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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 Oct 19. 2022

‘자스’도 연애할 수 있을까

자폐를 품고 살아가는 방법 (9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적잖이 미소 지었던 순간이 있다. 바로 드라마 속 우영우가 준호 씨와 썸을 타는 장면들. 우영우는 남몰래 준호의 일하는 모습을 염탐하기도 하고 출근길 막연히 앉아 준호를 기다리면서 그의 발걸음만 보고서도 설레는 마음을 예쁘게 피운다. 사회적 의사소통에서 중대한 결함을 지닐 수 있다는 게 ‘자폐 스펙트럼’를 겪는 사람들에게 공통된 특징이라지만 서툴게나마 ‘연인관계’를 시작하고 호감을 드러내는 ‘상호작용’을 한 발짝씩 배워나가던 모습, 그 어리숙함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시작하는 연인들의 장면을 바라볼 때면 그게 드라마 속 이야기든, 실제 상황이든 시청자마저 덩달아 마음이 ‘꽁기꽁기’ 설레기 시작하기 마련. 특히 아들의 자스 성향에 대한 고민이 나날이 이어지던 차에 천재 자폐 변호사의 ‘연애 에피소드’는 더더욱이 흐뭇한 엄마미소를 자아내게 만들었다. 뒤이어 이어진 물음표 하나.


우리 아들도 이다음에 연애할 수 있을까


드라마 속 우영우는 매회 지극히 분명한 ‘자스’ 성향 두 가지를 보인다. ‘고래’라는 주제의 제한된 관심사, 그리고 새로운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몸을 바르르 떨면서 하나 둘 셋을 손가락으로 접어 세던 몸짓. 문에서 문을 넘어설 때 새롭게 쏟아지는 자극 정보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듯 찡그린 표정도 얹힌다. 회차마다 변호해야 할 의뢰인은 달라졌지만 우영우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행동들에는 변함이 없었다.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야 고작 주 2회 우영우의 특이한 습관을 접하지만 실제 생활 속 우영우와 마주하는 사람들은 꽤나 특이한 몸짓들을 매일 접해야만 한다. 태어날 때부터 살을 맞대 온 사람들이라면 이미 체념하고 받아들였을 법도 하지만… 이제 갓 ‘썸’ 타기 시작한 연인이라면 어떨까. ‘자스’ 연인의 남다른 행동, 고집과 집착, 일련의 상동 행동 (repetitive motor-sensory behavior)에 쉽게 끄덕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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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뒤 우리 아들이 소개팅에 나간다고 상상해 봤다. 자칫 이렇게 요상한 대화 풍경이 펼쳐지진 않을까. 고래’의 모든 것에 집착한 우영우가 있다면 우리 집에는 ‘자동차’에 유별나게 집착하는 아들이 있다. 아들아, 제발! 그러면 안돼… 갓 30개월 지난 아들일 뿐인데 벌써 30년 뒤의 몸짓과 말투가 촤르르 펼쳐지는 느낌. 연애라는 게 호감 가는 상대방과 공통된 관심사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는 법인데 한 가지 주제에 남다른 집착을 보이는 자스 아들, 왠지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도 ‘자동차’ 얘기만 할까 봐 걱정된다. 고전 영화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도 스크린 속에서 ‘차’ 나오는 장면만 반복 재생할 것 같고, 책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를 만나면 ‘자동차 백과사전’ 류의 책을 선물할 것만 같다… 이골 어쩌면 좋담. 내가 차를 좋아하는데 너는 왜 차를 싫어하느냐고 도리어 화를 내진 않을까. “도저히 널 이해할 수 없다”며 이별을 선포해버리면 어떡하지.


‘탈 것’에 꽂힌 아들의 취향. 이 단단한 집착의 굴레에서도 우리 아들 연애할 수 있을까.


너 한번, 나 한번
턴 테이킹 (turn taking) 교육이 중요해요


자폐스펙트럼 징후를 가진 아동 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어떤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한번, 나 한번 ‘번갈아 하기 (turn taking)’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고. 내 차례가 오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나 다음 상대방에게도 공을 던져줄 수 있는 유연한 태도가 필요한 거라고. 운동 경기로 말하자면 탁구나 배드민턴이 좋은 예. 나 혼자 공을 독차지하면 알찬 경기로 풀 수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서브를 넣어줘야 공도 이쪽저쪽 골고루 오가며 활력을 껴입는 법. 그러니까 선수 혼자서 단독으로 공을 가지고 요리하고 싶더라도 때가 되면 공을 던져줘야 한다. 다시 말해  타인을 인지하고 그의 관심사에 귀 기울일 줄 안다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나만 말하고 싶더라도 한 번쯤은 양보하고 ‘그녀’ 먼저 얘기하라는 배려, 이것이야말로 “이제 연애해도 되겠네”의 지표가 될 것 같다.


나는 카페라테가 좋은데 넌 왜 카푸치노가 좋은 거냐며. 자기 취향만 고집하진 않을까. 아들의 유별난 취향과 집착이 ‘연애’라는 청춘과업을 방해하진 않을까.


우리 아들 연애할 수 있을까. 한 가지에 꽂혀서 매번 같은 단어 말하기를 좋아하고 같은 장난감으로 놀이하는 패턴이 단단한 우리 아들, 수줍은 썸 타는 게 가능할까.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접해도 가슴이 저릿해지는 ‘자폐 스펙트럼’일진대 이를 적잖은 시간 함께 해 줄 (이라 적고 ‘견뎌내 줄’이라고 읽는다) 연인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나와 다른 상대의 특징에 반하는 게 연애라지만 ‘정상’ 범주에서 많이 빗겨 난 비상한 관심사를 누군가가 ‘매력’으로 보아줄 수 있을지 벌써부터 초조해지는 엄마 마음.


드라마 속에서도 우영우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야기한다. “저는 결혼을 하긴 어려울 겁니다. 자폐가 있으니까요.” 쉽지 않을 연애, 감히 상상하기 어려울 것만 같은 결혼생활일 테지만, 그래도 엄마로서 가끔은 아들의 무던한 연애를 응원하고 싶다. 누가 봐도. 이상하지 않을. 지극히도. 평범한 연애. 아들의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특수한 관심사에도 기꺼이 지겨워하지 않을 ‘백마 탄 공주’가 어딘가에서 등장해줄지 나도 함께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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