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처음으로 무너짐을 허락했다.

by 윤슬하


어느 날,

출근길 한 걸음 한 걸음이

땅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진인가 싶었지만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온하게 걸어갔다.


나만,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갔다.

“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긴장성 두통입니다.”

의사의 말이었다.


두통약을 받아 들고

다시 회사를 향했다.


그런데 이번엔,

걷는 것조차 버거웠다.


세상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걸

거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제야

정신과를 예약했다.


병원에 도착했지만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무언가에 쫓기듯 걸었다.


혹시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책장에서 책을 꺼내 들고

읽는 척을 했다.


병원에서도,

나는 괜찮은 사람인 척

나를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 안엔 또 다른 불안도 있었다.


흔히들 그러잖아.

“정신과 가서 회사 안 가려는 거 아냐?”


그 말이

마음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혹시 선생님도

나를 그렇게 볼까 봐,

내 진심을 안 믿어줄까 봐

너무 무서웠다.


왜냐하면...

다들 그랬으니까.


내가 정말 아프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아픈 척하면서 일하기 싫어서

편한 곳으로 온 거 아니냐”라고 했고,

내가 아픈 걸

핑계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

진료실 문을 열기 전까지

세상이 다 등을 돌린 것만 같았다.


‘선생님마저 안 믿으면 어떡하지…’

그 생각이 목을 꽉 조였다.


그런데도,

내 이름이 불렸고

나는 문을 열었고

선생님 앞에 앉았다.


그리고—

그동안 눌러왔던 말이

조용히 터져 나왔다.


“선생님… 제발…

1주든, 2주든

회사 안 나가게 해 주세요.”


선생님이 다급히 되물었다.

“정말, 안 가고 싶은 거예요?”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물이 흘렀다.


“네...

제발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무너짐을 허락했다.


그리고 동시에,

나를 살리기로도 했다.


모두가 내 마음을 의심하던 그 세상에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위해 말했고,

처음으로 내 편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은—

내가 무너졌던 날이자,

다시 살아가려는 나를

처음으로 껴안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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