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해요? 5편

by injury time

승철에게 답이 온건 그날 밤늦은 시간이었다. 병실은 저녁 8시만 되면 불을 끄고 억지로 잠을 재운다. 아마 계속 잠 오는 약을 먹이지 싶은 게, 옆자리 할머니는 7시 저녁 약을 먹고 요양보호사랑 티브이로 일일드라마 <비밀의 남자>를 보다가 매번 잠이 들었다.

병실에 소등을 해도 내 자리는 다행히 빛이 들어온다. 창밖의 가로등 불빛이 그나마 어두운 방에 스탠드처럼 잔잔하게 내 자리를 비춰준다. 누워서 아무도 몰래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는데 승철에게 톡이 왔다.


저녁에 회식이 있었어. 오늘은 좀 어때?


내가 톡을 보낸 시간을 봤다. 오후 5시 45분이다. 저녁 회식 핑계를 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시시콜콜하게 톡 보낸 시간까지 따지는 게 피곤해서 서운한 기분을 지우며 답장을 보냈다.


잠이 안 와.


그때가 12시. 그는 또 말이 없다. 1은 없어졌지만 그 후로 그의 메시지를 들을 방법은 없었다. 나는 브런치를 열었다. 그 <저녁에뭐해요>가 누르고 간 흔적이 알림 메시지에 가득했다.

그때 그의 댓글이 또 달렸다. 나는 부리나케 그 글로 들어갔다.


저녁에뭐해요 : 여기 오기 전에 천안에 살았어요

타임 : 오셨군요. 왜 자꾸 댓글과 라이킷을 지우나요?


그는 잠시 조용하더니 누가 자기 글을 보는 게 싫다고 했다. 그리고 라이킷은 좋아하나 안하나, 꽃잎 따기 점 같은 거라고 했다. 계속 한 줄씩 댓글을 다섯 개나 한꺼번에 올렸다.


저녁에뭐해요 : 작가님 발 사진을 봤어요.

저녁에뭐해요 : 발이 예뻐요. 다이안 레인 닮았어요.

저녁에뭐해요 : 그냥 그렇다구요.

저녁에뭐해요 : 결혼은 했나요? 몇살인가요?

저녁에뭐해요 : 글을 아무리 읽어도 잘 모르겠어요.


타임 : 뭐부터 대답할지 모르겠어요. 언페이스풀은 재밌게 봤구요. 전 다이안 레인이랑 거리가 멀구요. 개인 신상은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그쪽보다는 나이는 많을 듯합니다. 글은 모두 창작 소설입니다.


이렇게 보냈다. 그는 금세 자기 글을 삭제하기 시작했다. 나도 삭제했다.


<저녁에뭐해요>와의 댓글 대화를 그만 두려는데 어이없는 사실에 다시 그와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5년 전 한국에 있을 때 천안 단국대 근처에서 지냈다고 했고, 단국대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웠다. 우리 집이 단대와 가까워서 자주 승철과 바람 쐬러 갔던 코스였다. 마치 나를 진작부터 알고 있듯이 단대 저수지에 살고 있는 오리까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곳을 그도 알고 있는게 신기했다. 어쩌면 한 번쯤은 오래전에 스쳐지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같은 길을 오고 갔다는 게 신기했다.


저녁에뭐해요 : 단대 학식도 맛있어요.

타임 : 와. 4500원짜리! 거기 갈 때마다 샐러드 왕창 먹을 수 있던데요.

저녁에뭐해요 : 단대 학식도 드셨어요?

타임 : 학생 때를 생각하며 점심 시간에 몇 번 갔었어요.

저녁에뭐해요 : 전 거기 저수지 옆에 노천극장

타임 : 맞아요. 메타세콰이어 길!!


어쩜 일면식도 없는 먼 타국에 있는 어떤 청년이랑 이런 대화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이곳의 이마트도, 이곳 5001번, 66번 버스노선도, 엄마손칼국수도 그대로냐고 물었다.


<저녁에뭐해요>와의 댓글은 읽고 삭제하고, 읽고 삭제하고를 반복했다.


타임 : 이제 그만 합시다.

저녁에뭐해요 : 제가 여기 오래 나와 있어서 외로웠나 봐요. 사실 이렇게 누군가랑 얘기한 게 정말 오랜만이에요.

타임 : 아이구야.

저녁에뭐해요 : 거긴 첫눈이 왔나요?

타임 : 아니요.

저녁에뭐해요 : 작가님 글을 보고 제가 좀 빠졌었어요. 제 불찰이에요. 죄송합니다.

타임 : 지금은 괜찮아졌지요?

저녁에뭐해요 : 예. 아니,,,사실 잘 모르겠어요.

타임 : 이제 자야겠어요.

저녁에뭐해요 : 누나, 저녁에 뭐해요?

타임 : ....


그가 '누나, 저녁에 뭐해요'라고 묻는 순간. 뭔가 물컹한 게 심장에서 꿈틀거렸다. 난데없이 누나라니...


저녁에뭐해요 : 만약 산책 간다면 '별 보러 가자'들으면서 걸으세요. 요즘 제가 자주 듣는 노래예요.

타임 : 그럴게요. 안녕.


그는 '별보러 가자' 음악을 링크해주었다. 나는 주고받은 글들을 삭제하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구석에서 자던 요양보호사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내가 이런 실체도 없는 아이랑 뭐하나 싶은 게, 승철 생각만 났다.

이혼 후 또 다른 사람을 만난 건 승철이 거의 처음이었다. 동갑인 승철은 비혼주의었다. 그래서 그런지 도통 끌어당기는 맛이 없었다. 그냥 옆에 있으면 만나고 없으면 잊는 것 같다. 내가 옆에 없으니 지금은 잊은 듯했다. 나도 뭐 승철과 또다시 결혼할 생각은 없지만 승철과 잘해보고 싶었다.


다음날 눈을 뜨니 눈이 소복이 쌓였다. 이게 바로 첫눈이다. <저녁에뭐해요>에게 이곳의 눈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틀에 쌓인 곱고 깨끗한 눈을 예쁘게 찍어 브런치에 오랜만에 첫눈 소식을 알리는 글을 발행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