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해요? 1편

by injury time


이글은 지난 제 소설 <칭찬고마워>와 같은 우리의 브런치 속 이야기입니다. 실제 있었던 사실에 무수히 많은 허구가 보태어진 글이오니 오해 없이 읽어주시고, 이글을 쓸 수 있게 허락해주시고, 긴장하며 발행을 기다리는 그에게 감사의 말씀을 남깁니다.



모든 시작은 어쩜 그 빌어먹을 블로퍼 때문일지 모른다. 그 호피무늬에 검정 망사 끈 매듭이 있는 블로퍼를 본 순간 가져야겠다는 욕심으로 한참을 찾아 헤맸다. 어쩜 그 블로퍼가 내 인생에 잘못된 첫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게 그 블로퍼를 신고 그곳에 갔던 일부터가 시작이었다. 첫 나들이었다. 승철은 가볍게 샌들을 신고 오라고 했지만 그와의 첫 여행을 나는, 마음에 쏙 드는 그 블로퍼로 시작하고 싶었다.


가을 날씨는 시원하고 또 뜨거웠다. 눈앞에 갯벌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모시조개가 능청스럽게 꼬물딱 거리며 움직였다. 그날 신고 온 블로퍼가 더러워질까봐 펜션에 있던 발에 안맞는 커다란 욕실화를 질질 끌고 길을 나섰다. 그리고 그 욕실화를 신고 그곳 갯벌을 딛었고, 쳡쳡쳡... 처음 들어갈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질펀하게 욕실화를 끌고 눈에 보이는 대로 모시조개를 주워 양파망을 가득 채웠다. 밀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갯벌을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육지는 멀었다. 어지럽게 정말 한참을 그렇게 걸어 나왔다.


욕실화가 갯벌에 척척 달라붙으며 헛돌았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있는 대로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저 앞에 낡은 어선이 비스듬히 서있었다. 이제 한 50미터만 가면 자잘한 자갈밭이다. 난생처음 온 정신을 집중하여 발가락 끝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발에 맞지 않은 커다란 욕실화를 신고 꾸역꾸역 발을 옮겼다.


- 빨리 가서 씻고 이거 삶아 먹자.

- 생각보다 진짜 많네. 자기가 맛나게 끓여봐.


노을을 등지고 우리는 고슬고슬할 숙소의 침대시트를 생각하며 행복하게 걸어 나왔다.


- 우리가 진짜 멀리 나왔나 봐. 수건 차 어디다 뒀어?

- 응. 트... 렁...


트렁크에 있어. 빨리 나가자. 나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

사실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그 말은 아득해지며 끝내 내 입 밖으로 기어 나오지 못하고 혀를 동동 묶어놨다.


- 뭐라는 거야? 트렁크에 있다고?

- 으...응


더 이상 말을 못 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었다. 검은 해일이 나를 덮쳐 한 입에 삼키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차에 도착하고 근처 공중화장실에서 서둘러 발을 씻고 수건을 찾아 물기를 닦고 숙소로 가는 동안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뭘 조잘조잘 얘기하려 하는데 잠에서 덜 깬 듯 머리가 아득해지며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갑자기 왜 말이 안 나온다는 거야? 아까 길에서 대추 따먹었잖아. 농약 중독아닐까?


입가에 침이 자꾸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승철은 나를 다독이며 걱정하지 말라며 병원으로 차를 급히 몰았다. 급하게 응급실로 휘적휘적 들어갔다. 승철이 주차를 하는 동안 내가 먼저 접수대에 갔는데 의사소통은 전혀 되지 않았다.


- 어디가 불편하세요? 본인 맞습니까? 드시는 약이 있나요?


주절주절 설명하고 싶었지만 처음 옹알이를 시작한 아이처럼 입안이 말을 듣지 않았고 침을 흘리며 웅얼거릴 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이 웃겨서 그 상황에서 바보같이 계속 웃었던 것 같다. 간호사들이 몰려왔다. 그 후, 응급실 침상에 눕자마자 나의 의식은 희미해져 갔다.




혈전이 돌아 순간적으로 뇌혈관을 막았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동안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아니 대체 이제 마흔밖에 안된 내가 뇌경색이라니. 좋게 말하면 뇌경색, 끔찍하게 말하면 중풍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대동맥 기형협착이 있었다고 했고, 그것 때문에 저절로 혈전이 생겼다고 했다. 순간적인 극심한 스트레스로 혈전이 뇌에 박히면 뇌경색, 심장에 박히면 심장마비가 된다고 했다. 이만한 게 천만다행이라고도 했다. 아마 남들보다 조금만 운동을 해도 힘에 부쳤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는 배구선수를 해보라고 할 정도로 운동신경도 좋았고, 감기 한번 앓은 적이 없었다. 대부분 선천성 판막질환은 심해지기 전에는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만 주치의는 반복했다. 혈전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사람에게서나 생기는 것인 줄 알았다. 억울했다. 마비 증상을 받아들이기에 마흔은 너무 젊은 나이다. 힘들었다. 죽고 싶었다.


MRI를 찍고 처음으로 내 호두 알맹이처럼 생긴 뇌 사진을 봤다. 과연 검은 그림자 화면에 하얀 혈관들, 그리고 유난히 쪼그라든 울퉁불퉁한 망할 실선들이 보였다. 결국 나는 우뇌 뒷덜미 쪽 혈관 뚫는 뇌수술을 받았고, 뒤통수 반의 머리카락을 밀어야 했다. 다행히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한동안 머리에 압박붕대와 망사가 씌워졌고, 자주 어지러워 정신이 희미해졌다. 정신이 들때면 침상 위에 LED 등을 보며 그동안의 삶이 무너지는 찰나를 천천히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온 신경을 발 끝에 주고 걸었던 게 그리도 힘든 일이었을까.

블로퍼가 아니라 발에 잘 맞는 운동화라도 신고 갔더라면, 아니 요즘 만만한 크록스만 신었어도 그렇게 내가 하루아침에 병원에 누워 시들어가지는 않았을 것만 같았다.


지리멸렬한 병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계속]


Ps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겪은 일이 아닙니다. 다들 너무 심각해져서 응원하시며 걱정하셔서 죄송하네요. 다음부터 나올 이야기도 99프로가 창작입니다. 자료조사해서 지어낸 일화이니 걱정마시고 소설 감상해주세요. 이론;;;

제가 뻥을 너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