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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느 저자 Oct 23. 2021

[여름호] 마지막주 : 배운 변태, 만춘님께

여름호 마지막 주제 : '편지'

안녕하세요. 만연춘풍, 만춘 작가님. 이렇게 편지로 뵙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처음으로 안부를 묻습니다. 잘 지내시나요? 부디 만춘님께서는 ‘무척’ 잘 지낸다고 말해주길 바라봅니다.

어느저자로서 함께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7주가량이니, 49일이고, 1176시간을 함께 한 것이지요. 저희는 메일을 통해서만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니 메일함에 만춘님의 글이 있는 한, 저희가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대화를 무려 1176시간 동안 한 것입니다. 수치로 보니 매우 놀랍군요. 그러다보니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친밀감이 엄청나게 무시무시합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이러한 관계가 징그러우면서도 의문이 생깁니다. “만춘님도 그러신가? 나 혼자만의 착각인가?”라고 말이지요. 저에게 있어서 친밀감은 나를 덜어낼 수 있을 때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글을 쓸 때, 저를 덜어내어 대화로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쏟아내기에 그 글들을 읽는 만춘님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지만 만춘님도 그러한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그런 의문이 들 때면 저는 온갖 상상을 하고야 맙니다. 알고 보니, 지현이나 현수 중 한 명이 실제 만춘님이였다는 둥. 혹은 둘 다 만춘님이 가지고 있던 자아라는 둥. 만약 후자라면 만춘님은 이중인격자인가? 라는 요상시러운 생각까지 뻗어가지요. 저는 이러한 상상을 통해 어떻게든 만춘님도 저와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발악하는 것입니다.

뭐, 아니시라면 그것대로 좋습니다. 제가 감히 건들일 수 없는 영역이고 무엇보다 저는 쿨 하니까요.
다만 전보다 카톡방에서 이모티콘 사용이 줄어들겠지요.

간혹 그 상상의 나래는 기어코 만춘님이 글을 쓰시는 모습까지 도달합니다. 제가 상상하기에 만춘님께서는 분명 글을 쓰시기 전, 따뜻한 커피를 천천히 잔에 담아 마우스 근처에 두실 겁니다. 그 커피는 에티오피아 커피로, 직접 블랜딩해서 내리신 것이지요. 그리고 무척 편한 브랜드 로고가 박힌 바지와 검정 티셔츠를 입었지만 이와 반대로 경직된 자세로 책상에 앉아서 커피를 한 모금을 한 후 손가락 운동을 2번 하고 나서야 키보드에 손을 올릴 겁니다. 그리고 잘 안 써질 때는 안경을 한 번 치켜세우겠지요. 그리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치면서 고민을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빠르게 타자기를 두드릴 것 같습니다. 중간마다 본인의 글에 흡족한 표정을 종종 지으면서요.

저의 발칙한 상상을 들으시고 만춘님께서는 ‘미친’ 하면서 소름이 돋을 수도 있지만, 물음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제가 친절하게 이런 상상에 도달하게 된 근거 4가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항상 일정 형식을 갖춘 세이빙 원고를 제출한다는 점.
아마 어느저자의 보이지 않는 교수님께서 만춘님께만 이런 형식을 요구하셨을 겁니다.

파일명 :0주차 _주제_ 제목_ 작가 로 통일.
주제에 따른 이모지를 글 좌측 상단에 배치.
주제는 30point 볼드, 제목은 15point 볼드, 추천 BGM은 12point 적용.
모든 페이지 좌측 하단에 주차 - 주제 표기.
제출 파일 형식 : PDF.
여담이지만 가끔 이모지를 고르시는 모습이 상상이 가, 피식하고 웃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세이빙 원고는 물론 누구보다 빠르게 예약 매일 작성하는 점.

물론 ‘늦는다’라는 행위가 당연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 날따라 하늘이 너무 이뻤다던가, 지나가다 귀여운 강아지를 만났다던가, 갑자기 친구들이 불렀다던가 라는 상황이 있으면 쉽게 그 유혹을 견디지 못해 “에라 모르겠다” 하기 십상인데, 만춘님께서는 그런 적이 절대 없다는 듯이 누구보다 고고하게 우아한 손짓으로 빠르게 업로드를 마치십니다. 그런 만춘님을 봤을 때, 묘한 박탈감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평소에 오르고 싶었던 산이 아니었지만, 갑자기 오기가 생겨서 시도해본 결과, 결국 주저앉은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내 다시 오르는 것을 포기하는 저였습니다.


세 번째. 피드백을 작성할 때, 익명을 뚫고 본인임을 항상 밝히시는 점.

어느저자들은 원고를 독자들에게 보여주기 전 저희끼리 피드백을 합니다. 과한 칭찬과 과감한 비판을 위해서 익명으로 진행되는데요. 놀랍게도 만춘님께서는 항상 [ 만춘 ] 님이라고 밝히시면서 피드백을 작성합니다. 마치, 익명 뒤에 숨어서 할 바에는 내 이름을 걸고 이야기하겠다는 마음이 돋보였습니다. 간지가 폭발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매번 시도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저 자신이 부끄러워서 안 되겠더군요. 결국 저는 어쩔 수 없이 익명이라는 가면을 빌려서, 문학 평론가인 척 피드백 쓰고 맙니다.


네 번째. 단톡방에서 이모티콘을 제일 많이 사용하시는 점.

만춘님께서는 항상 아기 오구 이모티콘을 사용하시지요. 말랑말랑한 흰색 오리너구리 말입니다. 참고로 꽤 귀여워서 구매하기를 누를까 망설였습니다. 만춘님께서는 이 흰색 오리너구리를 내세워서 본인의 귀여움을 한껏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마치 흰색 너구리가 본인인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자면 만춘님은 흰색 너구리가 될 수 없습니다. 속상하실 수 있겠지만 이것만큼은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은 힘이 올라오기에 기어코 적어봅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마셔요. 혹시나 제가 누구인지 맞히신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이모지 하나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어때요? 꽤 예리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들으실 독자분들께서는 만춘님을 특정 단어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만춘님은 간단하게 단어들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사람임을 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만춘님께서 의도하신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제가 1176시간 동안 지켜본 결과, 저는 만춘님을 배운 변태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더 자세한 이유는 편지의 마지막에 첨부한 여름호 만춘님의 추천사를 참고해주세요.


쓰다보니, 편지가 길어졌군요. 글의 길이가 짧아야 쿨하다는데, 이 정도 길이면 제가 ‘웜’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전에 쿨하다는 말은 기억 속에서 지워주세요.


무엇보다 이 편지의 결론은 저는 만춘님의 글을 무척이나 흠모합니다로 가길 원했는데, 역시 의도대로 안되네요. 그러기에 강제로 밀어 넣겠습니다. 다른 것들은 다 필요 없고,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저는 진심으로 만춘님의 글을 흠모합니다.


그러기에 다음 계절에서 저의 덕질력이 폭발하지 않도록 살살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니, 제가 자제할 테니 마음껏 써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부디 다음 계절에서 뵙길 바라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세요.



어느저자(작가, 어느저자 작가) 나는 세상에는 멋진 진리가 있을 거라고 착각하곤 했다. 정확하게는 거창한 진리를 원했다. 작은 단어 속에도 여러 가지 의미를 꾸역꾸역 부여하면서, 흔히 ‘멋’ 나게 쓰려는 나에게 이 책은 단호하게 말한다. 세상은 무척 소박하며 그 소박함 속에서 아름다움이 빛난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싶어 하는 내 친구들, 세상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 가뿐히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 책을 읽고 싶다. 매 여름이 지나갈 때, 아쉬움이 남아 쓸쓸하면 미약하게 남아있는 여름의 잔해들을 쓸어 담아 갈무리하고자 이 책을 꺼내 들 것이다. 그리고 일상을 다시 천천히 관망하겠다.
 


8월의 끝, 9월의 시작에서

from.어느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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