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사례, 멕시코에서 호스텔 일터 찾기
지난 포스팅에서 좀 더 편한 Volunteer(숙식을 제공받으면서 인력을 제공하는 일. 주로 경비가 빠듯한 배낭여행객들이 이용)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조건을 설명해드렸습니다. 이론을 알았다면 이제 실전에 돌입할 차례입니다. 실제 사례를 통해 연습하는 것만큼 좋은 배움의 방도가 없지요.
제가 이번에 다른 나라, 멕시코로 넘어가면서 참 많은 숙소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멕시코 숙박 업체들이 내거는 조건들이 과테말라와 꽤나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일터를 찾기 위해 제가 어떻게 후보들을 비교했고 최종 선택을 내릴 때 어떤 점을 고려했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최대한 구체적으로 모든 과정을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멕시코로 떠나고 싶지만 부족한 경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분에겐 이번 포스팅이 더 생생한 정보가 될 것입니다.
1단계. ‘Workaway(여행자와 호스트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사이트에서 호스텔 검색
멕시코는 땅덩어리가 참 넓은 나라지요. 도시 간 이동하려면 버스로 10시간은 족히 걸립니다. 길에서 돈과 시간을 버리지 않으려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Workaway(https://www.workaway.info/)에서 무작정 모든 멕시코 도시를 검색하기보다는, 제가 대략적으로 구상한 여행 동선에 맞춰 세부 지역을 검색했습니다. 3개 도시 (‘메리다(Mérida)’, ‘산 크리스토발(San Cristóbal de las Casas)’, ‘와하까(Oaxaca)’)로 압축했습니다.
Workaway를 이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이전 포스팅 ('돈 쓰지 않고 세계 여행 다닐 수 있다?')에 정리해두었으니, 이를 먼저 참조하시고 이 글을 읽으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https://brunch.co.kr/@a5bf41353dfd47c/2
Workaway에 올라온 여행자 모집글에서 업체가 내세우는 조건을 각 항목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호스트가 올린 공고를 꼼꼼히 읽으며 아래의 5가지 조건을 중점적으로 살폈습니다.
1) 주 25시간, 2일 휴무
2) 주 업무가 리셉션 손님 응대일 것 (청소 업무 배제)
3) 숙박과 함께 매일 최소 1끼 식사 제공
4) 스페인어 구사 능력을 요구하는 곳
5) 직원만 머무는 방을 따로 제공
저는 모집 공고를 읽을 때 일단 ‘Help(도와줄 업무)’와, ‘Hours expected(업무 시간)’ 항목부터 빠르게 확인합니다. 1번과 2번이 충족되지 않는 곳은 바로 넘기면서 시간을 절약했습니다. 일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 여행을 하며 경비를 아끼고자 하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일 해야 하는 시간이 길거나 육체적 노동이 심하게 요구되는 일은 바로 제외했습니다.
1번, 2번 여건을 만족하는 업체의 모집 공고에는 시간과 정성을 들입니다. ‘Accommodation(숙식 제공 사항)’ 항목에서 3번과 5번을 확인하고, 그 외의 부분은 찬찬히 읽어 내려가면서 그 숙소가 어떤 곳인 지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저는 현지 동료나 손님들과 언어를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4번도 유의 깊게 봅니다. 언어에 대한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숙소는 업무가 주로 육체적인 노동일 경우가 많으니, 저같이 리셉션 일만 원하는 분들은 이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현지 말을 능숙하게 하는지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곳은 손님이 거의 외국인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반대로 호스트가 여행자의 스페인어 구사 능력을 요구하는 업체는 현지 여행객의 비중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따져보야 할 조건과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 ('해외 호스텔리어, 신의 직장 고르는 법 (1)/(2)')에서 상세히 설명해두었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a5bf41353dfd47c/21
2단계. 부킹닷컴(Booking.com)에서 업체 리뷰 확인
저는 업무시간이 아닐 때에는 글을 써야 하고,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좋은 내향인입니다. 밤에도 적당히 안락한 분위기는 필수이지요. 숙소의 분위기 및 주요 손님 구성 등 상세 특징은 Workaway에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Workaway에서 1단계를 통과한 업체는 숙소 예약 사이트에서 다시 검색을 해봅니다. 제가 직접 가보지 않는 이상 그간 그곳을 다녀간 고객의 눈이 제일 정확하기 때문이지요.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유지하고 있는 숙박시설은 분명 그 이유 있습니다. 제가 한 달간 불편함 없이 머물기 위해서라도 숙소 평점이 기본적으로 8점 중반은 돼야 합니다.
손님들이 남긴 리뷰를 대략적으로 훑어보는 것도 빼먹지 않습니다. 숙소가 밤늦도록 술판이 벌어지는 파티장인지, 아니면 소소하게 얘기나 나누는 가족적인 분위기의 장소인지를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또 지도에서는 체감하기 힘든 주변 환경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시장이나 도심에 가려면 많이 걸어야 한다든지, 숙소가 바로 도로변에 있어서 잠잘 때 시끄럽다던지, 업체의 위치가 밤늦게 조심해야 할 골목길에 있는지 등입니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살아야’하는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런 평가들을 꼼꼼히 챙깁니다.
3단계. 업체 비교 및 최종 일자리 선택
실제로 이번에 제가 분석하고 평가한 업체를 보여드리겠습니다.
1) 산 크리스토발 – 코워킹&리빙(Co-Working&living) 숙박 시설
세계 곳곳에 ‘디지털 노마드(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온라인으로 일하는 사람)’가 늘어나면서 일하기에 적합한 공간을 갖춘 데다 숙박까지 할 수 있는 ‘CO-Living’ 호스텔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예전엔 코워킹 플레이스(Co-working place)라고 해서 일할 사무실만 빌려주는 곳이 대부분이었다면 이제는 잠자리도 함께 해결해주는 업체가 등장한 것이지요. 제일 먼저 일자리 후보로 둔 곳도 이런 새로운 개념의 숙소였습니다.
조건 분석
1. 근무 시간 : 일주일에 리셉션 근무 18시간(일 6시간 * 3일), 손님들과 행사 1번(4시간~6시간?)
- 리셉션 근무 시간표 : 오전 8시 ~오후 2시/오후 2 ~오후 8시
2. 주요 업무 : 리셉션 담당 및 액티비티 운영 (청소 및 잡무 일체 없음)
3. 식사 제공 : 모든 끼니를 직접 해결해야 함
4. 스페인어 구사 능력 :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현지 손님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정
5. 직원 전용 공간 : 남녀 분리된 Volunteer 전용 방이 따로 있음. 화장실은 공용
연락 과정 : 숙소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Whatsapp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메신저 앱, 세계의 카카오톡) 번호를 보고 매니저와 메신저를 통해서 연락을 주고받았습니다. 현재 구인 여부부터 확인했습니다. 이후 그곳에서 묻는 간단한 질문(나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 3개는? 얼마 동안 일 할 것인가? 본인의 업무 스케줄이 따로 있는가? 나이는?)에 대한 답을 메시지로 회신했습니다. 세부적인 근무 여건도 Whatsapp으로 전달받았습니다.
평가 : 장기 투숙 고객이 대부분이라 일주일에 단 4-5번의 체크인/체크아웃이 이뤄질 정도로 평상시 리셉션 업무는 매우 한가할 것으로 추측됐습니다. 하지만 손님들과 액티비티가 관건으로 보였습니다. 시장/바/근교 투어 등 외부 행사를 직접 기획하거나 운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내향인의 성격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이끌고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부담이 많이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식사를 단 한 끼도 제공하지 않는 것도 재정적으로 손해입니다. 하지만 전해 들은 근무 여건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최종 선택 : 제외 (사유 : 매니저 신뢰 불가능)
- 제가 아직 그 도시에 도착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매니저와 간단하게 영상통화로 인사를 하며 근무를 확정 짓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매니저는 약속된 미팅 시간을 3번이나 지키지 않았습니다. 지정 시각에서 한두 시간이 훌쩍 넘은 뒤에서야 사과와 함께 다음 통화 일정을 잡기를 2번, 그리고 3번째에는 아예 응답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업무 매너를 갖추지 못한 상사와 같이 일을 하게 되면 고생길이 훤하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저는 그 업체와 일할 생각을 접었습니다.
2) 메리다 – 이전에 일했던 호스텔 사장이 소개해 준 곳
운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전에 일했던 곳에서 연결해준 숙소입니다. 메리다는 우리나라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칸쿤 근처에 자리한 곳으로, 칸쿤보다 훨씬 저렴하게 카리브 해변을 즐길 수 있는 도시입니다. 이 업체는 구글, 호스텔월드 등 인터넷에서 평판이 워낙 훌륭해서인지 다음 volunteer 빈자리가 나려면 보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도 지인 소개여서 신뢰가 가기도 했고, 근무 시작일을 기다리는 동안 집중적으로 여행을 즐길 겸 이곳도 긍정적으로 검토했습니다.
조건 분석
1. 근무 시간 : 주 25시간, 주 5일 근무
- 근무 시간표 : 오전/오후/밤(오후 11시부터 오전 6시)
2. 주요 업무 : 청소 및 주변 정리, 밤 근무 시 야간 체크인 및 보초
- 리셉션을 담당하는 직원이 따로 있고 volunteer는 침대 정리, 식당 및 방 청소, 야간 경비를 맡음
3. 식사 제공 : 아침 1끼
4. 스페인어 구사 능력 : 모든 절차가 스페인어로 진행됨
5. 직원 전용 공간 : 없음. 다른 게스트들과 함께 도미토리(한 방에 침대를 여러 개 두고 손님들이 함께 머무는 형태)에서 지내야 함. 화장실도 외부.
연락 과정 : 직전 근무지 사장에게 직접 번호를 건네받아 Whatsapp으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매니저와 인사를 나누고 근무에 대한 상세 사항을 전달받기 위해 영상 통화 일정을 잡았습니다. 통화는 인터뷰라기보다는 매니저가 숙소를 소개해주는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지인을 통해 연락을 해서인지 매니저는 저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았고 근무 시작일 조정을 위해 여행 일정만 물어봤습니다.
평가 : 일주일에 1-2번은 밤샘 근무를 해야 하는 만큼 규칙적인 생활을 이어가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기본적으로 리셉션 업무는 Volunteer에게 맡기지 않는다는 것도 큰 단점입니다. 직원들만의 방이 없고 뜨내기손님들과 오랜 기간 방을 같이 써야 하는 것도 불편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진과 리뷰를 보아 숙박 시설의 질이나 일상생활의 편리함은 우수할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최종 선택 : 제외 (이유 : 각종 청소 업무 및 야간 보초)
- 장소 자체는 여러모로 매력적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근무 조건이 맞지 않았습니다. 자칫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밤샘 업무가 제겐 무엇보다 치명적이었습니다. 새벽에 잠을 자도 된다고 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생활리듬이 깨지는 게 싫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원하는 리셉션 업무는 할 수 없고 객실 정리 정돈 및 식당 청결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에 바로 다른 곳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 와하까 – 중심가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소규모 호스텔
이상하게 멕시코의 호스트들은 여행자에게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30시간이 넘는 근무시간, 객실 및 시설 청소 업무, 끼니 제공 없음 등 물가가 싼 나라에서 단순히 숙박만 해결하고자 감수하기에는 과한 노동이 분명합니다. 일을 하는 대신 값싼 도미토리를 구해서 지내는 게 더 이득이 될 정도지요. 이런 불모지에서 ‘리셉션’ 일만 할 수 있는 데다 끼니를 제공하는 곳을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심지어 부킹닷컴에서 평점도 9점이 훌쩍 넘는 우수한 숙박시설이었지요.
조건 분석
1. 근무 시간 : 주 25시간, 주 5일 근무
- 근무 시간표 : 오전 8시부터 오후 1시/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 오후 6시부터 오전 12시
2. 주요 업무 : 리셉션 담당 및 액티비티 운영
3. 식사 제공 : 아침 1끼
4. 스페인어 구사 능력 : 기본적인 스페인어를 요구했으며 모든 소통이 스페인어로 이뤄짐
5. 직원 전용 공간 : Volunteer들만 쓰는 도미토리가 따로 있음. 화장실도 구비.
연락 과정 : 숙소 페이스북에 나와있는 Whatsapp 번호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 여행 일정과 맞는 날짜에 자리가 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 바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는 Whatsapp 영상 통화로 간단히 치렀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소개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매니저는 제게 호스텔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지, 영어를 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봤습니다. 그 외에는 그곳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가 주를 이뤘습니다. 통화는 10분도 채 되지 않아 끝이 났고, 곧이어 또 다른 매니저와 근무 시작일을 확정 짓는 메시지를 주고받았습니다.
평가 : 밤 근무 시간이 오전 12시까지라는 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밤 11시까지 리셉션을 지키고 그 이후에는 시설 문단속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저녁 이벤트를 진행하는 것도 부담이 됐습니다. 한 번도 해본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멕시코에선 흔치 않게 리셉션 업무만 해도 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아침 식사에 대한 손님들의 평이 뛰어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최종 선택 : 통과
- 일주일에 최소 1-2번은 액티비티를 운영해야 하는 것은 제게 큰 도전입니다. 그래도 호스텔 자체가 소규모인 데다 숙소 내부에서 소소하게 치르는 행사라고 하니 내향적인 저도 충분히 시도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혹시 이곳에서 제 숨은 재능을 발견하면 향후에 가이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됩니다. 또 매니저가 인터뷰 내내 스페인어만 하는 것으로 보아 언어 연습을 위한 좋은 기회로 보였습니다. 위치도 중심가와는 거리가 있어 번잡하거나 시끄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정까지의 근무가 고될 것으로 예상되니 일단은 한 달 경험을 해보자는 심정으로 다음 일자리를 이곳으로 확정 지었습니다.
산 크리스토발에서 열두 시간을 넘게 버스를 타고 와하까에 도착해 지금은 새로운 일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육로로 국경을 넘으며 물갈이도 하고 몸살도 나면서 육체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터라 새 보금자리를 구하는 데 시간이 꽤나 소요됐습니다. 멕시코의 volunteer 대우가 좋지 않은 것도 한몫했습니다. 그만큼 업체를 알아보고 비교하는 데 많은 에너지가 소모됐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열심히 분석한 만큼 여러분들에게 공유할 만한 좋은 예시가 탄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호스텔에서 volunteer 기회를 노리고 있는 분들에게 이번 사례가 실용적인 정보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