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검사 결과 임신이 맞았다. 임신이 확실해지자, 입이 간지러웠다. 안정기가 지난 후 주변에 알릴 생각이었지만, 임신은 존재감은 너무 컸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의지를 거스르고 임신 아웃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했다.
마스크 뒤 방긋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누군가 알아차리곤 "혹시 좋은 일 있어요?" 물어봐줬으면 했다. 안타깝게 나는 투명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아 내 빙그레 입은 누구도 보질 못했다.
마침 저녁에는 해묵은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다. 오늘 나오지 않는 친구 중 하나는 나보다 먼저, 더 진지하게 임신을 준비 중이었다. 기대와 달리 아이가 찾아오지 않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어,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됐다.
'안정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을까?'
'안정기는 언제지?'
'임신으로 스트레스받는 친구에게 어떻게알리면 좋을까?'
기쁜 소식 다른 반응
아내와 나는 e(외향)와 i(내향)다. 좋은 일이나 나쁜 일이 있을 때, 반응이 다르다. 내향인 나는 주변에 알리지 않는다. 특히 고민이 될 때면, 더 깊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외향인 아내는 반대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주변 친구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지인들은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임산부 전용 치약, 차, 과자 등 다양한 선물을 보내왔다.
역시 좋은 일이 생기면, 인간관계가 드러난다. 얇고 넓은 인간관계를 가진 나는 아직 안정기가 찾아오지 않은 임신을편히 말할 사람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주변과 좋은 일을 나누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주변과 함께 나누며 사는 삶도 꽤 괜찮다고 느꼈다.
아내는 자신에게는 시어머니인 엄마에게자신이 먼저 전화할지 물었다. 그게 참 고마웠다. 교양 프로그램을 많이 접한 엄마는 '좋은 시어머니' 프레임 속에 산다. 결혼 3년 차인 우리의 임신 소식을 누구보다 궁금해했지만 아내 앞에서는 쉽사리 말하지 못했다. 단 엄마를 빼면 모두 엄마가 긍금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의 전화를 받은 엄마는 곧 내게 전화했다. 엄마의 목소리를 통해 진심 어린 기쁨이 전해졌다. 축하와 기쁨과 걱정 등 복합적인 감정들이 느껴졌다. 엄마에게 내 아이 임신을 축하받는 것은 낯선 경험이었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엄마는 아들 둘을 낳았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열약한 환경이었다. 소통의 한계가 있는 무뚝뚝한 아들 둘. 엄마는 형과 나를 최선을 다해 키웠다. 아들 둘은 모두 독립했다. 2명의 손주가 있는 할머니로 승격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이제 또 한 아이의 할머니가 된다. 아이를 갖고 나니 내 기억에 없는 부모님이 나를 갖었을 때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 같았다. 그때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떤 느낌이었을까?
나는 저녁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까지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우선은 말을 아끼기로 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그렇게나 기다렸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등장했다.
"애는?"
나는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하자고 했고, 2차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Off the record다. 아이가 생겼다. 아직 안정기가 아니라 조심스럽다.
정말 오늘 딱 병원에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들은 첫 예비 아빠의 탄생을 축하해줬다.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고 나니 조금 더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