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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경 Jan 18. 2023

용접 반 시 낭송회

'미래는 늘 가벼운 걸음으로 온다'

     

“선생님 이제 1학년도 얼마 안 남았네요~ ”

창수 말에 서운함과 아쉬움이 묻어납니다. 

“그러게... 시간이 참 빠르지? 우리 기념될 만한 파티 할까?”

“얘들아 좋은 추억될 만한 거 없을까?"

”시 낭송회 어때?“  

일제히 에이~~~~ 실망의 반응 속  

누군가 상금을 10만원 쯤 주면 모를까...합니다.    

 

미끼를 던져야 할 때입니다. 

1등 3만 원, 2등 2만 원 2명, 3등 만 원 3명 어때?

아이들이 와~ 하며 호응하고 

창수, 승호 서로 내가 당연 1등이지 하며 

주먹 불끈 쥡니다.       



2주 뒤 낭송회 날 되었습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번쩍 손 들고 나온 민기

갑자기 딥! 딥! 딥! 하며 어깨춤 춥니다.

박수, 야유 뒤섞여 웃음바다 되었습니다.  

“저는 긴장된 분위기를 좀 풀어 주려고 나왔습니다.”

축구부 포기하고 용접으로 진로 바꾼 민기는 

역시 우리반 분위기 메이커입니다.     


창수가 작업복 깃 세우고 나오며 분위기 잡습니다.  

한동안 밖으로 돌며 마음을 못 잡던 창수 

이제는 담배도 끊고 수업 중 잠도 자지 않으며  

눈빛과 태도가 확연히 안정되어졌습니다.       


자기는 몸으로 먼저 표현하고 낭송하겠답니다. 

시적 분위기 잡는데는 성공했으나  

류시화의 ‘풀꽃’ 암송이 대목마다 막혀 

연기력이 더욱 절절해 집니다.  

멀리서 승호가 헛기침하며 힌트 줘도 쉽지 않습니다. 

코믹 낭송회가 되어갑니다.

           

소심 병 고치고 싶어 하는 현민이 손을 들었습니다.   

아픈 가정사, 원거리 통학으로 고생하지만  

속 깊어 친구들에게 인기 좋은 현민이

잔잔한 음악 속 낭랑한 음성으로 

세 편의 시를 막힘 없이 술술 욉니다.


마지막 박노해 님의 시에 힘이 실립니다.  

“저 낮은 현장의 일하는 사람들에 깃든 

미래의 나침 바늘을 가볍게 보지 마라”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살짝 뒤돌아서니 

눈치 빠른 애들은 선생님을 울렸기에 

감점해야 한다며 야단들이지만 

나만 감동한 게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참가자 모두 낭송을 마치고 

누가 제일 좋았니? 물어보니 

자기 이름을 말하면서도 ‘현민이‘를 지명합니다. 

현민이는 좋아하는 햄버거 값 확보에 성공했습니다. 


“선생님~ 열심히 외웠는데 앞에 서니 생각이 안 나요”

1등을 노렸던 창수가 아쉬워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직접 시를 써서 한 번 더 하면 어떨까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승호가 합니다. 


“오~ 그래 그 좋은 생각이구나”

“선생님~ 시 길이는 오늘 시와 비슷해야 하나요?”

“아니~ 짧고 임팩트 있는 시들도 얼마나 많은데? 상관없어”     

“그럼, 이번엔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다 참여하기로 해요”

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이들이 다 해줍니다.  

“날짜는 일주일 뒤로 할까?”

“네~~~"

읽기만 해도 된다니 모두 자신감 충천합니다.           




드디어 기약한 날이 되었습니다.  

준모가 손을 번쩍 들고 1번으로 하겠답니다. 

준비한 시 제목은 ’시계‘입니다. 

’분침, 시침.....‘ 다 읽고 나니 


”저놈이 제거 베꼈어요 ~“

”저거 인터넷에 나와요~ “

”가장 먼저 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

 첫 시를 칠판에 붙였습니다.    

   

다음 현민이 시도 ’시계‘입니다. 

어? 시작이 같습니다. 

'모두 한곳으로 모인다'는 마지막 구절에서 

아이들 박수가 터졌고  

현민이 얼굴엔 승자의 미소가 여유롭습니다. 

불완전한 범죄가 준모의 계획인가 봅니다.   


부끄럼 많은 동석이 차례입니다.  

제목 '용접'

'용접은 뜨겁고 아프고 힘들다'

"우와~~"

짧은 시 한 줄에 

용접 불꽃 같은 박수가 터집니다.     

 

다음 승호 시는 '선생님'입니다.  

'선생님은 단풍같습니다...'

편지같은 시에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붙이고 보니 단풍잎까지 정성껏 그렸습니다.

우리반, 유일하게 여자 친구 있는 승호는 감성남입니다. 

 

폼생 폼사 말썽꾸러기 였던 창수

"저는 시 두 편 준비했습니다." 

진지하고 위풍당당합니다.  

'친구, 친구는 다육이 같습니다.....'

햇살과 다육이의 관계에 친구 관계를 비유했습니다.    

우와~ 박수 우레와 같습니다.      


"또 있습니다. '선생님’ "

‘선생님은 부모님 같습니다’로 시작해 .

‘잘 보듬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끝맺습니다. 

 머리까지 깊이 숙이며 인사합니다.       


모두 잠시 조용했다가 

”우와~ 멋지다~“ 

아이들도 저도 뜨겁게 환호합니다.      


친구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철영이에게도

이익이 있어야 움직이는 독설가 태기에게도

호응하는 아이들 손바닥에 불이 납니다.       


작심하고 시를 2개나 준비한 창수가 

자꾸 1등을 가려 달라고 했지만

다들 너무 잘 써 심사가 어렵다고 하니 

고개 크게 끄덕이며 인정합니다.      


그래도 준비를 제일 성의껏 하고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해준 창수에게 

특별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너무 잘했으니 

상금으로 다 같이 쫑파티 어때?“

”와~ 좋아요~~~“      


새 학기 되면   

또다시 용접 마스크 속   

진한 땀 흘릴 아이들 

표정도 걸음도 가볍습니다.     

 

     

미래는 늘 가벼운 걸음으로 온다는 

박노해 시인의 말처럼 

”저 가벼운 홀씨 속에 

푸른 나무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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