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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 Oct 11. 2022

ASD 삼각지대

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5화)

자폐스펙트럼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을 의심하고, 걱정하는 엄마라면 세 가지를 한 번씩 짚고 넘어가게 된다. 호명, 포인팅, 그리고 공동주의. 호명 (Response to name)이라 함은 아이의 이름을 불렀을 때 잘 돌아보는가의 여부. 포인팅 (Mand; Pointing)은 자신이 원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두 번째 손가락만 길게 뻗어 콕 집어 표현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더불어 타인이 어떤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을 때 그 사람이 가리킨 쪽을 적절히 바라보고 반응할 수 있다면 공동주의 (Joint Attention)가 잘 된다고 이야기한다.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엄마 아빠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서 “이것 좀 보시라”고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세 가지를 문제없이 이행한다면 걱정이 없겠으나, 세 가지 요소가 만든 삼각형에서 어느 한쪽의 꼭짓점이라도 흐릿해지면 그 도형은 무너진다. 자폐는 미완성인 삼각형에 위기를 느끼면서부터 찾아온다.


이름을 불렀을 때 바로 돌아볼 수 있는가. 원하는 것을 적절히 가리킬 수 있는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바라보자고 조를 수 있는가. 호명과 포인팅, 공동주의는 실로 중요한 잣대다.



세 가지가 약해서요
호명, 포인팅, 공동주의요


호명과 포인팅, 공동주의. 이 세 가지의 공통된 특징은 '공들여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하게 되는 것'들이라는 데 있다. 내 아이가 두 돌이 지나도록 포인팅을 잘하지 않았을 때, 돌도 채 되지 않은 여자아기가 놀이터에서 야무지게 포인팅을 하는 걸 보며 내심 속상했던 적이 있다. 이름 한 번만 불러도 생긋 웃으며 돌아보는 어린이집 또래 친구가 진심 다해 부러웠다. 키즈카페를 찾은 또래 엄마가 "누구야 저기 봐봐"했을 때 그 저기를 돌아볼 줄 아는 아들 녀석 또래는 천재가 아닌가 싶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우리 애였기에 나는 점점 미로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버뮤다 삼각지대보다 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갈 길을 잃은 느낌.



잘하는 것 있어요!
우리 애 눈 맞춤은 잘해요


희망을 갖고 싶었던 부분 하나는 바로 '눈 맞춤'. 딱히 가르치려 하지 않아도 다들 때가 되면 한다는 호명과 포인팅, 공동주의였건만 우리 애에게는 너무나 벽 높은 과업. 허나 눈을 맞추면서 상대방에게 원하는 바를 표현하려 애쓰는 모습만큼은 긍정적 신호였다. 만약 눈 맞춤마저 어려웠다면, 자폐스펙트럼을 합리적으로 의심하게 만드는 삼각지대가 더 난해한 사각지대가 될 뻔했다. 이름을 목청껏 힘주어 부를 때나 겨우 돌아보는 녀석이 본인이 원하는 게 있거나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을 땐 꼬박꼬박 눈을 맞췄다. 해야 할 과업을 이렇게나 또랑또랑 해내면 아무 걱정이 없는 것을. 나머지 삼각 요소들도 이렇게 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아들, 딴 건 몰라도
포인팅 하나만 잡아주셔도 좋겠어요


아동발달센터 곳곳을 상담 다닐 때마다 했던 이야기. "일단 호명이랑 포인팅만이라도 확실히 가르쳐주시면 정말이지 너무 좋겠어요." 상담을 넘어서 사정을 했다. 한 달이 걸릴지 두 달이 걸릴지 확신할 수 없는 거였다. 수학교재 진도 나가듯이 진도를 뺀다고 되는 게 아닐 테니까. 영어단어 외우듯이 작정하고 붙들고 있는다고 해서 미션 완료할 수 있는 성질의 배움이 아닐 테니까. 아무리 행동치료에 기반한 똑똑한 ABA 수업이라고 할 지라도 그게 어디 쉬울까. 안되던 것들을 되게 만든다는 것은 톡톡히 어려운 일이다. 그 대상이 아이라고 한다면 더더욱이 그렇다.


ASD의 버뮤다 삼각지대. 세 가지의 덫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자폐의 버뮤다 삼각지대, 그러니까 자폐 징후를 보이는 아이에게 치명적 약점인 세 가지 ㅡ호명, 포인팅, 공동주의 ㅡ 에서 진정 구조될 수 있는 날이 찾아오기는 할까. 혹자는 일찍 치료 노력을 시작하면 할수록 개선될 수 있는 여지가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못하던 걸 조금이나마 '시도할 수 있게 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은 내게 미궁의 삼각지대에서 겨우 헤엄쳐 나올 수 있다는 궁극의 비책처럼 반가웠다. 돈 안 들이고 자연스레 배우는 편이 가장 나았겠지만, 지금이라도 치료 가능성을 확인한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하여 엄마인 나는 매일 새벽 아이의 몸짓을 더더욱이 세심히 살핀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때가 되면 (그러니까 또래들의 때가 아닌 우리 애 본연의 때) 삼각지대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뿐히 과업을 '탈출'하고야 말겠지. 호명, 포인팅, 공동주의. 요 삼각 지점들이 텅 비어 있어 사람 쪼그라들게 만들었던 지난날들이여, 안녕. 호명하기도 전에 달려와서 엄마에게 원하는 것을 포인팅 할 수 있는 똑똑한 날을 기다린다. "어머 저게 뭐야?" 화들짝 놀라 저쪽 좀 보라며 유도하는 엄마의 애타는 가슴을 한 번이라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쿨한 아들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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