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볼까, 어떤 음식을 먹을까, 어디를 갈까. 설레는 마음도 같이 포장해서 가방 가득 챙겨 집을 나선다. 치약 맛 음식에 당황하고, 버스 뒷문으로 타서 앞문으로 내리기도 하고,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걸었던 광장을 현실 속 내가 걸어본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곳에서 느끼는 신선함, 적어도 `할까요? 했습니다`가 아니라 `해부러~했당께. 그런겨어어~` 정도의 끝처리가 다른 낯설고 물설은 곳으로 떠나야 여행이라 부를 수 있다. 여행이란 낯선 새로움을 주는 그런 것이었다.
실업한 덕분에(?) 시간이 많아졌지만 코로나 때문에 여행 가기도 힘들어 그저 동네 산책만 다녔다.
뒷동산을 오르고, 집 앞 개천 길을 걷고, 마을 구석구석을 누볐다. 작은 동네를 걷고 걸어봤자 그 건물에, 그 동산에, 그 개천이라 금방 지루했다.
'같은 길을 몇 번이나 걸어야 하는 거야, 순간이동이라도 해서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뿅~하고 갔으면 좋겠네.'라며 툴툴댔다.
변함없는 풍경도 한결같은 일상도 지겨웠다.
새로운 길 윤동주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오늘도... 내일도...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공기가 따스해지자 겨우내 말라비틀어진 산이 새순을 올리고 꽃망울을 피워낸다. 봄이다. 개천가의 누렇게 마른 풀 무더기에서 초록 잎이 샘 솟은 게 보였다. 잡초가 떠밀려 와 쓰레기더미를 이룬거라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생명이 움트고 있었다.
나무들은 몸통만으로는 이름을 찾아줄 능력이 없는 내게 꽃으로, 잎으로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너는 수양버들이고 너는 벚나무고 너는 매화나무고 너는 목련 나무였구나. 어제는 낯선 나무였지만 오늘은 이름을 아는 나무들 사이로 무채색 패딩을 벗고 파스텔색 웃옷을 입고 걸어간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다. 어제와 같은 길도 없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을 걷는다. 윤동주님의 눈을 빌려 일상을 여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