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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Oct 06. 2023

야구장에 빠지다

ep2.  두산 베어스


 나의 첫 직관 경기는 두산 vs 삼성이었다. 야구장 좀 다녀본 언니들을 따라 잠실로 향하는 길부터 내 몸과 기분은 야구공이 통통 튕기듯 들썩거렸다. 야구장 앞은 엄청난 인파로 가득했다. 다들 각자 좋아하는 선수들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응원 봉, 응원 띠 등을 장착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꼭 콘서트 시작을 앞두고 모여 있는 아미들 같아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몇 년 전 가을 야구 시즌과 BTS 콘서트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겹쳤던 날이 떠올랐다. 많은 야구팬들과 수많은 아미들이 한꺼번에 몰렸는데, 서로가 서로를 신기하게 바라봤었다. 야구팀 굿즈를 장착하고 유니폼을 입은 야구팬들과 BTS 굿즈를 장착하고 BTS 옷을 입은 아미들은 무언가 결이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가보는 야구장이지만 나에게 낯선 느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좌석들, 공간이 좁아서 한 사람이 지나가려면 바짝 비켜줘야 하는 불편함도 콘서트장과 똑같아서 익숙했다.

 내가 처음으로 응원하게 된 팀은 잠실을 홈구장으로 두고 있는 ‘두산’이었다. 우리 자리는 3층 맨 뒤였는데, 모든 자리가 팬들로 꽉꽉 차있어서 야구팬들이 얼마나 많은지 바로 실감하게 되었다. 들어가자마자 선수들을 소개하는 영상이 나왔고 곧바로 선수들의 응원가가 시작되는 바람에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일어서야 했다. 모두가 일어나 힘차게 응원가를 부르며 정해진 춤을 췄다. 그 열기에 취해 나도 덩달아 목청껏 응원했던 것 같다.

 나는 자꾸 BTS 콘서트와 비교하며 보게 됐었는데, 일단 남자들이 응원하는 소리가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남자들의 함성 소리를 이렇게 크게 가까이에서 들어본 것은 대학교 체육대회 이후로 처음이었던 것 같다. 야구장을 가득 메우는 굵직한 고함 소리들이 더욱 웅장하게 다가왔다. BTS 콘서트와 또 다른 점은 수비를 할 때 응원을 잠시 쉰다는 점이다. 공격을 할 때는 모두가 일어나 각 타자들의 응원가를 부르고, 안타송, 팀 응원가 등을 부르며 열심히 응원을 한다. 그러다 수비를 할 차례가 오면 상대팀 팬들이 일어나 응원을 하고, 우리는 앉아서 조용히 쉬는 것이다. 한쪽 팀이 일어나서 열심히 응원할 때, 마주 보고 있는 다른 팀 팬들은 그 어떤 반응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다 같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콘서트장과 달리 각자의 팀을 위한 목소리만 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대결이었다. 이런 대결 또한 대학교 체육대회 이후로 처음인지라 생소하면서도 재밌었다. 그리고 야구팀 두산은 여자와 남자가 파트를 나누어 부르는 응원 곡들이 있었는데, 이것도 무척 재밌었다.

 내가 갔던 날은 운 좋게도 정수빈 선수의 옛 응원 곡까지 불러볼 수 있었다.  

“날려라 날려 안타~ 두산의 정수빈~”

“안~~타! 정수빈!”

 여자들과 남자들이 번갈아가며 부르는 이 응원 곡을 어찌나 반복해서 불렀던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또 ‘승리의 노래’가 엄청 좋았다. 워낙 좋아서 몇 번 듣고 곧바로 따라 불렀던 것 같다. 이날 두산이 이겨서 불렀던 건지, 원래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며칠 동안 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두가 일어나 깃발을 흔들며 다 같이 부르는 장면들, 노랫소리에 무언가 벅차오르는 기분까지도 며칠을 내 속에 머물렀던 것 같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의 열기는 대단하다. 그 속에 있으면 힘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 야구장의 탁 트인 시야, 타자들의 방망이에 공이 탕! 맞는 경쾌한 소리는 내 가슴을 뻥 뚫리게 다. 나는 단 한 번의 직관으로 야구장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며칠 후 남편과 겸이를 데리고 또다시 팀 두산을 응원하러 잠실야구장에 갔다. 평일에 본 두산 팬들의 응원 열기는 주말에 봤던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여전히 자리는 빈틈없이 꽉꽉 찼고, 응원소리도 변함없이 웅장했다.

 “두산의 안방마님 양의지~”

“양의지!”

 역시나 재밌는 남녀 나눠서 부르는 응원가도 신나게 부르고, 이날도 역시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웅장함을 느꼈다. 8:3이라는 엄청난 차이로 두산이 이겼고, 홈런도 볼 수 있었던 날이라 더욱 재밌었던 것 같다. 겸이도 지겨워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하게 나보다 더 빨리 응원가를 흡수하여 열심히 따라 부르는 모습을 보였다. 목청껏 “날려버려~”, “정수빈~ 홈런!” 하는 모습들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두산 어린이팬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능숙했다. 야구에 관심 없던 남편도 야구장에서 맥주를 마시며 경기 보는 분위기를 제법 괜찮아했다. 그리고 잠실야구장은 생맥주를 파는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이 생맥주가 얼마나 달콤한지 몇 번이나 손을 들고 애틋하게 불렀는지 모른다. “캘리~~~ 여기요!!!”

 맥주만 계속 마신다면 배가 금방 부르겠지만 야구장에서의 맥주는 다르다. 응원하는 팀이 수비를 볼 때 자리에 앉아 열심히 먹는다. 그리고 공격으로 바뀌었을 때는 자리에서 일어나 힘차게 응원가를 부르고 춤도 추며 소화를 시킨다. 공수가 반복되면서 나도 먹었다가 소화시키기를 반복했다. 맥주에 취할 일도 없이 계속해서 마실 수 있다. 건강하게 맥주를 즐기는 기분이 든다. 응원을 엄청 열심히 해서인지 신기하게 살도 전혀 안 찐다. 살찔 걱정 없이 술을 마실 수 있다니!

 야구장은 나에게 황금 알을 낳는 오리 같은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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