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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푸치 Jul 05. 2024

갑상선암이 내게 알려준 것들 3

2020년 여름 양성종양인 줄 알았던 종양이 갑상선여포암이란 판정을 받자 기능을 위해 남겨두었던 나머지 한쪽 갑상선마저 떼내야 했다. 조직검사 결과 왼쪽 갑상선은 여포선종이었지만 여포암이 될 가능성도 높을뿐더러 이미 한쪽이 갑상선암이라면 양쪽 다 떼내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2021년 1월 다시 수술대에 올라 나머지 갑상선마저 떠나보내야 했다. 신체 기관의 일부를 잃어버리는 상실감도 몸에 다시 칼을 대는 일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지만 되풀이되었다. 그저 바라는 것은 부갑상선만이라도 잘 붙어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다행히 수술이 잘 마무리되어 부갑상선의 기능은 살릴 수 있었고 갑상선의 기능은 매일 아침 작은 약이 빈자리를 채워주었다. 그런데 두 번째 갑상선 수술은 얌전히 지나가주지 않았다. 있어야 할 존재가 사라지니 기가 막히게 내 몸은 그 빈자리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엄청난 압축력으로 내 피부와 근육은 그 빈 공간에 달라붙었다. 물에 흠뻑 젖은 수영복이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 같기도 했고 성가신 무엇인가가 진공청소기처럼 몸에 들러붙어 나를 끄집어 내리는 느낌이었다. 근육 유착이 시작된 것이다.  신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한다는 것은 평온한 일이었다. 몸에서 일어나는 균열감은 매우 이질적이었고 현재를 충실히 살아가야 할 감각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근육유착의 후유증을 방지하기 위해 매일 조금씩 목 스트레칭을 했다.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꾸준히 이 작은 행동을 반복하는 일이었다. 그것도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범위와 속도로. 수술 후유증과 부작용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의 감정이 몰아칠 때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조금씩 부정적인 감정의 자리를 밀쳐냈다. 그 결과 꽤 오랜 시간 목의 불편감은 있었지만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심지어 불룩하게 자리 잡고 있던 종양을 제거하니 과거보다 더 예쁜 목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수술 후 목소리가 변해 쉰소리가 나고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조차 없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두 차례 성대결절을 경험해 본 터라 목소리에 대한 소중함과 중요성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말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고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시각장애 특수학교였다. 시각장애 특수학교에서 목소리를 잃는다는 것은 내게 마치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모든 것이 원활하지 않았다. 또 앞으로 교사로서의 삶도 진지하게 고민되었다. 억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내는 사람도 그 변한 목소리를 듣는 사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내 목소리는 음이 높고 쉰 목소리가  났다. 수업을 할 때는 중간중간 말소리가 나오지 않아 발성이 끊어졌다. 여러 사례를 찾아보니 수술 후 목소리가 금방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신경이 돌아오지 않아 평생 변한 목소리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그 막연한 길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음성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목소리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과 현재 변한 목소리라도 부정하지 않고 사랑해 주는 것이었다.




너무나 익숙했기에 늘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었기에 모든 순간순간이 흘러갈 수 있었던 것이었다. 수술 후 작은 일상생활 하나하나가 걸리자 비로소 나는 순간순간을 멈추고 느끼고 깨닫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평소보다 하늘을 더 올려다보았고 길가에 핀 꽃을 멈춰 서서 눈과 마음에 담았다. 애써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 않았고 내리쬐는 햇볕을 오롯이 느꼈다. 나무의 초록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빛바랜 낙엽을 고스란히 마음에 새기고 펄펄 내리는 흰 눈을 사뿐히 맞았다.


자연스러웠던 것이 평범했던 일상이 그 모든 하루하루가, 또 현재 지금 내가 오롯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과 맞이하는 하루하루가 감사했다.




수술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자 차츰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체온조절이 잘 되지 않고 비정상적으로 땀이 나는 현상은 때를 가리지 않고 종종 찾아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수술 전에는 여름에도 땀이 잘 나지 않을 정도로 땀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수술 후에는 한겨울에 땀이 뚝뚝 떨어져 바닥이 다 젖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땀이 났다. 춥지도 덥지도 않았던 집이었다.


몇 년 사이 크고 작은 변화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되돌리고 싶은 변화도 있었고 다가오는 것을 막고 싶었던 변화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떼내버린 종양과 떠나보낸 내 소중했던 갑상선의 자리에 더 많은 것을 품고 느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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