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푸치 Jun 07. 2024

마푸치친구

비록 구슬손아주머니와는 인연이 닿지 못했지만 나는 그 뒤로도 같은 병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2020년 4월 20일, 날짜도 딱 장애인의 날에 운명적으로 마푸치증후군을 가진 분과 인연이 닿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마푸치친구는 병에 대해 함께 정보를 나누고 소통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어떠한 오해 없이 잘 받아주었고 서로 카톡 아이디를 공유했다.


같은 병을 가졌다는 끈끈한 동질감이 형성되었던 걸까. 우리는 연락하는 첫날 그동안 각자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서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누구보다 깊게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5살 어렸으며 남자였고 울산에 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신기한 인연은 그 친구도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처음 인연을 맺게 되었던 2020년 그 친구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2021년 초수에 바로 임용고시에 합격해 나와 같은 특수교사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이어가다가 직접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서로 방학기간에 맞춰 2022년 1월 20일, 우리는 울산에서 만났다. 한참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라서 각자 안전하게 그 전날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까지 받고 만났다.


점심쯤 울산역에 도착하니 그 친구가 마중을 나왔다. 나는 시각장애가 있어 운전을 할 수 없었지만 그 친구는 시각에는 이상이 없어 운전을 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러 부천에서 울산까지 겁도 없이 혼자 덜컥 와버리고 낯선 사람의 차까지 타고 이동한다니. 의심도 경계심도 많은 나에게 흔치 않은 결심과 행동이었다. 그렇지만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함께 살아있는 동안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에 30 평생 혼자 여행을 해본 적 없던 쫄보는 난생처음으로 혼자 나름의 첫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마푸치친구는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차로 이곳저곳 나를 데려다주었다. 우리는 밥을 먹고 산책을 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마푸치증후군이란 병을 알게 된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어릴 때부터 병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정상적으로 발달하는 왼쪽 팔과 다리를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맞추기 위해 7살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격년으로 뼈를 늘이는 일리자로프라는 수술을 받았다고 했다. 심지어 왼쪽 팔은 뼈 늘이는 수술은 하지 않았지만 죽은 사람의 뼈를 이식받아 잘라 넣었다고 한다. 팔과 다리에는 부러지지 말라고 철판까지 대놨다며 완전 튼튼하다고 웃으며 농담 섞인 말도 했다.


나는 이미 뼈의 성장이 다 멈춘 후에 병에 대해 알게 되어 손 쓸 틈도 없이 그 과정을 겪지 않았지만 그 친구의 어린 날의 성장 과정 하나하나가 남일 같지 않았다.


아마 나도 어릴 때부터 병에 대해 알게 되었더라면 2년에 한 번씩 정상적으로 자라나는 왼쪽 팔의 길이와 모양을 맞추기 위해 오른쪽 팔의 뼈를 늘이는 수술을 받았겠지. 그렇다면 지금처럼 비대칭적인 팔의 차이는 덜했겠지. 오른쪽 손과 팔의 기능도 조금은 더 나아졌겠지. 그렇지만 그 과정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인생의 절반을 수술로 보내며 감사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눈물을 흘리고 힘든 나날들을 견뎌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친구의 유쾌함이, 밝음이, 긍정적인 마음과 웃음이 참 좋았다. 그 친구는 자전거를 타는 것도 축구를 하는 것도 좋아했다. 비록 관절에 무리가 가서 많이 할 수는 없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때론 평범할 수 없는 상황에 우울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인생의 밝고 좋은 면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친구였고 그만큼 노력도 하는 사람이었다.


마푸치친구는 계속되는 수술과 여러 가지 이유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갔다고 했다. 나는 검정고시는 보지 않았지만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는 점도 신기한 공통점이었다. 둘 다 평범하게 돌고 도는 인생의 방향은 아니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온 서로가 있음에 감사했다.




우리는 병에 대해 각자가 알고 있는 미약한 정보도 함께 공유했다. 우선 마푸치증후군의 가장 큰 특징인 내연골종증과 혈관종. 나는 왼쪽 발에 혈관종이 많이 분포해 있어 가끔 신발을 오래 신고 걸으면 통증이 심해진다. 그런데 그 친구는 손바닥에 혈관종이 있어 나보다 외부로부터 마찰이나 충격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아 혈관종으로 인한 통증은 그 친구가 더 극심했다. 그런데 혈관종인 경우는 단순 절제술 말고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다. 그래서 혈관종에 대한 정보는 평소보다 혈관종의 크기가 커지거나 수가 늘어나는 경우, 통증이 동반되는 경우에는 좋지 못한 예후일 수 있으므로 그때는 빠른 조치를 취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또 혈관종의 경우 장기에도 생길 수 있으므로 몸의 표면뿐만 아니라 속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내연골종증의 경우 그 친구는 아직까지 큰 영향은 없어 보였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내연골종증으로 인해 나는 고생을 호되게 한 터라 관련 증상과 조치 등에 대한 경험을 나누었다.


이외에도 마푸치증후군일 경우 다양한 종양이 몸에 잘생기는데 외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마푸치증후군환자는 만 25세를 기점으로 종양이 악성화가 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2년에 한 번씩 전신 MRI와 뼈스캔을 해야 한다는 것도 공유했다. 특히 중배엽성 종양인 뼈나 근육, 부신 등에 종양이 발병할 가능성이 높고 이외에도 뇌종양이나 생식기와 관련된 종양도 잘 생길 수 있다는 내용도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 친구는 몇 년 전에 뇌종양이 생겼다고 말했다. 두통은 없었지만 귀에 이명이 생겨 검사를 받아보니 뇌종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종양의 위치가 위험한 자리에 있어 조직검사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뇌종양. 내겐 이름만 들어도 너무 무서운 병이었다.




헤어질 때쯤 그 친구는 하늘과 조금 더 가까워진 다리 위에서 내게 물었다.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바로 대답이 나왔다. 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는 날아가는 새를 보며 말했다. 자기는 다시 태어난다면 새로 태어나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보고 싶다고. 나는 그 친구의 앞날이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고 웃음 지을 수 있기를 기도했다.


나는 스스로 내 모습을 많이 보듬어 주지 못함을 느낀다. 아직까지 친한 친구들에게도 남들과는 다른 내 몸을 감추기 바쁘니까. 그런데 일면식도 없었던 사람에게 편하게 나에 대해 내비칠 수 있었던 것은 그 친구의 수용적이고 넉넉한 마음 덕분이었다. 배울 점도 본받을 점도 많은 친구였다. 병으로 맺어진 인연이지만 앞으로의 나날은 서로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보다 조금은 덜 아프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