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으로 커튼이 쳐진 침상에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사무실에 퇴사 신청을 해놓고,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간호사는 내 피를 뽑아 혈전 검사를 했고, 콩알만 한 알약들을 놓고 갔다. 왼쪽 손발, 얼굴의 마비가 후유증으로 남았다. 물론 어눌한 말도 좀체 풀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단어가 생각나지 않거나 그 생각하는 자체가 피곤해지며 현기증이 나서 모든 대화를 짧게 끝냈다.
응, 아니, 괜찮아. 안 먹어. 그만해.
더 이상의 긴 말을 해낼 수 없었다. 머릿속이 검은 실타래로 뒤죽박죽 된 듯, 생각하는 자체가 피곤해지고 구역질이 나왔다. 한 달간의 긴 입원생활이 끝나고 나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마비가 풀리지 않아서 재활치료가 시급했다.
요양병원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산 밑에 있었고, 나는 2인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의료용 네발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했고, 재활치료를 받을 때만 조금씩 움직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늘 통 창문을 보며 하릴없이 누워 지냈다.
아침저녁으로 연락하던 승철도 점점 시들해졌는지 연락이 뜸해졌고, 지인들의 연락은 이제 언제 메시지를 주고받았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는 1년 후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며 재활치료를 독려했지만 좀처럼 의지가 생기지 않고 점점 깊이 고립되어갔다. 휘적휘적 걷는 내 모습을 보면 정수리부터 검은 물감이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이 들어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햇볕이 쨍하게 들어오는 오전에서 오후로 가는 시간이었다. 눈뜨고 한참이 지났는데 아직도 하루가 많이 남았다는 생각으로 무료하게 짹짹거리는 참새 날갯짓이나 보고 있는데 지잉 알람이 울렸다.
한... 석 달 만이었다. 내가 브런치를 안 한 지가. 3년 전에 시작했던 브런치 작가 활동은 가까운 승철도 알지 못하는 취미생활이었다. 꾸준히 글을 올리다가 쓸어지고 난 후로는 잊고 지냈다. 하루 이틀, 한 달이 지나니 브런치는 영영 그렇게 잊어지고, 잊히고 있었다.
우선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생각에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를 찾았다.
한 1년 전쯤 쓴 소설에 댓글이 달렸다.
글이 너무 재미있어요. 이 이야기 실제인가요? 실제가 아니라면 진짜 실감 나게 쓰셨어요. 여자들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어느 동그라미 독자였다. 나는 오랜만에 찾은 독자가 반가워서 얼른 답을 달았다.
고맙습...
불편한 손으로 자판을 누르는데 간호사가 피를 뽑으러 왔다. 글쓰기가 멈췄다.
- 운동을 하셔야 해요. 이따 재활치료 잊지 마시고 나오세요.
간호사가 일상적인 친절을 베풀면서 사라졌다. 나는 다시 브런치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독자의 댓글이 사라졌다. 분명 확인하고 읽었던 글이었다. 다시 찾아봐도 없었다. 알람에는 댓글을 남겼다고 남아있었지만 그 댓글은 사라졌다. 섭섭한 마음이 들었고,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를 좀 헤매다가 나는 침대에 파묻혀 잠이 들었고 그날은 그렇게 잊혔다.
승철에게 나도 조금씩 잊혀가고, 그렇게 나는 승철을 조금씩 잃어갔다.
그 후로 나는 재활치료에 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핸드폰 자판도 제대로 누르지 못하게 될까 봐 불안해졌다. 왼손에 악력기를 두고 하루 종일 쥐락펴락 하며 손 힘을 키웠다. 짧은 책을 가져와 혼자 중얼중얼 읽어가며 입안 신경을 자극시켰다. 폐활량 운동기로 하루 종일 숨 쉬는 연습도 쉬지 않고 했다. 의사는 머리를 조금씩 써야 한다고 했고, 젊은 사람이라 금세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또다시 브런치 알람이 왔다. 이번에는 제안하기로 온 알람이었다. 나는 메일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해외에서 작가님을 응원하는 구독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응원의 편지를 보냅니다. 어릴 때 하루키 선생님의 슬픈 외국어라는 글을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작가님 글 읽으며서 그때 도서관에서 느꼈던 감성이 느껴져요. 책은 언제 나오나요? 꼭 책으로 보면 좋겠네요.
지난주에 댓글을 남긴 독자였다. 나는 왼손에 악력기를 움켜쥐며 꾸역꾸역 답장을 보냈다.
지난번에 댓글 남기신 분이시죠? 응원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 글은 책으로 나오고 그런 글이 못됩니다. 브런치를 통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로 책을 내네, 마네 하는지 참 어이없는 사람이란 생각에 형식적인 메일을 보내 놓고 핸드폰을 치워버렸다.
옆 침상에 누워있는 최분이 할머니가 의미 없이 나를 한참 동안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었다. 최분이 할머니는 61세에 초로기 치매에 걸려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5년 만에 의사소통이 안될 정도로 치매가 진행된 할머니는 하루 종일 누워서 잠만 자다가 눈을 뜨면 내 쪽을 멍하게 지켜보며 눈물을 질질 흘렸다. 도대체 눈뜨고 자는 건가 싶게 유체이탈된 눈빛으로 나만 한참을 바라보다 요양보호사가 밥 먹자고 흔들면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최분이 할머니 밖에 없다니.
이곳 요양병원에서는 기저귀를 갈 때나 한 번씩 사방 커튼을 치지 웬만해서는 서로 모든 게 오픈 상태로 이루어진다. 사생활이란 기대할 수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