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름달 Nov 22. 2023

아이의 판단

오늘은 아빠


 현관문이 열리고 무언가 열심히 아빠에게 이야기하며 들어오는 겸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남편은 “괜찮아, 내일 내면 되지. 엄마한테도 이렇게 얘기하면 돼.”하는 것이다. 겸이에게 간식을 주고 앞에 앉아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학교 숙제 노트를 깜빡하고 제출 못 하고 왔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걱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한테 설명을 하고 아빠가 엄마한테 얘기 좀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좀 의아했다. 평소에 자기 것을 잘 챙기고, 잊지 않고 잘 기억하는 겸이기 때문에 제출 못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8살 남자아이가 무엇이든 잊어버리지 않고 잘 기억하고, 또 잃어버리지 않고 잘 챙긴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별 것 아닌 실수를 왜 엄마가 혼낼 거라고 생각했던 건지 궁금했다.
 
 겸이는 깜빡하는 행동이 엄마가 싫어하는 것에 속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그런 쪽은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아빠한테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랑 아빠랑 화내는 쪽이 달라. 엄마가 이쪽에서 화내면 아빠가 이해해 주고, 아빠가 이쪽에서 화내면 엄마가 이해해 줘. 그래서 좋아.”하는 것이다.

 그렇다. 내가 못 참아하는 것에 남편이 유연하고, 남편이 못 참아하는 것에 내가 유연하다. 우리 부부는 다름을 서로 보완해 주면서 균형을 잘 맞춰 살아왔다. 이 균형은 육아할 때도 빛을 발했다. 한쪽이 흥분하면 다른 한쪽은 이성을 지키며 중재한다. 그런데 그걸 겸이가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겸이는 아빠가 화낼 것 같은 것은 엄마에게 설명하고, 엄마가 화낼 것 같은 것은 아빠에게 설명하며 대비했던 것이다. 또 그래서 그것이 좋다고 말하는 겸이가 기특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동시에 부러웠다.
  
 나는 어려서부터 많은 규율 속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두 분 다 원리원칙주의자셨고, 늦둥이 외동딸이라 더욱 엄격하게 키우셨다. 두 분은 늘 같은 의견이셨다. 한 분이 혼낼 때 다른 한 분은 더 화가 나 계셨다. 그래서 이렇게까지 혼날 일이 아닌데 혼났을 때, 말려주거나 나를 달래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 내가 느끼기에도 혼내니까 혼났지만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던 순간들이 있다. 내가 엄마가 된 후, 그 순간들을 돌이켜보니 더욱 분명하다. 나도 겸이에게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잠을 충분히 못 잤거나, 내 강박에 쫓겨 정신없는 상황이거나, 남편과 다퉜거나,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등등 내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하게 된다. 또 유독 내가 크게 화나고 예민한 영역도 있다. 주의만 주면 되는 정도의 일인데도 버럭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 영역이 다른 남편이 나를 진정시키고 짚어준다. 그런데 내 부모님은 두 분 다 같은 영역에서 예민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럴 때마다 너무도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외로웠다. 그런 순간마다 세상에 내 편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겸이에게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똑같아서 두 배로 혼나고 두 배로 슬펐다고 얘기했더니 겸이도 그 마음을 안다면서 엄마 아빠가 같이 화낼 때 겸이도 속상하다고 했다. “근데 그럴 때는 겸이가 잘못한 거야.”라고 덧붙이며 배시시 웃는 겸이를 따라 나도 배시시 웃음이 났다. 겸이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겸이가 스스로 어느 상황에서든지 자신의 편이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 다행이고 기뻤다.

 겸이에게 숙제 노트는 내일 꼭 제출하라고 말하며 잊어버리는 것도 습관이 될 수 있으니 반복되면 안 된다고 당부하는 내 모습에 어쩌면 나는 겸이 아빠처럼 바로 괜찮다고 얘기해 주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겸이의 판단이 정확했던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낙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