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서울의 밤은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수많은 건물 내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과 사람들의 에너지가 늦게까지 가득하다.
반면 이 나라의 밤은 한국의 밤보다 무겁다. 같은 해와 달을 마주하고 사는데, 이 곳에서 밤이 되면 쉽사리 외출할 마음이 들지 않고 마음이 편치 않다.
분명 한국에서는 마주한 적 없는 마음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다.
서울에서는 비단 술집뿐만 아니라 카페, 옷가게, 분식집 모두가 힘을 모아 늦게까지 최대한 어둠을 막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있다. 늦게까지 웃고 떠들 수 있고, 거리를 걷는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면식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치안을 지켜주자는 약속을 한 적은 없지만, 사람들도 많고 칠흑 같은 어둠도 아니었기에 한국에서 도시의 밤은 가벼웠다.
밤 10시, 학창 시절에는 학원 수업이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나오면 일반적인 동네 학원가인데도 밝았다. 나 이외에도 이 밤을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이 많았다.
직장인이 된 후, 퇴근하고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2차로 카페나 치맥을 하러 가서 회포를 풀었다. 누군가의 생일파티같이 특별한 날이거나 신나는 날이면 노래방도 갔다.
서울의 모든 거리가 늘 안전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인 서울의 밤이 내게 주는 느낌은 그리 공포스러운 대상이 아니었다.
하루 할 일을 끝내고 주어진 자유시간의 느낌이었고, 먹고 마시며 그 밤을 즐길 수 있는 인프라는 차고 넘쳤다. 수많은 가게들이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사는 나라에서도 이 도시는 큰 도시들 중 하나다.
하지만 밤이 되면 술을 파는 몇몇 펍을 제외하고는 다 문을 닫는다.
저녁 6시면 카페들이 보통 다 문을 닫는다. 한국에서 상상할 수 있는 영업 종료시간이던가?
이 나라에서 우리는 밤에 외출하지 않는다. 친구를 만나는 약속도 저녁이었던 적이 손에 꼽는다. 저녁만 먹고 헤어지는 만남이었다.
낮시간에는 정말 붐비던 시내 거리도 밤이 되면 적막하다. 몇 번 친구들과의 모임으로 밥먹고 펍에도 갔다가 늦게 귀가한 적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럴 때면 약이나 술에 취한 듯한 범상치 않은 사람들과 마주쳤다. 아니면 취침 전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스쳐 지나갔다.
수많은 간판들이 내뿜는 형형색색 빛깔의 글씨들을 보면서
출출한데 야식으로 뭘 먹을까,
술을 마실 건 아니지만 어디 들어가서 따뜻한 무언가라도 마시며 마저 못다 한 수다를 떨까 같은,
이런 선택지가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밤에 홀연히 나갈 명분도 없거니와, 스스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한다.
인공적인 빛공해, 소음공해가 없으니 조용한 밤을 원하는 누군가에게는 심신이 평안할 수 있는 시간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반면 사람들이 채우는 에너지보다는 밤공기가 머금은 그 특유의 스산함이 더 크기에, 밤에도 활발하게 누군가 만나고 개인적인 외부활동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분명 유난히 무거운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