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호스텔 직원이 손님들을 이어 주기 위한 노력
리셉션 직원의 업무 매뉴얼엔 없는 조금은 특별한 ‘손님 응대’ 방법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호스텔에서 돈을 받고 일하는 정식 직원이 아닌 Volunteer(숙식 제공을 대가로 일하는 여행자를 뜻함)이지만 모든 손님들이 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쏟습니다. 왜 사서 고생이냐고요? 사실은 제가 직원의 신분을 이용하는 겁니다. 직원이 아닌 이상 내향적인 제가 낯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데 많은 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저는 호스텔에서 일하면서 최대한 제가 얻을 수 있는 것을 뽑아내려고 합니다. 표면적으로 얻게 되는 혜택인 무료 숙식 외에도 언어 연습, 다양한 가치관 습득, 새로운 문화 체험 등을 위해 더 외국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갑니다. 자기 계발을 하는 동시에 호스텔 사업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 일석이조가 아닐까요. 실제로 저의 이런 숨은 노력이 손님들에게 꽤나 큰 만족감을 줍니다. 특히 혼자 온 여행자들에겐 더 따스하게 느껴질 겁니다. 장차 세계 어디선가 저처럼 호스텔에서 일하게 될 여러분을 위해, 제가 이제껏 시도해본 것 중에 효과가 좋았던 몇 가지 활동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난이도 1. 동행 구해주기
가장 간단하면서도 여행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방법입니다. 큰 에너지 소모 없이 저절로 손님들끼리 친해지도록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방안이기도 합니다. 저는 단지 ‘씨앗’을 제공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서 필요한 건 작은 정보도 잊어버리지 않는 기억력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 혹은 마무리하는 밤 시간대에 숙소에서 손님들을 마주쳤을 때, 인사와 더불어 손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 바로 하루 일과를 묻는 것입니다. ‘오늘은/내일은 뭐할 거니?’ 혹은 ‘오늘은 어디 갔다 왔니?’등 간단한 문장만으로 새로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지요. 이때 질문만 하고 대답을 흘려들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의 계획을 얼굴과 함께 잘 기억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여러 명에게 같은 ‘안부’를 묻고 나면 저절로 머릿속에 고객 데이터가 쌓이게 됩니다.
다음은 그 데이터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야겠지요. 어차피 한 곳에 며칠만 머물렀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가고 싶은 곳은 거기서 거깁니다. 유명한 관광지 몇 개로 추려질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하루하루 동선이 겹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같은 날 같은 곳을 가는 투숙객들이 서로의 존재를 모른다는 것이지요. 이때 우리의 기억력을 활용해 그들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내일 아침에 거기에 가는 다른 손님이 있는데 같이 갈래요?’
‘세 명 이상이면 택시를 타는 게 더 싸요. 거기 가고 싶어 하는 한 커플을 알고 있는데 날짜를 맞춰봐요!’
홀로 온 여행객은 물론이고 이미 친구와 함께 온 이들도 제 제안을 거절한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기존 일정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준 제게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한껏 더 밝은 표정으로 무리 지어 호스텔 문을 나서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제가 느끼는 그 뿌듯함은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습니다. 아마도 제가 여행자로서 동행의 소중함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미지의 세계를 함께 탐험할 누군가를, 그것도 ‘우연히’ 만나 함께 길을 걷는 건 언제나 즐거운 추억이 되지요. 틀에 박힌 관광에서 벗어나 여행지에서의 시간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난이도 2. 클래스 열기
호스텔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이곳에선 평상시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던 ‘나와 비슷한’ 이들을 찾는 게 오히려 힘듭니다. 독특한 직업, 색다른 재주, 상상할 수 없는 성격 등을 가진 여행자들을 마주치게 되지요.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다른 숙박 형태 대신 호스텔을 선택한다는 의미가 ‘나는 낯선 이와 한 방을 공유할 수 있다’라는 오픈 마인드가 기본이기 때문일까요. 투숙객들은 그들이 가진 것을 타인과 나누는 것에 거리낌 없습니다.
저는 이런 손님들의 특징을 활용합니다. 재능을 뽐내면서 친구를 만들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는 것입니다. 특히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손님을 찾으면 효과 만점입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냐고요? 평소에 숙소 공용 공간을 유의 깊게 관찰하면 됩니다. 관광지를 쏘다니다 지친 이들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한 사람은 자기 침대에 누워 있지 거실이나 정원 등 공용 공간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침대 밖을 벗어나 앉아 있다는 것 자체가 주변과 소통할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이때 그런 사람들이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세요.
누군가가 무언가를 집중해서 그리고 있는 데 사용하는 도구나 스케치북을 훔쳐보니 수준이 장난이 아니다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떠돌아다니며 예술 활동을 하는 화가일 확률이 높지요. 그들의 작품에 감탄하며 다가 가보세요. 아마 감사 인사에서 끝나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서슴없이 더 많은 작품을 보여주거나 자신의 예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입니다. 저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거 가르쳐 줄 수 있냐’고 슬쩍 물어봅니다. 그렇게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들 앞에 종이와 펜이 하나씩 놓이게 되고 즉석 미술 교실이 열리는 것입니다.
라틴의 피가 흐르는 사람들을 자극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건 편견을 넘어선 진실에 가깝습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여행자들은 대부분 춤을 잘 춥니다. 그들이 그냥 ‘춤을 출 준 알아’라고 했을 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 몸의 미세한 움직임부터 다를 테니까요. ‘우리 춤 좀 가르쳐 달라’고 하면 바로 그 자리서 기본 스텝이 나올 겁니다. 저는 이런 방법으로 갑자기 온 호스텔을 춤판으로 만든 적이 많았습니다. 공용 공간에 혼자 조용히 앉아 있던 다른 여행자들도, 그저 지나가던 손님들도 흥미를 갖고 다들 춤 교실에 모여듭니다. 여러분의 관찰력과 관심의 질문 한 마디가 숙소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립니다. 라티노에게 배우는 공짜 춤 강습, 우리 자신에게도 놓칠 수 없는 소중한 문화 체험인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난이도 3. 자체 투어 기획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되는, 웬만한 성격으론 힘든 활동입니다. 그래도 그만큼 열매가 제일 답니다. 보다 깊은 관계의 친구가 여럿 생길 테니까요. 하루 종일 집중 외국어 연습은 덤입니다. 또 그 노력에 감사한 이들이 우리들에게 다른 것을 베풀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호스텔에서 최소 일주일만 지내봐도 그곳 주변 관광 정보가 제법 눈에 익숙해집니다. 특히 현지 직원들과 친목이 깊어지면 관광객들은 모르는 갖가지 숨은 현지 문화를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때 ‘나만의 워킹 투어’를 만들어서 손님들을 초대해보세요. 어차피 재미 삼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 맞는 여행자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보는 것입니다.
‘나 오늘 근무 안 하는 날인데 나랑 같이 돌아다닐래? 내가 여기저기 구경시켜줄게.’
우리와 손님 모두가 서로 윈윈(Win-win)입니다. 그들에겐 이미 여행지를 잘 알고 있는 직원이 공짜로 투어를 시켜주니 좋은 것이고, 우리는 언어를 연습하는 동시에 가이드라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극히 내향적인 제가 이런 투어를 스스로 생각해내서 시작했던 것은 아닙니다. 투숙객들이 제 휴무일에 먼저 제안을 해줬습니다. 그게 여러 번 반복되면서 제게도 나쁠 것이 없다는 걸 깨달아 이제는 즐기게 됐습니다.
어차피 돈 받고 하는 정식 관광 프로그램도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보통의 가이드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전문적으로 역사를 상세히 읊어주지도 않습니다. 그저 제가 그동안 듣고 읽은 것을 전달해주는 느낌으로 같이 놀러 다니는 것입니다. 어디서 커미션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카페와 식당을 방문합니다. ‘내가 먹어보니까 여기 진짜 맛있더라’를 토대로 하지요. 뭘 사라고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내가 가보니까 거기 구경할 만한 게 많더라’라는 말과 함께 상점을 들립니다. 아니면 평소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가게를 같이 둘러보는 게 다입니다.
외향적인 분들은 이런 자체 관광을 휴무일마다 실천하면 얻는 게 정말 많을 것입니다. 저도 마음 같아선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해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하질 못하고 있지요. 근무를 쉬는 날 마저 강도 높은 사교 활동을 하면 제 에너지가 금세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번 투어를 할 때마다 제 스스로가 배우는 점이 더 많다는 걸 확실히 느끼기에 지금도 기회가 되면 사람들을 모아 떠나고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호스텔 직원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은 천차만별입니다. 누군가는 리셉션에 갇혀 동일한 문맥 속 같은 말만 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분 자신을 위해 이 장소를 다르게 활용했으면 합니다. 각양각색의 세계인이 모이는 호스텔이야말로 여행을 더욱 다채롭게 보낼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곳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에서든 제가 위에서 설명드린 활동을 시도해보며 여러분만의 특별한 여정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Photo by Luke Porter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