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스물아홉

2026년의 계획과 함께

by 엄달님

2025.11.10. 월


아침을 코다리찜으로 먹고 나서 쓰는 모닝페이지. 어저께 J와 가을 나들이로 우리 가족의 오랜 추억이 깃든 양평 용문에 다녀왔다. 10년이 넘게 주말집으로 서울과 용문을 오갔고, 그 집에서 고양이 밥도 주고 잔디 풀도 뽑고 고추 농사도 짓고 추석 송편도 만들었다. 그 동네에 대학교 사람들, 고등학교 동창들, 초등학교 동창들, 등등 내 지인도 많이 데려가 놀았다.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고 별내로 이사 올 때도 눈물을 흘렸지만, 용문 집이 팔리고 완전히 집을 비우는 날도 눈물이 났다. 난 동네를 떠나는 것이 싫은 사람이구나. 쓰면서 알겠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는구나.


그래서 J에게 용문으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공유 자동차를 빌리는 게 너무 비싸서 경복궁에 가야 할까 고민했는데 당일 예약 특가로 빌릴 수 있었다. 그래도 간만에 힘 준 나들이라 돈을 많이 쓰긴 했지만, 후회가 없다. 살면서 이런 날 하루 없으면 재미없어서 어떻게 사나. 용문 가는 길에 충동적으로 두물머리에 들러서 핫도그만 먹었다. 방송 한 번 잘 타면 이렇게 오랫동안 대박집이 될 수 있구나를 실감했다. 역시 방송의 힘이란.


언니가 결혼했을 때만 해도 용문집에 오갔으니 형부까지는 그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다. J만 가본 적이 없으니 아쉽다. 가족이 되려고 마음먹으니 뭐라도 우리 가족의 추억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그래서 용문에 갔던 걸지도 모른다. 엄마와 이모와 용문역으로 나들이 갈 때 걸었던 길을 함께 걸었다. 언니와 심부름 가던 길이다. 양쪽으로 쭉 길게 뻗은 나무가 장관이라 아무도 모르는 단풍 명소를 찾을 것 같다는 생각에 두근거렸지만, 사실상 나뭇잎이 다 떨어져서 알몸길만 보고 왔다. 그래서 봄에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 아니면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가야겠다. 용문산 은행나무도 보여주려고 용문사 관광도 다녀왔다. 천 백 년이 넘는 해 동안 사람들은 다 죽고 나무는 살아있다. 나무는 참 커다랗고 굳고 경이로운 존재다.


신발이 발에 잘 안 맞아 (워낙 발이 넓고 기성 제품에 잘 안 맞는다) 발이 아픈 까닭에 양말만 신은 거의 맨발로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산을 내려오면서 내가 세운 내년 계획을 J에게 알렸다. 한예종 전문사 연기과 시험에 도전할 것이다. 10년 주기로 한 번씩 강하게(?) 열심히 사는 시기가 돌아오는 것 같다. 열아홉의 나는 대학에 못 가고 미래를 망칠 것 같은 두려움에 지난 2년의 학교생활을 속죄하듯 열심히 수험생활을 보냈다. 이제 내년 스물아홉의 나는 지난 3년간의 나태했던 배우 생활을 속죄하겠다. (나태했나, 아닌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치열하진 않았던 것 같다) 치열하게 보내겠다.


내 계획을 이것저것 챗 GPT에게 알리고는 현실적인 조언을 부탁했더니 목표가 너무 많단다. 그래서 할 일이 분산되니 큰 목표를 몇 가지만 두라고 하더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1년 안에 이룰 수 없는 너무 많은 계획을 세웠었다. 그래서 두 가지만 남겨뒀다. 한예종 전문사 시험과 해외 워크숍 혹은 아카데미 들기다. 뉴욕이나 런던에서 단기 연기 워크샵을 들을 계획을 세웠다. 세계화 시대에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곳을 국내에만 한정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내년엔 언어 공부만으로도 치열해야겠다는 생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가야 한다.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눈이 반짝일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살아 숨 쉴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 이건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자 하는 나의 소명이다. 연말에는 경제 공부를 하겠다고 다짐하며 (할머니가 도와 달라고 부른다. 그런데 나는 안 가고 있다.) 책을 두 권 빌렸다. 다시 글자를 가까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몇 시간 도서관에 앉아있다 보니 집에서보다 차분해지고 좋았다. 아, 치과에 예약을 변경한다는 전화를 해야 한다.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곧 스물아홉이라는 내 나이에 조급해지기 시작했었다.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이 계획을 실천하지 않으면 이제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침대에서 생각만 하는 시간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년이 쏜살같이 흘렀다. 10년 후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까? 일단 오늘은 할머니가 병원에 가는 날. 가족 다 같이 동행하고 함께 점심을 먹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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