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내 딸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뱃속에서 나온 내 딸들이 신기하다.
비실비실하고 운동도 잘 못하는 내가 이런 아이들을 낳았다니. 아빠의 유전자가 좀 많이 간 것 같긴 하다.
지금은 둘 다 커서 대학생이 되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대학 가기 전까지 십 년 넘게 리듬체조 선수로 활약했다. 캐나다 주니어 국가대표를 거처 시니어 국가대표까지, 그것도 딸 둘이 전부. 정말 자랑스럽다. 이 두 아이를 뒷바라지한 일이 어쩌면 내가 캐나다 이민 와서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리듬체조를 시켜달라고 했다. 그동안 따로 시간을 들여 배우러 다닌 운동이라고는 동네 커뮤니티 센터에서 하는 수영뿐이었다. 발레도 잠깐 배우긴 했었지만 지루하다고 금방 그만뒀고, 어느해엔가 서머캠프로 기계체조도 조금 맛을 봤는데 그것도 재미없다 했었다.
갑자기 웬 리듬체조? 그게 뭔데? 어디서 뭘 본거야?
다니던 학교 체육관에서 방과 후 활동으로 어느 리듬체조 클럽이 매일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같은 반 친구도 하고 있는데 얼마 전 무슨 시합을 나가서 메달도 받았다고 한다. 무작정 시작하면 몇 번만에 또 안 한다고 할 것 같아서 그냥 듣고 흘렸는데, 며칠째 계속 졸랐다. 원래 큰 딸은 뭐든지 새로운 것을 도전하고 남들 하는 거 다 하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 해달라는 것을 다 해줄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좀 끈질기게 얘기를 하기에 같이 한번 체육관을 들여다봤다. 열명 좀 넘는 아이들이 몸을 풀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고 코치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우리 애가 배우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몸을 앞으로 굽혀보고 뒤로 젖혀보고 한 바퀴 돌려보고 하더니 너무 유연하다며 좋아한다. 일단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취미반으로 시작했다. 얼마 후 주차장에서 코치를 만났는데 아이가 가능성이 있다고 시합반으로 옮기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본다.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시합반은 주 5일 매일 5시간 정도 연습을 해야 하고, 당연히 레슨비는 훅 올라간다.
애들 아빠는 힘들 거라고 반대를 했다. 그냥 공부시키라고. (그때만 해도 한국식 사고방식이라 운동선수는 공부 안 하고 운동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코치는 만날 때마다 너무 재능 있다고 아깝다고 선수시키자고 하고, 딸아이도 하고 싶어서 반짝이는 눈과 절실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선수로 시작하긴 좀 늦은 것도 같고. 시작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과연 그 비용을 들여서 하는 게 맞을까 등등 한참을 고민했는데 결국은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싶어서 선수반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렇게 우연히 친구 따라 시작하고 얼떨결에 선수반이 되었다. 그때 우리 부부가 무식하게 고집 피워 안 시켰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자기는 안 하겠다던 둘째 딸도 언니 하는 거 보더니 슬쩍 6개월 후에 따라서 시작했다. 둘째는 3학년으로 언니보다는 좀 일찍 시작한 편이다.
이곳 캐나다는 보통 남자아이들은 축구나 하키, 여자 아이들은 발레나 리듬체조, 기계체조를 한다. 이 외에도 거의 모든 종목들이 체계적으로 꿈나무를 키울 수 있는 구조이다. 동네 시합 (Regional Championship)에서 시작해서 주 대회 (Provincial Championship), 동/서부 대회 (Eastern/Western Championship), 마지막으로 전국대회 (National Championship)를 개최하여 매년 선수들의 기량을 겨룬다. 물론 학교 생활은 일반 학생들과 똑같이 하고, 선수라고 해서 공부를 게을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운동을 잘하는 아이들이 공부도 잘한다. 공부도 운동도 똑같이 끈기와 근성, 성실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손연재 선수 덕분에 많이 알려진 리듬체조라는 종목은 카펫 위에서 1분 30초간 준비한 루틴을 선보인다. 어린아이들은 맨손으로, 조금 큰 다음부터는 나이별로 로프, 볼, 리본, 후프, 곤봉을 이용한 작품을 연습한다. 보통 한 시즌에 4 종목 모두 새로운 음악, 루틴, 의상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딸들도 처음엔 반짝이 달린 옷을 입고 동네 시합부터 참가했다. 어린 나이에도 시합 때는 화장하고, 머리를 틀어 올리고, 루틴과 음악에 어울리는 옷을 맞춰 입고 1분 30초간 카펫 위에서 오롯이 혼자 작품을 보여준다.
준비 과정도 그렇지만 시합 중에는 보는 우리도 얼마나 떨리고 설레는지 모른다. 한 번은 시합 도중 긴장한 나머지 그다음 동작을 잊어버려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대로 서있다가 울면서 뛰쳐나온 적도 있었다. 관중들은 음악에 맞춰 박수로 위로와 응원을 해주었지만 아마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 생각도 안 났나 보다. 충분히 이해하지. 점수는 0점을 받았지만, 다른 친구들 다 끝나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준비한 작품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줘서 나름 멋지게 마무리를 했던 적도 있다.
어떻게 하루가 지나가는지 모르게 몇 년이 흘렀고, 둘 다 고맙게도 주니어 국가대표를 거쳐 시니어 국가대표까지 하게 되었다. 매년 캐나다 전국 대회를 통해 상위 10명씩 국가대표 자격이 주어지는데 은퇴할 때까지 한해도 빠지지 않고 대표팀에 속해있었다. 내 딸들이지만 정말 자랑스럽다. 슬럼프에 빠지고 힘들어할 때마다 나는 그만두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그러면 안 되지" 하면서 각자 마음을 다잡곤 했다.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말릴 수 없다.
캐나다 대표로 환태평양 대회, 유럽에서 열린 월드컵 등 굵직한 시합 참가 경험이 꽤 있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큰 국제 대회는 유니버시아드 대회였다. 큰 딸은 2015년 한국 광주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작은 딸은 2017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참가했다. 둘 다 운 좋게 대학생이 되는 해에 이 대회가 열렸고, 참가자격이 되는 나이 중에서 상위 2명 안에 들게 되어 뽑힌 것이다. 은퇴를 한 지금도 둘 다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이 유니버시아드 대회라 한다. 관중석을 꽉 채운 경기장에서 경기를 한 것도, 거창한 개막식 폐막식을 참가한 것도, 기자를 비롯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것도 다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다.
자식 둘이 같은 종목을 한다고 하면 당연히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둘이 똑같이 잘하거나 못하면 문제가 없는데, 매번 내 맘처럼 상황이 흘러가 주지는 않는다. 하나가 1등 해서 메달을 받고 좋아라 하고 있을 때, 다른 하나는 하필이면 실수도 많고 몸도 따라주지 않아서 점수가 엉망이다. 같은 날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엄마 입장에선 좋아할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다. 망친 아이 위로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10년 넘는 시간 이렇게 둘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경쟁자로 자라왔다. 학교도 같고, 하고 있는 운동도 같고, 키도 비슷하고, 몸매도 비슷하고, 생긴 것도 비슷하고... 한데 성격은 정반대였다.
한 명은 너무 예민하고 상처도 잘 받고, 한 명은 별생각 없이 얼렁뚱땅 인생이 쉽다. 그러다 보니 둘 사이에 끼어 발란스를 맞추는 일이 엄마로서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리듬체조는 유연함이 많이 필요해서인지 은퇴 나이가 다른 종목에 비해 빠르다. 우리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면서 그만두게 되었고, 큰 딸의 경우 미련이 남아 2학년에 휴학을 하고 다시 몇 달을 준비해 한 시즌 더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다.
지금은 리듬체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공부를 하고,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이때의 경험은 아이들 인생에 있어서 너무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 몸에 베인 열심과 끈기, 좌절을 이겨내는 방법, 그 후에 맛보는 성취감... 등등 부모가 알려줄 수 없는 것들을 스스로 알아내었고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엄마 아빠 입장만 생각해 반대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은 우리 딸들이 멋지게 해냈고, 뒤돌아보면 후회 없는 유소년 기를 보낸 것 같아 흐뭇하다. 끈기도 없고 근성도 없는 나한테서 저런 아이들이 나왔다니, 그것 또한 너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