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명언 중독에 걸려 있다. 지쳐 쓰러지는 체력을 붙잡고 하루를 나아가기 위해서 외부적인 자극을 꾸준하게 받는 사람들이 많다. 이처럼 명언 중독에 걸리는 일은 최초에는 나쁘게 볼 수만은 없다. 작심삼일이라고 할지라도 3일마다 작심한다면 분명히 지속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언 중독'은 자기를 움직일 외부적인 자극을 찾아 꾸준하게 움직인다. 다른 중독들처럼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나선다. 나 또한 명언 중독에 걸렸던 적이 있다. SNS에서 나를 자극하는 글들을 수첩에 담아두었다. 오늘을 움직어던 '명언'은 감각이 무뎌질 때까지 나를 자극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지 못한다. 그렇게 원동력을 잃게 될 때쯤, 나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선다. 이런 중독은 '독 중에 있다'라는 말로 해석된다. 결국 '독'이라고 하는 것은 강한 자극으로 나를 움직인다 할지라도 언젠가 나를 피폐하게 만든다.
명언 중독을 피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다. 책을 꾸준하게 읽다 보면 굳이 찾아 나서지 않는다 해도, 좋은 문장들이 하루에도 수 차례 나를 스쳐 지나간다. 그것들은 결코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다른 명언들처럼 자신의 위치에서 엉덩이를 내리 깔고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들과 달리, 이 것들은 능동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나에게 흡수된다. 하나의 반짝거림이 나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도 멈출 새도 없이 다른 반짝 거림들이 줄곧 이어진다. 이는 내 속에 쌓여 나를 움직이는 '한 문장'이 아니라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철학'으로 자리매김한다. 언젠가 나의 수첩에 적어 두었던 글이다. '오늘은 내일의 실패를 만회할 마지막 날이다. ' 이 글을 우연히 다시 읽자 가슴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어떤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 어느 순간이 이는 잊힐 것이고 꺼내본 순간부터 수 분 혹은 수 시간 동안 나를 움직일 자극제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독서가 없는 '명언'은 그것을 꺼내 볼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언제든지 사리질 의지가 되어버린다. 결국 중요한 것은 비어있는 순간과 순간마다 독서를 하며 언제든지 그런 명언들이 능동적으로 나에게 찾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두는 것이다. 책을 덮고 있는 것은 나를 자극할 그런 자극제들의 출입문을 굳게 닫아두는 것이다. 사실 내가 이 글을 문장을 쓸 시기쯤에 나는 상당히 하루를 헛되게 보내는 일에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항상 하루를 헛되게 보내고 나서 다음날이면 전날을 후회했다. 그런 날들이 쌓여감에 따라 나의 인생에서는 후회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바로 오늘 고치지 않는다면 내일은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쌓여가는 인생의 많은 날들 중에서 내일의 나에게 '실패'로부터의 자유를 선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오늘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분명하게 바꿀 수 있다. 그 기회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다.
성적을 고민하던 한 고1 학생에게 말을 했던 적이 있다. 5,000개의 단어를 외우면 수능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올 확률은 낮지 않을까? 하루에 10개씩 100일이면 1,000 단어 1년이면 3,600 단어를 외울 수 있다. 이론적으로 아침 식사 후 3개의 단어, 점심식사 후 3개의 단어, 저녁식사 후 3개의 단어면 고2 여름방학쯤에는 5,000 단어를 외울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실제로 글쓰기를 포함해서 대부분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여러 가지 일들은 짬짬이 몇 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일러준 충고이다. 그렇게 일러주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에 들어가서 곰곰하게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아침, 점심, 저녁 식사마다 '중국어'를 공부했다면 나는 2년 전에 중국어 5,000자를 마스터하고 4년 전에 '스페인어'를 6년 전에는 '독일어'쯤을 완성해야 한다. 나 또한 게으른 엉덩이를 바닥에 붙여 놓고 상대에게 충고를 하는 꼴이 우스웠다.
그 이후로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을 늘렸고 글을 쓰는 시간과 그밖에 짬짬이 시간을 활용하는 습관을 기르기로 결심했다. 나의 최초 생각처럼 하루 10개의 단어를 꾸준하게 외우며 다개국어를 마스터한 천재가 되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나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들을 성취해가며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흘러간 시간에 대한 후회는 언제나 드는 법이다. '해볼걸'이라는 후회보다는 '더 열심히 해볼걸'이라는 후회가 덜 후회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원래 부정적으로 생각하도록 뇌가 시스템 되어 있다고 했다. 어차피 후회할 것이라면 덜 후회하는 방향을 찾는 편이 낫다. 우리는 항상 최선과 최악의 선택지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선택지의 대부분은 차악과 최악을 골랐는데 있다. 나는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는 길을 택했다.
어차피 내가 한 일에 대해 많은 부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기왕 후회할 일이라면, 덜 후회할 수 있도록 내일의 후회할 나의 짐을, 오늘 조금 덜어 주어야겠다. 미래의 어깨 위에 올라갈 나의 짐을 덜어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나이며, 결국 그 마지막 날은 오늘일 뿐이라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