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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SH Dec 16. 2024

나는 거짓 눈물에 안 속았을까? - <피의 게임3>

#PSH독서브런치213

사진 = 웨이브 <피의 게임3> 포스터


※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피의 게임3> 9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피의 게임3>은 18명의 플레이어들이 '거짓, 배신, 음모, 정치 등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아야'하는 서바이벌 예능입니다. 18명의 플레이어들은 크게 3개 팀으로 나누어지며 개그맨 장동민을 중심으로 한 팀과 전 프로게이머 홍진호를 중심으로 한 팀 간의 경쟁이 특히 치열하게 벌어집니다. 장동민 팀에 속한 유리사는 장동민의 지시로 홍진호 팀의 스파이로 투입됩니다. 유리사는 홍진호에게 상담을 요청한 뒤 "장동민의 독단적인 팀 및 게임 운영으로 무기력감을 느껴 프로그램을 그만두고 싶다"며 "홍진호 팀으로 가고 싶어도 어디서든 항상 스파이로 몰리는 본인의 이미지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힘들다"고 홍진호에게 울며 호소하죠. 홍진호는 유리사에게 진심 어린 공감과 위로를 해주며 "우리 팀에 오고 싶다고 확실하게 의사 표현만 해주면 우리는 언제든 환영이다"고 합니다. 홍진호는 팀 회의에서 "유리사의 눈물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였다며, "유리사가 스파이일 가능성은 제로다"고 스파이 가능성을 의심하는 팀 구성원들을 앞장서 설득하고 유리사를 팀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죠. 게임 진행 중 정황상 의심 가는 행동을 하는 유리사를 대신 변호해주기도 하고, 눈물 자국이 제대로 지워지지 않았다고 챙겨주기도 합니다. 결국 유리사의 스파이 활동으로 게임에서 지고, 유리사가 스파이인 것을 알게 된 홍진호는 자괴감이 들고 분노가 작지 않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합니다.


2. 이태혁 전 프로갬블러는 <사람을 읽는 기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직업상 거짓말(혹은 사기)의 메커니즘에 관심을 가져왔던 내가 수많은 심리학자, 범죄학자 등과 교류하며 터득한 진리는 세상에 절대로 속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기자, 경찰, 심지어 사람 심리에 훤하다는 심리학자들도 거짓말에 얼마든지 속아 넘어간다. 사람들이 거짓말에 속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많은 경우 믿고 싶은 대로 믿으려는 사람의 속성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속고 싶기 때문에 속는다는 것이다. ... 횡재나 요행에 대한 욕심, 정도 이외의 쉬운 길을 가고 싶은 욕심, 스스로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 자신의 자존심에 무의식적으로 아부하고자 하는 욕심이 크고 작은 거짓말에 기꺼이 호응하는 동인이 되는 것이다." 홍진호가 유리사에게 속았던 원인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장동민이 인터뷰에서 말했던 대로 홍진호가 사람을 잘 믿는 성향이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고 ("홍진호는 사람을 웬만해선 거의 다 믿습니다.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거는 더욱더 완벽하게 믿어요"), 유리사의 연기가 흠잡을 데 없었다는 점 또한 작용했을 거예요. 또한 방송에서 확인할 순 없지만 홍진호가 특별히 발달한 측은지심을 가진 사람일 수 있고, 감정적 위기에 빠진 사람을 도와줌으로써 방송에서 스스로를 더 괜찮은 사람으로 이미지 메이킹하려 했던 것일 수 있죠. 하지만 이러한 원인을 파악하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시청자인 우리가 이 에피소드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2. 홍진호의 믿음은 비록 장동민과 유리사의 설계에 의해 이용당했지만, 이 에피소드가 "사람은 믿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아무도 신뢰해선 안 된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간의 신뢰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 신뢰가 꼭 '그 사람이 선하다'는 토대 위에 세워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특정한 질서를 신뢰하는 것은 그것이 객관적으로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는 관점처럼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내가 그들을 믿는 것은 오로지 평판에 대한 걱정, 거래를 반복하고자 하는 욕구, 그리고 사기와 절도에 대한 법적 제재 때문"(<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일지라도 "돈과 관련된 경제생활도 훨씬 편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그럼에도 조금 더 순순한 의미에서의 신뢰는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의 <공감의 시대>에서 발췌한 다음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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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와 시장의 힘으로만 형성된 사회는 부를 생산해 낼 수는 있어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합이나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도가 높게 측정되는 곳은 가장 부유한 국가가 아닌 시민들 간에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나오는 이유이다. ... 사회는 실제로 ‘다른 이에게 뻗는 손’이라는 두 번째 보이지 않는 손에 의존한다. 우리가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를 이루고 싶다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무관심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바로 우리가 서로를 대하는 데 있어 기저를 이루는 또 다른 힘이다. 이 힘이 진화적으로 아주 오래됐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힘이 얼마나 자주 무시되는지가 더욱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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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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