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등을 기대
유안과 나는 미로 정원에 갔다가 갇힌 적이 있다. 사람의 눈높이보다 두 뼘쯤 키가 큰 나무들이 촘촘하게 서 있었고, 그 나무들 사이로 두 사람이 겨우 거닐만한 좁은 샛길들이 만들어져 있었다. 우리는 미로 입구로 들어가기 전에 직원이 안내해 준 전망대에 올라가 전체를 조망하는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막상 미로 속으로 들어가고 나니 우리의 현재 위치가 사진상에서 어디쯤인지 알 수 없었으므로 그건 결국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우리는 둘 다 방향 감각이 없는 편이었고, 걷다 보면 매번 막다른 길이 나오고야 말았다. 입구에서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보통 30분 안에 출구를 찾아 나온다고 했지만 우리는 두 시간이 넘도록 미로 정원 속에서 헤맸다. 한여름의 늦은 오후 시간이어선지 입장객은 우리밖에 없었다. 간혹 고양이들이 나무 사이로 들어왔다가 사라지곤 했으나 고양이들을 따라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덥고 습한 날씨여서 이마와 등줄기에서는 땀이 자꾸 흘러내렸다. 하지만 흙 냄새와 나무 냄새로 가득 차 있던 좁고 고요한 길에서 유안과 함께 어깨를 부딪치며 오래 걷던 그 시간, 나는 비밀 편지를 쓰고 있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때 유안과 나는 연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단순한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 일들이 이 세계에는 무수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때도 나는 믿고 있었다.
나에게 등을 기대.
미로를 헤맨 지 두 시간쯤 지났을 때 유안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세우며 말했다. 나는 데칼코마니 같은 자세로 유안의 등에 내 등을 기대고 앉았다. 맞닿은 등의 열기와 습기. 그 사이를 휘감던 모호한 공기에 우리는 숨이 조금 가빠졌다. 짧은 순간 동안 아주 미세하게 빨라진 호흡. 사소하다고 해서 그것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전화해 볼까?
등을 맞댄 채로 유안이 그렇게 말했기에 나는 입구에서 받아둔 직원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직원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리를 잊은 걸까?
유안은 바닥에 있는 작은 돌멩이들을 공깃돌처럼 던졌다 받으며 말했다. 설령 우릴 잊었더라도 괜찮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유안에게 말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