 경기장을 포함하여 이마트와 같이 편의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은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을 통합하여 서귀포시를 만들 때, 법환동, 서호동, 호근동을 합쳐 대륜동으로 통합했다.
범섬과 외돌개, 윗세오름, 제주 월드컵 경기장 등을 포함하여 서귀포 시에서도 볼 것들이 많은 동네이며, 특히 넓은 바다가 매력적이다. 때문에 해안가 일주도로변에는 숙박과 관광을 즐길 곳이 많기도 하다.
제주 바다의 특징은 현무암 더미로 둘러싸인 핥은 물웅덩이들이 해변가에 생겨나는 것인데, 이곳은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4.3의 영향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모여 촌락을 형성하고 있는 제주는 대부분 자전거를 타고 바로 해안가에서 수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게 살고 있다.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이토록 혼자서 물놀이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가 있다.
날씨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저 멀리 범섬이 보인다. 범섬은 커다란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범섬 혹은 호도라고 부르기도 했다. 원나라가 고려를 지배하던 시기 물러서기 마지막에 목호라는 세력들이 난을 일으키자 최영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제주로 와서 이 섬에 숨어 있던 목호들을 완전 섬멸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생포자가 100명에 이르고 상당수의 장수들이 절벽에 떨어져 죽었다고 하니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다.
이 사건 이후로 범섬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가 이제와 거주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무인도이다. 2001년 1월 17일 천연기념물 제42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는다고 한다.
범섬을 바라고도 있는 곳에서 중식을 먹기로 했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했는데 꽤나 장사가 잘되는 집이었다. 다율이가 '자장면'을 하도 노래를 불러서 그토록 노래를 불렀던 자장면 집을 드디어 들어간다. 이름은 올레 차이나 타운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레'라는 용어에 대해 잘 모르고 쓰고 있는 듯하다. '올레'는 제주도 말로, 거리에서 집으로 연결된 긴 골목을 올레라고 부른다. 관광객들이 다니는 올레길, 둘레길은 사실 원래 제주 어른들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제주는 원래 대문이 없기 때문에, 올레길이 긴 편이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길기도 하지만 커브가 살짝 들어가며 짧기도 하다. 이는 지나치는 사람들이 누구나 집 안을 들여다보지 않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라고 한다. 음식집 이름에 '올레'라는 표현이 있는 건, 집 앞 어귀라는 중의적인 표현이 있다.
메뉴를 보고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차돌 짬뽕을 시켰다. 날이 후덥지근한 게 얼큰한 짬뽕을 얼른 먹고 싶었다. 이 곳은 원래 동네에서도 유명한 집이라고 한다. 우리가 있던 시간이 점심시간을 한 참이나 지난 시각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중국음식점답게 내부는 붉은색이 많다. 붉은색은 실제로 후각과 미각 등의 감각 신경을 자극하는 색이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입맛을 자극하고 활기를 돋아주는 색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KFC나 맥도널드, 롯데리아, 버거킹, 피자헛 등의 프랜차이즈들이 사용하는 로고와 색이 빨간색인 건 매우 훌륭한 마케팅이다.
중국 사람들에게 빨간색을 행운과 기쁨을 상징한다. 이는 그 유례를 보자면 중국이 예전부터 태양신을 모셨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빨간색은 노란색과 함께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선시대 관복을 보자면 초록부터 파란색으로 급이 올라가면서 권복의 색이 바뀌는데 가장 직급이 높은 이들이 입는 관복은 빨간색이고, 임금이 입는 용포에는 빨간색 비단에 노란 용이 수놓아져 있다.
어린 시절에는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말라는 미신이 있었는데, 그 또한 빨간색은 '황제'의 색이기 때문에 민가에 퍼트려진 소문이라는 설도 있다. 북한에는 '김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 밖에 없다. 보통 조선에도 왕의 이름을 백성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러한 백성들의 불편함을 생각해서 조선 초기 이후 왕들의 이름은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를 사용하기도 하고 외자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붉은색은 아무나 사용할 수 없는 색이었다.
식당에서 제주 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큰 창이 남향으로 나있다. 살짝 보이는 것이 밖에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자석이 배치되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어봤다.
아이들이 있어서 외부에서 먹을 수는 없었지만, 이처럼 외부에서 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사실 살다 보면 외식을 하고 싶은데 굳이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번거로움 없이 혼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 혼자서 테이블을 모두 차지하면 괜히 눈치가 보이는데, 이처럼 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좌석은 혼자서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분들이 이용하기 좋은 것 같다. 자장면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난 다율이다. 사람들은 남자 쌍둥이가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냐고 항상 말한다. 남자아이들은 장난도 심하고 클수록 애교도 없단다. 아이들을 보면 장난이 심한 건 남자아이들이나 다름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어쨌건 애교가 많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음식이 조리되는 사이 잠시 짬을 내어 밖으로 몇 걸음 걸어 나간다. 대략 보이는 것이 해녀상이다.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다고 한다. 대부분이 제주도에 몰려 있는데 우리나라의 해녀는 대략 2만 명쯤 된다고 한다. 우리가 해녀에 대해 알고 있는 편견이 있는데, 사실 해녀를 본업으로만 삼고 있는 사람보다 겸업으로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제주도 특징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직업이 두세 개는 있다. 타지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모르는 듯하다. 대부분의 제주도민들은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농사일도 함께한다. 다른 밭농사와 논농사에 비해 감귤 농사는 손이 덜 가는 편이다. 때문에 다른 일을 하면서 주말에 잠깐 농사를 짓기도 하고, 휴가 때 감귤농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거기서 수확된 수확물을 팔기도 한다. 제주에서 만나는 은행원이나 선생님들, 회사원, 음식점 사장님들도 아마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학교 다닐 때, 방학이 되면 선생님들이 감귤밭에서 일하시는 걸 많이 봤던 터라, 나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런 줄 알았는데, 반대로 본업 하나만 갖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드디어 자장면이 나왔다. 지금도 짜장인지 자장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의 91.8%가 짜장면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짜장면도 표준어가 됐다고 한다. 한국식 춘장은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그 이유는 첨면장에다 캐러멜을 넣는 것이 이유라고 하는데, 예전에 짜파게티의 성분표를 보면서 '캐러멜'을 왜 넣었지?라고 고민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마 비슷한 이유였던 것 같다.
대한민국에는 2만 4천 개의 중국 음식점이 있다고 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자장면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나 이 중국집들에서 하루 평균 600만 그릇이 팔린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이는 우리나라 국민 8명 중 한 명이 매일 자장면을 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특이 빨간색이 많은 우리나라 음식의 특성상 자장면은 아이와 외식할 때 필수이다. 비벼지지 않은 자장면을 기다리며 하율이는 양파를 춘장에 톡 하고 찍는다. 입에 넣으려 하길래. 양파는 매운 거라고 알려주고 대신 먹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보는 동화책에 '양파'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오소리도 싫다고 던지고 토끼도 싫다고 던지면서 '데굴데굴' 굴러가며 버려지는 양파에 동정심이 갔는지, 아이들은 양파를 좋아한다. 단!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단무지를 좋아한다. 사실 단무지는 불가의 음식이다. 그러고 보니 절에서는 식사 후에 단무지와 물로 그릇을 달고 마시는 행동을 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자장면에는 단무지가 빠져서는 안 된다. 사실 단무지는 한국과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데 중국집에 단무지가 유독 잘 나가는 이유는 모르겠다. 특히나 일본에서 단무지는 국수나 면과 함께 먹지 않고 꼭 밥이랑 먹는다. 이처럼 면에 단무지를 먹는 건 우리나라 식이라고 한다. 뭐든지 자기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다율이는 포크를 주어도 젓가락질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한참을 저렇게 애를 썼다. 저것도 근성인가 싶다. 사실 인생 살면서 쉽게 포기하는 것보다는 근성을 갖고 보는 게 삶에 더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성격이 워낙 다른 하율이다. 하율이는 그냥 포크로 '푹~ 하고 찍어 맛있게 먹는다. 하율이는 좋은 게 좋은 스타일이다. 고민 크게 없이 맛있게 먹는다. 자장면은 할머니, 할아버지도 자주 사주셨던 음식이다. 아이들은 자장면과 피자를 좋아하는데 나중에 살이 쉽게 찌는 체질이 되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짬뽕이 나왔다. 얼큰한 게 생각보다 매웠다. 매운 음식을 좋아해서 맛있게 먹긴 했다. 나는 원래 매운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오죽하면 라면도 스낵면을 먹는 편이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돌아와서 가족들이 먹는 매운 닭발을 한 번 먹어 보고는 매운맛에 눈을 떴다.
짬뽕은 차돌박이가 대차게 많다. 고기만 건저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로 많다. 아삭아삭 양파와 보들 보들한 차돌박이를 함께 먹으면 이게 '면'이 있는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다. 양은 엄청 푸졌다.
국물이 특히나 맛있었는데, 굴짬뽕도 한번 먹어봤어야 했는데 아쉽기도 하다.
짬뽕은 역사가 참 복잡한 음식이다. 19세기 말에 일본 나가사키에 있는 푸젠성 출신 화교가 만들었다는 설과 산둥성 출신 중국인들이 한국인 입맛에 맞게 만들었다는 설이 있는데 뭐가 됐던, 한, 중, 일의 역사와 문화가 잘 섞인 음식이다.
그 첫 번째 소개한 유래를 따져보자면, 나가사키에 정착한 중국인이 이 지역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해 중국 식당에서 쓰다 남은 야채와 고기 토막 어패류 등을 볶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 차돌박이가 이토록 많이 들어 있다니 싶다. 사실 밥 한 공기가 생각났다. 차돌박이만 건져 먹기에도 벅찰 정도로 고기가 잔뜩 들어 있다.
탕수육은 돼지고기에 녹말을 묻혀서 튀긴 음식인데, 오리지널 중국 음식이다. 탕수육은 그 뜻이 '엿'과 '식초' 그리고 '고기'라는 뜻이다. 시큼한 맛과 달콤한 맛이 탕수육 맛의 기본이다. 탕수육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는 않다. 이는 1842년 아편전쟁이 끝나고 나서 청나라가 영국과 강화조약을 체결할 때쯤부터 시작한다. 이 조약으로 홍콩은 영국에 150년간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 당시 많은 영국인들이 홍콩과 광저우에 이주하게 된다.
이때 영국인들이 중국인들에게 음식에 관해 항의를 하였는데 이에 중국인들은 육식을 좋아하는 영국 사람들을 위해 요리를 개발한다. 젓 거락질이 서툴더라도 쉽게 잡고 먹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이 요리의 시초였는데 그게 바로 탕수육이다. 이 집 탕수육에는 새콤 달콤한 과일과 후루츠 칵테일 같은 것이 들어가 있어 풍미를 돋았다.
지방이 손질되어 있는 탕수육이다. 사실 녹말로 잘 감싸져 있기 때문에 가끔 화가 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바로 속을 씹고 보니, 아사삭 하는 비계가 씹히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러지 않아 좋았다. 예전에 자장면 집에 가면 꼭 먹고 나서 노란 요구르트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집도 꼭 자장면을 먹으면 요구르트를 주시는 듯했다. 우리가 아는 요구르트는 사실 1930년대 일본에서 발명한 유상균 발효유이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요구르트 또한 비슷한 음료이기는 하나, 요구르트 혼샤와의 기술 제유를 통해 판매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 기업의 음식인 듯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요구르트가 아닌 '요구르트'로 판매가 된다.
우리가 먹고 나가는 시간까지도 손님이 줄지어 들어왔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하셨는데도 꽤나 사람이 많이 찾아오는 듯했다.
하율이는 왜 '치즈~'하라고 하면 저렇게 옆 면만 보여주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쌍둥이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꼭 떡 하나 더 달고 나오는 느낌이 있다. 워낙 쌍둥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주의 시선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친절하신 사장님 덕분에 요구르트를 꽤나 많이 받았다. '자장면~ 자장면' 노래를 부르던 하율이와 다율이가 만족하고 나왔다. 예전에 군대 있을 적 내가 제주도에서 왔다고 하면 선임 선임들은 항상 어디가 좋은지 관광명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알고 있는 맛집도 알려달라고 했다.
곰곰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19살까지 고등학생이었다가 20살에 군대를 가고 22살에 유학을 갔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 한국에 돌아왔다. 제주에 대해 딱히 알고 있지 않은 나에게 아이와의 여행은 '제주 알기'라는 좋은 이유를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