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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푸치 Jun 29. 2024

갑상선암이 내게 알려준 것들 2

갑상선암을 진단받고 나는 오히려 새 생명을 얻은 느낌이었다. 전이된 곳도 없고 예후가 비교적 양호하기에 감당해 낼 수 있었던 부분도 있겠지만 몸과 마음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암덩어리를 떼내고 나니 조금은 정말 살만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 몸과 마음은 지속적으로 나 좀 살려달라고 애원했을지 모른다. 다만 현실에 치여 내가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했을 뿐. 지나친 불안과 강박으로 모든 것을 차단하고 막았을지도. 그래서 차라리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조금이나마 내 자신을 숨 쉴 수 있게, 잠시 멈추고 돌아볼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일을 시작한 2017년부터 코로나가 심각해지기 전인 2019년까지 내 평균 수면시간은 4시간이었다. 교직 경력이 많이 없던 내겐 모든 것이 벅찼다. 부족한 것을 채우고 모르는 것을 배우고 익혀도 시간은 언제나 부족했고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


몸이 너무 지치고 힘들어 저녁이 되면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수업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에 쓰러지는 몸을 이끌고 학교 교문이 닫히는 밤 9시까지 수업준비를 했고 퇴근을 해서도 주말에도 늘 수업준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준비해 낼 수 있는 수업 양과 역량은 수업 진도라는 놈이 너무나 가뿐하고 빠르게 추월해 나갔다. 그야말로 매일이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매일밤 마음 편히 자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눈물이 났다. 눈에서는 부지런히 눈물이 떨어졌지만 몸은 물 먹은 솜처럼 더 푹푹 꺼졌다.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은 아침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정말 미친듯한 피로감과 피곤함이 나를 끌어당겼다.


정말 미친듯한 피로감과 매일을 싸웠다.


일을 시작하고 입맛도 식욕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나는 식탐이 굉장히 강했고 피자 한판을 혼자 다 먹을 정도로 대식가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밥 한 그릇은커녕 밥 반공기도 못 먹고 남길 정도로 식욕도 입맛도 없었다. 생각해 보면 암을 진단받기 최근 몇 년간은 먹는 것에 대한 낙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무게가 단기간 내에 5~8kg 빠졌다. 중학생 때보다 더 적은 몸무게였다.


암이란 놈은 내 몸을 이렇게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과 정신도. 꽤 오랜 시간 나는 불안과 우울한 감정에 집어삼켜졌다. 어느 날은 심장이 불안정하게 뛰었고 공황 발작 같은 것도 몇 차례 찾아왔다. 하루하루가 순간순간이 온통 부정으로 뒤범벅된 삶을 보냈다.


정신과 마음 그리고 몸이 모두 병드니 내뱉는 말마다 하는 생각마다 행동하는 것마다 좋을 것이 하나 없었다. 이런 내 자신이 못 견디게 싫었고 미워졌다.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 거울을 보면 언제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나는 상담센터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원래 상담받을 수 있는 예약이 꽉 차서 빠르면 다음 주에나 상담이 가능했지만 전화기 너머 전해지는 내 목소리가 너무 심각해 보여서 상담사는 당일에 바로 시간을 내서 상담을 해주었다. 센터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결과는 강박증이 높은 것으로 나왔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해야 할 일 목록을 적고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이렇게 살다 간 죽을 것 같이 힘들어서 손 네민 상담센터는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고 따뜻한 상담사를 만나 감사했다. 그렇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라고 느껴졌고 선순환의 대열로 이끌어준 상담센터의 에너지를 발판 삼아 나는 정신과에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500개가 넘는 질문에 답하는 심리검사도 받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내게 내려진 처방은 신경안정제였다. 딱 하루 약을 먹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병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상태가 더 심각해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보조수단에 불과하다. 결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 자신이라고.


그래서 나는 무작정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정말 살려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 무렵 나는 운 좋게 나처럼 살려고 책을 읽기 시작한. 나와 너무나도 닮은 저자의 책인 ‘1천 권 독서법’을 아주 감명 깊게 읽게 되었다.


저자도 삶이 힘들어 책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고 책 800권을 읽었을 때 비로소 삶이 변화됨을 느꼈다고 한다. 나는 그 느낌이 어떤 느낌일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나도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열심히 읽기 시작했고 그 선한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나를 애서가의 길로 잘 이끌어주고 있다.




책과 사랑에 빠진 것은 내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암을 진단받기 전 읽었던 암과 관련된 책을 통해 치료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담대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고 방사선 치료 과정 중에도 암 투병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더할 나위 없는 큰 위로와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100권, 200권.. 1년에 평균적으로 100권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런데 가끔은 책태기가 찾아오기도 했고 여러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몇 번 주변에 할 수 있는 독서모임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지만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의 장애를 드러내고 밝힐 자신이 없어 늘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만의 울타리에 갇혀있었다.


그런데 어찌 되었든 암이란 놈이 불쑥 찾아오니 죽음이란 것도 이렇게 불현듯 찾아올 수 있겠구나 느껴 하루하루 살아 숨 쉬는 동안 조금이나마 하지 못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그렇게 2022년 2월 소모임 어플을 통해 독서모임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그다음 달인 3월에 첫 정모를 나갔다. 지정도서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였다. 참 기묘한 제목의 책이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시각장애가 있음을 말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스스로 만든 편견과 두려움이란  벽을 허물고 세상에 다가가니 이번에도 세상은 내게 귀한 것들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물론 그 귀함에는 말랑말랑하고 예쁜 것도 가득하지만 뾰족하고 이가 시리도록 냉정하고 냉혹한 현실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순간의 용기로 인연을 맺게 된 이 독서모임에서 나는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 결혼을 준비하게 되었다.




또 갑상선암은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굳건하게 지켜온 내 좌우명도 단방에 갈아치우게 만들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이용신 성우님을 좋아해 좌우명도 비슷하게 따라 해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자’였다. 그렇지만 그동안 너무 여유 없이 빽빽하게 살아온 것 같아 ‘이왕이면 웃자!’로 삶의 기준을 바꿨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늘 꿈에만 그리던 나 홀로 제주도 여행을 훌쩍 떠날 수 있었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떠나는 것이 별거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지만 내겐 엄청난 도전이었고 책 300권을 읽고 난 뒤 스스로에게 주는 값진 보상이었다.


예쁜 수국을 기대했으나 비가 많이 내려 수국이 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카카오택시를 부를 때 글씨가 보이지 않아 자꾸만 오타가 나서 땡볕에서 출발지와 도착지만 30분 넘게 입력을 해야 했지만. 감사했다.


예쁜 하늘을 볼 수 있음에 감사

따뜻한 햇볕을 받을 수 있음에 감사

살랑이는 바람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

사람들과 웃을 수 있음에 감사


모순적이지만 나는 절망의 끝에서
가장 진실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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