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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해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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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연 May 10. 2021

나는 커피를 좋아서 마시는건가

익숙하고 흔한 것에서 벗어나기

일 년 내내 따뜻한 날씨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환경

저렴한 물가

내 집 앞 야자수 나무

온종일 물놀이

사교육에서 벗어난 생활


그리고 아이스커피!




내가 호찌민을 이사 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들은 이러했다.

일 년 내내 따뜻한 태양 아래

가끔은 마스크를 벗어도 될 것 같았고,

단돈 만원이면 우리 네 식구 쌀국수 네 그릇 다 사 먹어도 남으며

야자수 나무가 내 집 앞에 항상 있다.

아이들은 학교 갔다 오면, 실외 수영장으로 온몸을 던지며 논다.


 이것들은 서막에 불과하며,

내가 가장 기대하던 그것,

바로 커피! 그것도 카페 스어다!

한국에서는 연유 커피로 알고 있는 그 커피.

(사실 현지에서 먹는 스어다는 연유 커피와는 다르다. 훨씬... 맛있다)




호찌민에서의 내 생활패턴은 다음과 같다.


아침 요가로 하루를 시작한다. (나를 위한 건강한 루틴이다)

아이들과 남편을 각자의 일터로 보낸다. (기분 좋게 헤어진다. 우리 곧 만나요~)

간단한 집 정리를 한다. (이건 역시나 하기 싫은 일이다)

베트남어 학원을 가거나 수영 레슨을 받는다.(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다)


점심을 먹는다. (나는 혼자서도 잘 챙겨 먹는다)

커피를 마신다. (어? 생뚱맞나? 커피를 좋아하나? )

......

책을 쓰고 책을 읽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영어 책을 정리하면서 컨설팅 준비를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


내 인생에 이 친구가 들어온 것은

내 나이 15살 때부터였다.


귀 밑 단발머리를 하고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어느 날은 하루 종일 깔깔 대다가

또 다른 날은 너무 슬프다고 우울해하는

아주 유리 같은 어린 소녀였다.


그 해 중간고사 시험을 공부하기 위해 난생처음으로 집 앞 독서실에 가보았다.

독서실 좁은 복도에 아주 낡은 자판기.

그 독서실 자판기 커피가 그 시작이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다 보면,

다른 숨 쉴 구멍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그때 동전 2개만 있으면.

나는 이미 중간고사 시험을 훌쩍 건너뛰고,

 다 큰 대학생 언니가 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동전 2개를 넣었다.

뜨겁고도 아주 달콤한 커피가

단단한 종이컵에 쏟아졌다.

그 달콤한 맛은 지금의 내가 커피를 벗어나겠다고 글을 쓰게 해 주었다 ^^


그 이후로도 나는,

커피의 단 맛을 너무 사랑하게 돼버렸다.

커피를 마신다고, 잠을 못 잔 적이 없었다.

커피 때문에 몸이 어디 아프다고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난 커피와 함께 살게 되었다.

지난 26년간.

오랜 시간 연애를 해 본 적 있는가?

오랜 연애의 후반부는 대부분, 헤어질 이유가 딱히 없어 심심하게 그냥 사귀고 있다는 현실이다.

헤어져야 할 이유도 없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야 할 이유도 없는 그런 관계가 돼버린 것이다.


나는 커피와 그런 관계가 돼버렸다.


호찌민과는 달리 한국에서 나는

인스턴트커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집콕이 길어질수록 커피에 대한 애정은 점점 깊어졌던 것 같다.


커피는 내게 산소호흡기와도 같은 존재였다.

숨을 쉴 수 있었다. 커피 덕분에.

임신했을 때에도 연한 커피를 한잔씩 마셨다.

(담당의사의 허락 아래)


그런데 말이다. 나이 탓일까.

아님 누적된 커피의 중독성 때문일까.


조금씩 몸과 마음이 무거워졌다.

커피를 마셔도 피곤함은 여전하고,

없던 두통도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깊어져 갔다. 커피 덕분에


커피의 달콤 씁쓸함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달고도... 썼다.

참 달콤했는데.... 내 머리는 아팠다.


하지만, 26년 커피 중독자는 커피를 끊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산소 호흡기 없이 살 자신이 없으니까.


SNS에서 엄마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드디어 아이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저도 커피 수혈했어요. ~"


그런데 말이다. 내가 진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진정한 커피 애호가인가???



커피를 이렇게 매일 마시는 이유가 진정 커피를 사랑해서일까?

점심을 먹으면 왜 커피를 꼭 먹어야 했을까?

마의 오후 2시~3시에는 커피를 마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아이 없으면 내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도 진실일까?

두통이 심한데도 난 왜 계속 마셔야 하나?

그래, 커피 끊어 내볼까?

......






현재 나는 커피 수혈을 끊은 지 15일째다.

지난 26년간의 커피 중독 기간 중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커피를 안 마셔본 적은 없었다.

너무 더울 때는 물 대신 "아이스커피!" 하던 사람이었던 내가.

이젠 외친다... 코코넛 주스! 혹은 디카페인 차를 주세요!




다행히도 지난 15일간 편두통은 내게 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면 아주 긍정적인 결과이다.

물론,  그 녀석은 어떻게 또 올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을 수정하는 지금, 편두통이 왔다. 그러나 지난번보다 아주 가볍게 겪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난 만족한다.)

그때는 나도 화난 내 몸에 커피 수혈을 새로 시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현재는 커피를 더 마실 계획은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 상황은 커피를 끊고 나서 가벼워진 몸과 마음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이 주동안 커피 중독에서 벗어나 본 경험은 아주 값진 시간이었으니까.

 

"진짜 커피 좋아하세요?

커피를 사랑하신다면,

드세요.

그리고 커피 덕분에 건강을 유지하신다면,

드세요.


그게 아니라면,

왜 드세요?


한 번쯤은 커피 중독에서 잠시 벗어나세요.

오랜 기간이 안되더라도 저처럼 단 이 주일 만이어도 좋아요.

아무리 좋은 것이어도 한 번쯤은 벗어날 필요는 있습니다. "


새로운 시간을 가져보자.

커피 없이 보내는 시간. 그리고 그 대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찾아보자.

그렇게 당신의 하루의 큰 획을 과감히 빼보자.

그럼 당신이란 사람도 완전히 달라진 사람으로 살아볼 수 있다.

얼마나 흥미로운가.






아이들 영어공부에 대한 고민과 정보교환을 위한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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