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뭐해요? 7편

by injury time

넉 달 동안 병원생활을 접고 모든 짐을 차에 싣고 마지막으로 빼먹은 건 없나 살펴보고 나가려는 그때, 최이분 할머니가 갑자기 내 손을 딱 잡았다.


- 울지 마. 알았지?


눈동자가 유난히 회색빛으로 변한 할머니가 내 손을 잡으며 기어들어가는, 나만 들리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그 음성은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머릿속 세포를 한 올 한 올 긁어모아 내뱉듯 저 깊은 메아리처럼 들렸다.

그 순간 쌓였던 눈물이 푹. 터져 나왔다.

요양보호사가 놀라서 왜 그러냐고 달려오고, 병실 앞을 지나가던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기웃거렸다. 나는 달달 떨리는 왼손을 옆구리에 힘줘 붙이고 할머니 품에 안겨 한참을 울었다. 백발의 커트머리에 여기저기 까치집을 지은 할머니 몸에서 내내 화학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왜 그렇게 소리 나게 울음이 났나 모르겠다. 억억 거리며 그동안의 공포를 토해내듯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최분이 할머니도 어쩌면 자신의 이른 치매를 두려워하며 그렇게 나를 보며 그동안 힘없이 내내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을지.


내가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승철이 기다리다 못해 다시 나를 찾으러 들어왔다.


- 가자. 괜찮아질 거야. 벌써 많이 좋아졌잖아. 지금까지 잘 참았으면서.


승철이 내 어깨를 감싸며 부축하여 사람들에게 짧게 인사하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퇴원 후 내 스물넷 평 낡은 아파트로 들어갔고, 승철과 같이 지내게 되었다. 퇴원하고 오랜만에 집에 들어서는 데 호피무늬 블로퍼가 현관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신기 편하게 바깥쪽을 향하게 놓여있는 호피무늬 블로퍼. 이제 겨울이고 그 신발을 신으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더욱이 그 신발로 인해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못내 그 신발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집에 들어가면서 그 블로퍼를 픽 옆으로 밀어놓고 집안으로 들어왔다. 승철이 뒤따라와서 다시 신발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승철은 내가 올걸 대비해 미리 보일러를 돌리고 집안 정리도 말끔히 해놓은 상태였다.


그동안 승철은 내가 없는 빈집을 정리하고 매달 챙겨야 하는 소소한 것들을 챙겨 왔다고 했다. 부서도 아주 골치 아픈 건축허가 부서로 옮겨 업무 인수인계받고 현장 실사를 다니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고 이제야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40대의 여느 남자처럼 승철은 원래 말수가 적고, 더군다나 카톡을 잘 안 보고 안 하는 사람이다. 병원에 있을 때는 왜 그렇게 내내 그게 섭섭했는지. 막상 내가 퇴원을 하고 난 후 승철은 내 손발이 되어주며 신경을 썼다. 여전히 sns보다는 직접 얼굴 보고 얘기하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만. 승철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동안 내 식사를 챙겨주고 집안 일도 나와 같이 하나하나 해나갔다.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으며 보냈다. 제일 끔찍한 건 뇌혈관센터 앞 의자에 앉아서 대기하는 일이었다. 주변에는 다 노인들밖에 없는데 젊은 내가 손을 떨며 거기 앉아있는데.. 그게 참 수치스러웠다.

의사를 만나는 날은 언제나 승철도 함께 내 옆에 보호자의 입장으로 앉아 내 상태를 같이 들어주었다.


- 원래 수술을 해서 기계 판막을 달아야 하지만 아직 젊으시고, 아직 아이가 없지요?

- 예. 아직 아이는 없어요.

- 출산 계획은요?

- ...


우리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 이 수술을 한 후에는 임신, 출산이 불가능해요. 그러니 출산 계획이 있으면 얼른 출산을 하시고 그 후에 수술을 생각해봐야겠네요. 그동안은 정기검진 잘 받이시고 약 잘 챙겨 드시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받지 않게 마음을 편하게 두세요.


갑자기 승철과 나는 심각해졌다. 내 인생에 아이에 대한 고민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았는데 막상, 수술을 하고 나면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하니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승철과 나는 계속 이렇게 살지 어쩔지도 정하지 않은 그냥 그런 동거인일 뿐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승철은 빵을 사 온다며 파리바게트에 들렀다. 초코 소라빵을 사 오라고 주문을 하고 차에 앉아있는데 잠시 후 승철이 케이크 상자를 들고 왔다.


- 무슨 케이크야?

- 음. 먹고 싶어서.


그날 밤 승철은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내게 청혼을 했다. 아이 낳고 잘 살아보자며 나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때만큼은 손떨림이나 안면 긴장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너무 떨리고 너무 어색했다. 하지만 뭔가 어두운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 눈이 부셨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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