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밀
'구멍이 숭숭'이라는 표현은 내게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어설프고, 실수도 잦다.
길도 잘 못 찾고, 기억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기록과 비교해 보면 조작된 기억일 때가 많다.
그래도 그럭저럭 사고 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해내고 있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대하는 내 나름의 알고리즘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일 처리 알고리즘]
대충 해도 괜찮은 일 vs 대충하면 큰일 나는 일
대충해도 괜찮은 일이면 그냥 후다닥 해치워버린다. 그리고 끝.
중요하고, 다른 사람과 엮인 일이면 일단 후다닥 하고 다시 보고 또 다시 본다.
두세번은 기본이고 심할 때는 다섯번을 보는 경우도 있다.
(시험문제를 출제할 때는 열번쯤 보는게 기본이다.)
'초등 아들 둘을 데리고 공부하는 것'은 위 두 종류의 일 중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엄마표 수학' 관련 유튜버들이 말하듯,
"칠팔 오십이"라고 외우는 아이를 다그치고, 다그치고, 반복하며 눈물을 쏙 빼서라도
반드시 "칠팔 오십육"이 1초만에 튀어나오게 만들 이유가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일 수학을 하고 있다'면, 괜찮다.
이유1. 수정할 기회는 우리나라에서 학교를 다니는 한 무궁무진하게 많다.
아이는 이후 만날 시험에서 칠팔 오십이 때문에 100점을 놓칠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경험으로 자연스레 수정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이동시킬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초등에서 100점을 놓쳤을 때 가장 큰 일은 아이 본인의 자존심이 다치는 것 밖에 없으니 목숨걸고 하나하나 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유2. 우리 나라 수학교육과정은 나선형이다.
단계가 높아지면서, 똑같은 것이 반복되되, 조금 더 폭이 넓어지고 양이 많아진다.
'두자리 받아내림'이 이해가 안간다고 하면, 방법만 익혀두면 된다.
일년이 지나 '세자리 받아내림'을 할 때가 되면, 별 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를 한다.
일년 쯤 하는 방법을 익히면서 저도 모르게 뇌가 발달되었기 때문이다.
초등에서는 '매일 하는 것'은 대충하면 안되는 일 이지만,
'완벽하게 아는 것'은 좀 대충해도 된다.
'얘 진짜 내새끼 맞나...'
함께 수학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말이 있다.
내 기억속의 '올 수' 통지표가 (내 기억의 조작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남긴, 나는 적어도 얘처럼 어리버리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 팩트일까?
그 시절 나를 보며 우리 엄마도 지금의 나와 똑같은 한숨을 쉬었을 지는, 우리 엄마만 알 일이다.
(우리 엄마는 입이 무거우시다. 감사한 일이다.)
뭐든 한참 하면 엉성한 곳들이 슬금슬금 메워지더라고요.
조금이나마 그런 걸 허용하면 좋겠어요.
외나무다리를 비틀비틀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사람을
응원해주면 좋겠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바라보더라도
‘어! 저 녀석 보게. 결국엔 건너갔네!’라고 말하는
뿌듯한 경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돼’ ‘균형을 잡아야 해’ ‘실수하면 안 돼’라는 말만 하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도록 도와주지도 못하면서
준비만 잔뜩 시키는 그런 교육을 이제는 그만해야죠.
<최재천의 '공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