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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아 Oct 20. 2024

우물 속 빅뱅 (2화)

세상은 거대하고 피곤하고

시간이 좀 더 흐르고 주위가 어둑해졌을 때 직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매표소 안에서 잠이 들었다며 다급하게 사과를 하더니 어디에 있냐고, 휴대폰 라이트를 켜서 흔들어 보라고 했다. 그때까지 등을 맞댄 채 바닥에 앉아 있던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여기요, 하고 외치며 휴대폰 불빛을 흔들었다. 

아, 거기군요. 곧 갈게요. 

직원이 전망대에서 소리쳤다. 청록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은 놀랄 만큼 빠르게 우리에게 당도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깜빡 잠이 드는 바람에… 시간이 이렇게 된 줄 몰랐어요. 

우리는 괜찮다고 직원을 안심시키고는 그가 이끄는 길로 따라갔다. 

다들 왜 이렇게 피곤한 걸까.

미로 정원 밖으로 나왔을 때 유안이 말했다. 피곤한 걸로 치자면 우리도 할 말이 많았다. 쿠르르릉 지이이잉. 머리를 깨뜨려버릴 듯이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뒤편에 주저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관리자에게 혼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은 거대하고 피곤하고.

맞아.

출구도 안 보이고.

고양이들만 신났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은 나도 그 순간 고양이가 된 것만 같았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어디든 통과해 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내 등에는 유안과 나누었던 열기와 습기가 남아 있었고.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유안은 입구 매표소에 걸려 있는 그림엽서를 만지작거렸다. 미로 정원의 어느 샛길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그림이었다. 30분 이내에 출구를 찾아 나오면 상품으로 그 엽서를 준다고 했었는데 우리는 탈출에 실패한 사람들이었다. 

판매는 안 하나요?

내가 묻자 직원은 난감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우릴 잊은 게 미안해서라도 엽서 한 장 정도는 그냥 줄 법도 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고 규정은 규정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직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 몰래 훔쳐서라도 유안에게 선물해 주는 건데. 나는 지금 그런 후회가 든다. 평생 도둑질은 해본 적이 없지만, 그 애를 위해서 엽서 한 장쯤은 훔쳐도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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