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해요? 3편

by injury time

병원생활이 3개월을 지나고 있었고, 이제 나는 손발 떨림은 줄어들었고 안면근육도 많이 풀린 상태다. 2주에 한 번씩 찾아오는 승철은 내 얼굴 왼쪽에 생긴 팔자주름을 알아보지 못하고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왼쪽 입술 옆으로 생긴 깊은 팔자주름이 영, 어색하고 보기가 싫다. 나는 그걸 볼 때마다 지우개로 지우듯 손바닥으로 그 깊은 주름을 박박 문지르고 지워보지만 이내 지쳐 주저앉았다.


그렇게 주저앉아있을 때면 언제나 지잉~ 메일이 왔다.

지난번 동그라미 독자다. 내가 형식적인 감사의 메일을 보낸 후 그 독자는 내게 한두 줄의 카톡 메시지 같은 짧은 메일을 끊임없이 보냈다. 하지만 그 메일들에 일일이 답장을 할 몸 상태가 아니어서 짧은 답장만 몇 번 보내주고 말았던 참이었다.

그 독자는 내가 쓴 소설을 우연히 읽었고, 심리묘사가 훌륭한데 그게 진짜 있었던 일이냐고 자꾸 묻는 듯했다. 그 독자는 친구한테 톡을 보내듯 '커피 마시며 글을 읽고 있어요'라고도 한 줄의 메일을 보내고,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제목을 쓰고 빈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는 필리핀에서 국제학교 한국어 교사를 하고 있는 젊은 33세의 청년이라고 했고, 외로운 해외생활에서 뜻밖의 글을 만나고 뭔가에 꽂혀 흥분한 상태 같았다. 왜냐하면 내가 쓴 소설의 내용 중 '아래위 속옷'이야기를 주저주저하다가 결국 물었기 때문이다.

글 마지막 줄에 아래위 속옷을 맞춰 입었다고 쓰셨는데 정말 그러셨어요?

무기력한 병원생활에서 그의 메일은 짹짹거리며 창틀에 올라온 귀여운 참새만큼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나이 든 여자 좋아하셔요? 제 글은 다 소설이에요.

라고 나는 답장을 보냈다. 잠시 후 쏜살같이 그는 고백하듯 다시 짧은 메일이 왔다.

당신을 좋아해요.

헐. 당황스러웠다. 지금의 내 상황을 안다면 이 청년이 나에게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을 테지만 나는 이 지리멸렬한 생활을 밝히고 싶지 않았고, 짹짹거리는 참새가 조금 재밌어졌다. 몇 분 뒤 다시 그 청년에게서 아주 심각한 분위기의 긴 메일이 왔다.

저를 이상하게 보셔도 이해해요. 요즘 작가님의 글을 다 읽고 있는데 갑자기 너무 좋아졌어요. 이런 느낌 처음이에요. 그리고 어떤 분인지 궁금해졌어요. 어디까지가 사실인가요? 저는 요즘 일상생활이 작가님 때문에 완전 엉망이 되었어요.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작가님 글을 읽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누군가와 얘기한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이곳에 온 지 5년짼데 빨리 한국으로 날아가고 싶어요. 작가님이 궁금해요.

어리숙한 그의 고백에 그가 어린애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교사라는 것도, 33세의 남자라는 것도, 그 어느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일반적인 독자는 더더욱 아니었다. 더 이상 메일을 주고받으며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 마지막 편지를 단호하게 써서 보냈다.

브런치에 들어와서 댓글로 소통하는 게 좋겠네요. 조만간 새 글도 발행하겠습니다.

병원생활에 관한, 초로기 치매에 걸린 최분이 할머니에 대한 글을 한 줄씩 쓰고 있었던 참이었다.





잠시 후 그가 구독을 했다. 그의 이름은 <저녁에뭐해요>였다. 닉네임이 웃겨서 삐뚤어진 입으로 오랜만에 웃었다. 그리고 문득 웃다가 딱 멈췄다.


<저녁에뭐해요>는 여기저기 나의 200편이나 되는 글들을 마구 돌아다니며 라이킷을 눌러댔다.

진짜 교사인가 의심이 될 정도로 어린애처럼 보였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 어떤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확인하러 들어갔을 땐 <저녁에뭐해요>의 댓글은 금세 지워져 있었다. 그는 여기저기 댓글을 달았다가 금세 지우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라이킷도 눌렀다가 지웠다가 했다. 무척 산만해 보이는 <저녁에뭐해요>는 그렇게 밤새 내 브런치에서 놀다 갔다.


다음날, <저녁에뭐해요>의 댓글을 나는 타이밍 좋게 포착했다.


김치에 관한 글이었는데 한국에 너무 가고 싶고 엄마 생각이 난다는 내용이었다. 그 댓글도 10초 만에 그는 스스로 삭제했다. 또 다른 글에서는 두부 사진을 보니 한국에서 먹던 두부구이가 참 먹고 싶다고 썼고, 또 어떤 글에서 아이들이 자기는 너무 좋고 같이 있으면 행복하다는 뭐 그런 일기 같은 댓글을 혼잣말처럼 썼다가 지우길 반복했다.


웬일인지 <저녁에 뭐해요>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