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사람들이 죽어난다

베이글 꿈으로부터 온 생각들

by 엄달님

2025.11.11. 화 8:33


베이글집 꿈을 꿨다. 잊어버리기 전에 다 쓰고 싶었는데 오줌이 너무 마려워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아무튼. 무지하게 장사가 잘 되는 베이글집이었는데, 베이글을 하나 먹으려면 하루 온종일 줄을 서야 하거나 아침에 예약을 걸어둬야 해서 내가 똑같은 베이글을 만들어다가 그 집에 가져다 놨다. (왜 집에서 안 먹고) 친구들을 데리고 - 친구들이 전현무 같은 연예인이었다. <나 혼자 산다>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었을까 - 내가 만든 베이글을 먹임과 동시에 원 베이글 맛과 비교를 하려고 했는데, 그 집에선 이미 모든 베이글이 다 팔렸다고 했다. 내가 똑같이 만들어서 가져다 놓은 베이글까지 다 팔아버린 거다. 장사에 눈이 멀어 가짜 베이글까지 손님들에게 진짜인 척 팔아버렸다니. (파이 집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상황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왜 뜬금없이 먹지도 않는 베이글 꿈을 꿨을까. 아마도 런던베이글뮤지엄 때문이 아닐까. 난 처음부터 그 집이 싫었다. 철자와 문법도 맞지 않는 영어로 메뉴판을 써 알아보지도 못하게 해 놓고 여기저기 유니언잭을 떡칠하고는 영국이랑 관련도 없는 베이글을 파는 이상한 가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영어 범벅을 해놓으면, 뭔가 외국처럼 꾸며놓으면 좋은 건 줄 알고 너도나도 가서 요상한 베이글을 사서 먹는 꼴이 별로라서 북촌 서촌에 아무리 자주 놀러 가도 한 번도 그 가게에 들르지 않았다. 사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조차 없었다면 거짓말이겠다. 조금은 먹어보고 싶었다. 다들 맛있다고 하니까. 그렇지만 어떤 내 반골 기질이 이미 발동한 상태였기 때문에 난 투사(鬪士)의 마음으로 가지 않았다.


요란한 겉멋에 취해 결국 사람 하나를 죽였구나. 빵이 좀 잘 팔리고 사람들이 칭찬해 주니 본인이 영웅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구나. 잘나지도 않은 인간이 잘난 척을 했구나. 안쓰럽다. 젊은 목숨이. 안타깝고 아깝다. 요즘 젊은 애들은 끈기가 없고 책임감이 없어서 일을 금방 그만두고 책임도 안 지려고 한다던데, (물론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바) 그러나 그 청년은 끝까지 책임지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아스러졌구나. 어떤 세대 든 간에 어른들은 '요즘 애들은' 하면서 혀를 끌끌 차지만, 그래도 '정직하고 바른 요즘 애들'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될 것 같다. '요즘 애들' 답지 않게 굴다가 이렇게 죽어나가는 요즘 애들이 있다. 여전히 죽는다. 일터에서, 군대에서, 학교에서, 남자친구에게서, 길거리에서, 집에서.


갑자기 오늘 아침엔 우리 사회가 어떤 사횐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어제 스물아홉이라는 나이 때문에 불안에 떨었던 게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서 그런 걸까?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스물여덟이 끝나도록 밥벌이 하나 제대로 못 할 줄은 나도 몰랐으니까) 누군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뭐냐 나에게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사실 너무 많아서 어떻게 답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비교하고, 헐뜯고, 잣대를 들이대고. 우리 역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세대차이로부터 비롯된 갈등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 그러나 이렇게 젊은 사장이 겉멋과 인기에 취해 욕심에 절어서 근로 계약을 맘대로 주물러 어린애 하나를 죽게 만든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스토킹을 당하다가 죽임을 당해버리는 여자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거다.


모르겠다. 나도 무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내 생각만 옳다고 우기면서 살고 있는 걸까?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죽어나가는 사회가 맞는 사회인가?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고 기형적이다. 틀렸다. 스스로 죽게 만들고, 이렇게 과로에 죽게 만들고. 갑과 을의 관계라면 존중할 줄 모르는, 을이라면 참는 게 당연하다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 아침에 꾼 꿈으로 인해 아침부터 사회적인 생각을 복잡하게 하게 된다. 비판으로 시작하는 아침이다. 오늘따라 모닝페이지를 쓰는 손이 느리다. 원래는 그냥 착착 생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써 내려가야 하는데,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벌써 이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지 30분이 넘게 지나가 버렸다. 여기서 어떤 생각을 하며 글을 끝마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한테는 이 한 목숨이 있어 감사해야 하는 건지. 그냥 다시 생각을 지워야겠다. 난 어렸을 때부터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불의에 싸우고 정의를 위해 싸우고 틀린 것을 바로잡기 위해 싸우고. 그런데 이 세상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누구를 위해 싸워야 할지 모르겠다. 이상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 복잡하다.


우선 오늘 할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 블로그를 쓰고, 치과에 다녀오고. 춤을 추고. 오디션에 지원하고. 집에 돌아오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일 테니 씻고 바로 자야지. 그러면 오늘 하루가 금방 끝나겠지. 정신이 이미 다 깨버렸는데 모닝페이지를 너무 길게 쓰는 것도 안 되겠다. 오늘은 이만 줄여야겠다. 그런 생각은 든다. 이 마음을 사람들이랑 나누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다. 오랜만에 열띤 토론이 하고 싶다. 뭐 그런 거. 암튼 줄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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