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해요? 4편

by injury time

온 병실에 역한 냄새가 진동했다.

옆에 최분이 할머니가 욕심부리며 빵과 요플레를 잔뜩 먹더니 이불이며 침대맡에 토악질을 해버렸다. 시큼하고 비릿하고 지린내 나는 구토 냄새에 나까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아 얼른 휘적거리며 병실을 빠져나왔다. 병원 복도에 몇 명의 환자들이 좀비들처럼 느슨하게 설설 걷기 운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제일 한가한 5층 복도로 가서 천천히 걸으며 승철에게 톡을 보냈다.


저녁에 뭐해?


승철은 잠시 후 톡을 읽었지만 답이 없다. 걷기 운동이 끝날 때까지.


<저녁에 뭐해요>는 여전히 댓글 쓰기, 지우기를 하고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장도 매끄럽고 내가 쓴 글의 의도는 잘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도대체 왜 댓글을 썼다 지웠다, 하트를 칠했다 말았다 하는지 나는 그날따라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그의 뒤를 쫓았다.




이번에는 학생들 일곱 명이 한국에서 입국했다. 열두 살에서 열일곱 살까지의 남녀 학생들은 부모님을 떠나 낯선 이곳 필리핀으로의 여행에 들뜬 얼굴로 지들까지 시시덕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이 얘들을 마리 이모네로 데려가 숙소 안내를 하고 규칙들을 설명했다. 마리 이모는 이곳 필리핀 케손시티에 있는 작은 전원주택에서 15년째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 현지인이다. 나는 5년 전부터 이곳에 와서 한국에서 온 학생들을 인솔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마땅한 취직자리가 없어 편의점 알바만 전전하다가 잠깐 어학연수했던 마리 이모님의 권유로 5년 전에 짐을 싸고 취업비자로 이곳으로 날아왔다.


학생들이 이곳으로 오면 식사와 잠자리는 마리 이모가 관리를 하고, 나는 프로그램대로 아이들을 인솔해서 쇼핑센터에도 데리고 가고 풀장에도 데려가고, 물론 어학원에는 매일 시간 맞춰 데려가서 학생들을 쏟아놓고 기다렸다가 다시 챙겨 와야 한다. 한마디로 스쿨버스 운전기사이다.

학생들은 처음에는 영어로 이야기하려고 멈칫멈칫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웃고 떠들며 한국말로 얘기하거나 바디랭귀지로 떠들어서 당최 이래서 영어 실력이 늘까 싶다. 그래도 한국에 있는 대표님이 매번 홈페이지를 신경 써서 관리하니 어학연수 신청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명당 한 달 홈스테이 비용이 200만 원이고, 나에게는 그중에서 30만 원이 떨어진다. 일곱 명이 들어와서 석 달을 있다 가니 이번에는 한 달에 이백십만 원씩 석 달을 벌 수 있다. 숙식은 마리 이모네에서 제공해주니 따로 생활비는 들지 않지만 나는 내가 버는 돈의 절반을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송금한다.


객지 생활이 길어질수록 이 나그네 같은 마음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바로 1년 뒤의 내 삶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1년 후에도 계속 이곳 케손시티에서 운전기사로 있을지, 부모님이 계신 한국의 그 죽은 항구마을로 돌아갈지 알 수 없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지독히도 궁상스러웠던 민정과의 기억도 아직 지워지지 않은 채 나는 이곳에 정박되어 있었다. 한국을 떠난 뒤, 한 번도 민정을 찾지 않았고 모든 사랑은 내게 철벽처럼 채워진 채 기계처럼 웃으며 친절한 운전기사 아저씨로 지내고 있다.


우기가 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축축하고 밤새 내리는 비로 귀가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 마리 이모네 숙소에서 나는 외따로 떨어진 가건물에 내 방이 있고, 내 방 지붕은 얇은 양철 지붕으로 지어져서 그런지 빗소리가 유난히 시끄럽게 튕겨나갔다. 툭 툭 툭. 밤새.

잠이 오지 않는 밤, 아이패드를 열어 인터넷을 뒤지며 볼거리를 찾다가 어떤 소설을 읽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도 처음 봤다. 어떤 유부녀가 젊은 청년을 만나는 이야기였는데 아주 실감 난 표현에 아랫도리 내 물건이 불뚝 솟아올랐다. 아래위 속옷을 맞춰 입고 있다는 문장을 보는 순간.

연결된 다른 글들도 주르륵 따라 읽었다. 마치 현실과 상상이 줄다리기하는 하루키 소설처럼 덤덤한 글들이 나를 더욱 흥분시켰고 그날 나는 그 작가와 오랫동안 꿈속을 헤맸다.

나도 모르게 그리고 댓글을 썼다. 하지만 금세 지웠다. 내 이 음탕한 마음을 들킬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 지냈던 날들도 떠올랐다. 지금 이 나이 든 아줌마랑 밤새 삐그덕거리는 간이침대에서 뒤엉켜있는 꿈을 꾸고 있는 게 들킬 것만 같았다.


일주일은 헤맨 것 같다. 학생들을 어학원에 올려 보내고 차 안에 앉아서 대기하면서는 계속 그녀의 브런치로 들어갔다.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글들을 읽고 어떤 사람인지 미로에서 햇빛이 반짝이는 출구가 보이는 길을 찾아 헤매듯 그녀에 홀릭되어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나는 그녀에게 제안하기로 편지를 보냈다. 겉보기에는 팬심처럼 보이게 편지를 썼지만 사실 그 작가랑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한 번쯤 만나서 질펀하게 그녀가 원하는 체위로 섹스를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녀라면 분명 나 같이 별 볼 일 없는 운전기사라도 좋아해 줄 것 같았다. 바람도 많이 피워본 것 같았다. 아마 경험도 많으니 아주 잘할 것 같다. 미래를 도모하지 않아도 되는 아줌마니 어쩐지 더 흥분이 되었다. 글에 올려진 사진도 기가 막혔다.

어떻게 이렇게 나보다 일곱 살이나 많은 여자에게 빠질 수 있을지, 그것도 얼굴도 모르고, 사실 글에 나온 내용이 사실인지 어쩐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나이 든 여자한테 한동안 빠져버렸다. 아주 창피한 일이었다. 나는 바다의 부표 같은 심정으로 한동안 그녀 가랑이 사이를 떠다녔다.

제안하기를 보낸 후 얼마 안돼서 그녀에게 곧장 답장이 왔다. 정말 꿈속에만 있던 여자가 실제로 살아서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신비로운 일이었다. 그녀의 답장에는 외딴 시골의 한적한 카페를 운영하는 여사장처럼 여유로움이 물씬 풍겼다. 따듯한 카페 통 창문 아래 투명 머그잔에 카모마일을 마시고 있을 듯, 그녀의 편지에는 허브향이 났다. 그녀는 내 메일을 보며 웃고 있었다. 하루 동안 스무 통 넘는 메일을 보냈다. 답장도 없는 혼잣말 같은 메일이었는데 그래도 누군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나는 즐거웠다. 그리고 밤에 답장이 왔다. 브런치에서 만나자는 내용이다. 나는 그녀를 생각하며 닉네임을 <저녁에뭐해요>로 바꾸고 그녀에게 날아갔다. 몸에 딱 맞는 검은색 니트원피스를 입고, 얇은 발목이 드러나는 7센티 슬링백 슈즈를 신은 그녀를 상상했다. 그녀의 글 속에 있던 발 사진을 보며 '다이안 레인'이 떠올랐다. 그녀에게 '당신을 좋아해요'라고 고백을 해버렸다. 발을 보니 다이안 레인 같다고도 해버렸다. 정말 그렇게 생겼을 것만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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