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은 2020년 8월 기획 시리즈 '산재는 기업 범죄다'를 보도했습니다. 똘똘한 후배 한 명이 2017년 1월~2020년 5월 부산지역 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된 산업재해(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사건 81건의 판결문을 모두 손에 넣었더군요. 어렵게 구한 자료인 만큼 제대로 분석해보자고 덤볐습니다. 쉽지는 않았는데요. 단일 사건으로 많게는 100장이 넘는 판결문을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샅샅이 '해부'했습니다.
몇 년 지난 일이지만, 지금이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아 분석 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3년 5개월간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은 57건, 기소된 기업(법인)은 54곳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53곳은 벌금형(150만~2000만 원), 나머지 1곳은 무죄를 선고받았죠. 실형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산재 사망 사고로 처벌받은 기업이 노동자 1명의 '목숨값(벌금 평균)'으로 낸 돈은 567만 원.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가장의 무게' 치고는 한없이 가벼웠습니다.
재범률 97%, 당시 부산에서만 일주일에 1명꼴로 노동자의 목숨을 앗아간 범죄. 바로 산업재해입니다. 피해자는 대부분 하청업체에 고용된 비정규직 노동자. 국제신문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의 필요성을 얘기했습니다.
결국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죠. 이제 노동자의 '안전한 퇴근'이 보장될까요. 그렇지는 않아 보입니다. 국제신문이 기획 시리즈를 보도한 2020년 그때와 2025년 지금, 별반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오늘도 이름 모를 노동자가 산업 현장에서 떨어지고, 깔리고, 끼이고, 갇히고, 질식해서 목숨을 잃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부산지역 상황을 한번 보겠습니다. 2023년 8월 대형 건설사의 아파트 신축 현장에서 떨어져 20대 노동자가 숨진 사건이 있었는데요. 수사는 1년 6개월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습니다. 같은 달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2t 무게 H빔에 깔려 50대 노동자가 숨진 사건도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네요. '중대재해없는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가 파악한 현황을 보면 부산고용노동청의 중대재해처벌법 조사 건수는 2022년 6건, 2023년 16건, 지난해는 4월까지 8건입니다. 총 30건 중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것은 4건이 전부. 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3건뿐인데요. 구속기소 사건은 단 한 건도 없다고 합니다. 여전히 처벌은 가볍고 느리며, 노동자가 사망하는 속도는 빠릅니다.
최근 부산에서 참혹한 산업재해가 있었죠. 기장군 '반얀트리 호텔'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6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사건인데요. 이번에는 법이 제대로 역할을 할까요. 중대재해 발생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법 취지가 지켜질까요.
검찰이 이례적으로 대규모 수사팀을 꾸렸습니다. 이미 시공사를 압수수색하며 강제 수사에 돌입했는데요. 부산지검 동부지청은 검사 10명, 수사관 15명으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했습니다. 지청장도 직접 나섰습니다. '구속기소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노동계는 물론 지역사회가 지켜보고 있습니다. 예전과는 분명히 달라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