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지
유안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대기업의 반도체 생산 라인에 취업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3년 만에 그만두고 좀 쉬다가 여기로 온 거야.
조금 놀란 채로 나는 유안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거기 들어가기 어렵잖아. 성적이랑 출결도 좋아야 하고.
유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왜 그만뒀어? 여기보다 훨씬 나았을 텐데.
같이 일하던 친한 언니가 암에 걸렸어. 산재 인정 받으려고 같이 싸웠는데 결국 죽었어. 우리는 아는 게 너무 없고 돈도 시간도 없고. 그렇게 되고 보니까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싸워야 하는 상대는 너무 커서 한눈에 보이지도 않는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땀만 뻘뻘 흘리고 있는 거야. 그렇게 같은 자리를 빙빙 돌다 언젠가 픽 고꾸라지듯이 죽겠지. 아무것도 아닌 채로.
우리는 공장 담벼락에 기대어 담배를 나눠 피던 중이었다. 담벼락은 높았고 그늘은 깊었다. 아무것도 아니라니. 그렇지 않다고 유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는 담배를 다 피우고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입을 맞추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마음과 이럴 수밖에 없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담벼락은 높고 그늘은 깊고 우리는 작았다. 작디작았으므로 아무도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영원히 누구도 몰랐으면 했다. 우리에 대해 함부로 규정하고 수군거릴 말들. 키득거리고 비아냥거리며 술자리의 안주 삼아 떠들어댈 이야기들. 그토록 가볍고 무례한 언어 속에 유안의 이름이 호명될 것을 상상만 해도 슬프고 화가 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애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조심해야지. 누구에게도 들키지 말아야지. 매일 그렇게 다짐했다.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유안의 이름을 그런 식으로 질겅질겅 씹다가 뱉어버릴 것이 싫어서. 유안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나에게 그 애는 유일하고 고귀했다. 오직 그런 마음이었다.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세계로부터 그 애 하나는 지켜내고 싶다는 마음. 매일 숨 쉬듯 그런 다짐을 하면 많은 것을 견딜 수가 있었다. 유안은 그런 나의 태도를 이해하면서도 가끔 서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