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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Dec 29. 2021

크리스마스에 딸내미가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앗, 여기 같이 온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결혼까지 생각하나?  그럼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에 초대를 해야 하나?  안 할 수도 없고..  하지만 우린 호들갑을 떨어선 안된다.  쿨하게 자연스럽게 친구를 초대해야 한다.  


토론토에서 공부 중인 첫째 딸이 이번 크리스마스 방학에 집으로 오면서 남자 친구를 데리고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자 친구가 따라왔다.  2주 정도의 휴가를 함께 보내기 위해서다.   


밴쿠버에 있는 자기 친구 아파트에서 머무를 예정이라 한다.  만난 지 2년 좀 넘기는 했으나 서로 공부하느라 일하느라 떨어져 있었기에 실제로 데이트를 한 것은 6개월 정도 되지 싶다.  둘 다 이성 교제는 처음이고 융통성이 좀 없는 편이라 서로 친해지기까지 엄청 시간이 걸렸다.  아니, 내가 보기엔 아직도 그다지 친해 보이진 않는다. 그런 둘이 같이 집으로 온다고 한다.    


둘이 결혼할 거야?  하고 물어보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우릴 쳐다본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그 정도로 좋아하는지도 아직은 모르겠다고 한다.   그래도 우린 궁금하다.  어떻게 모르지?  그래도 모르겠다는 애한테 계속 물어봐 봤자 명쾌한 대답은 못 듣고 스트레스받는다고 할게 뻔하니 그냥 우리도 별로 안 궁금한 척한다.  우린 쿨한 엄마 아빠니까.


몇 년 전에 둘째 딸이 남자 친구를 집에 데리고 와도 되냐고 물어봤을 때, 결혼할 것도 아닌데 뭐하러 데려와?  라며 차단을 시켰었다.  우리 한국 부모들은 당연히 그렇지 않은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분명히 지나가는 남자 친구인 것이 뻔한데 뭐 굳이 우리 집에까지?  게다가 한국 아이도 아니고 영어로 소통해야 하니 우리는 더더욱 내키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여기 문화는 그게 아니었다.  그냥 사귀는 사이도 자연스럽게 부모들이 식사에 초대해서 가볍게 함께 시간을 보내곤 한다.  우리 딸도 그 남자 친구 집에 자주 초대받아서 갔었는데 그때마다 난 못마땅해했었다.  하지만 그 친구 부모들도 그렇고, 그 친구도 우리한테 인사를 안 하는 것을 오히려 아주 실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아직까지 인사를 안했냐고, 그러면 안 된다며 아들을 닦달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가 못 오게 한 것인데...   


주위에 물어봐도 그렇고 여기선 너무 선을 긋는 게 더 이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큰맘 먹고 식사 초대를 했었는데 바로 다음 달에 둘이는 헤어졌다.  이렇게 끝날걸 예상은 했지만 좀 더 일찍 초대해서 자연스러운 자리를 갖지 못했던 점을 후회했었다.  우리 아이들은 여기서 자라고 공부하고 친구들을 사귀었는데, 우리가 그 분위기에 발맞추어 가야 우리도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함께 굴러갈 수 있는 것이다.




과거의 교훈이 있으니, 이번에는 능숙하게 잘 해내리라 다짐했다.  그냥 우리 식구끼리 늘 했던 크리스마스 파티에 친한 친구 한 명 같이 밥 먹는 정도로 아주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 식단 짜는 것도 테이블 꾸미는 것도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이렇게 신경 안 쓰는 척하는 게 정신적으로는 더 힘들었다.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부담스러웠다.  언어 장벽으로 깊은 대화는 나눌 수 없으니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오면 괴로울 것 같아 크리스마스 캐럴을 찾아 틀어놓고, 식사 시간 내내 최대한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를 관찰했다.  우린 엄마 아빠니까.  혹 우리 딸 눈에 눈물 흘리게 할 놈인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주 예리하게.  


나름대로 괜찮았던 식사를 마치고 애들이 만든 케이크와 과자로 디저트까지 끝냈는데 아직 한 시간밖에 안 지났다.  자리를 옮기고 크리스마스트리 밑에서 선물을 뜯어보고 한바탕 사진도 찍고 했는데 또 30분도 안 지났다.  지금 모든 걸 마무리하고 보내기는 너무 이른 것 같고, 어찌할까 하다가 윷놀이를 하기로 했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처음 해보는 사람이 따라 하기도 쉽고 딱히 머리를 써야 하는 게임이 아니니 부담 없다. 단순하게 윷을 던지고 별거 아닌 하나하나에 소리 지르며 웃다 보니 헤어지기 적당한 시간이 되었다.


어차피 이곳에서 한국인만 고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부분은 마음을 내려놓았다.  듬직하고 착해 보이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우리 마음에 들었나 보다.  그래도 딸아이의 마음이 제일 중요한 것이니 앞으로 어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이번엔 부모 노릇을 좀 잘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내년 크리스마스엔 또 어떤 변수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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