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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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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jury time Oct 18. 2023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1.

이제 나가시죠

있잖아요. 작가님. 답은 안 해도 돼요. 그냥 저 혼자 여기 대화방에서 좀  떠들다가 나갈게요. 그냥 나중에, 작가님 시간 날 때 읽고 싶으면 읽으세요. 절대 답은 하지 말아 줘요. 딱히 답이 필요한 거 아니니까요.


그때는 제가 한창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쁜 시기였어요. 매번 출근 시간 30분 전에 사무실 주차장에서 하루 동안 또 다른 제 안의 저를 꺼내놓는 마음의 의식이 필요했거든요.

그날도 완벽하게 세팅된 직딩의 모습으로 아침 8시가 안 되어서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갔어요.

아직 일자 주차가 다 빠지지도 않았고,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한가해진 지하주차장.

근데요. 유독 제 차 앞에만 3대의 차가 일자로 하필 줄지어 세워져 있었던 거예요ㅠㅠ.

며칠 전 비가 와서 인지 하얀색 k7 차량은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제 차 앞을 떡 하니 얄밉게 가로막고 세워져 있었던 거예요. k7  앞뒤로 또 작은 소형차가 한 대씩 있었고요.

우선 소지품을 차 안에 대충 쑤셔 박아놓고 손바닥 끝으로 앞으로 k7을 밀고 밀고 있었어요. 앞에 앞에 또 차가 세워져 있어서 씩씩거리며 최대한 천천히 조심히 밀어야 했죠.


그때였어요. 차가 술술 밀리더라고요. 오호라, 저는 한숨 돌리며 고개를 들었어요.

그때 제 옆에 그분이 있었어요. 

어어 맞아 맞아요. 제가 작가님한테 얼마 전에 언뜻 말씀드렸던, 분리수거 완전 잘하는 그 이웃.

그분이 제 옆에서 차를 같이 밀어주시는 거예요.

그... 왜, 저희 집 밑에 밑에 7층 그분.


- 어디까지 밀까요?
- 앗. 감사합니다. 이 차거든요.
- 이쯤이면 되겠죠? 아니다. 조금만 더 밉시다!


그는 차가 나갈 공간을 짐작하며 차를 몇 번 더 밀더니 손을 탁탁 털었어요.


- 이쯤이면 될 것 같네요. 이제 나가시죠.
- 아, 감사합니다.


그분은 손짓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더니 비상계단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어요.


7층 아저씨. 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매너 있고 단정한 목소리로 먼저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같은 라인에서 그렇게 인사하는 주민은 딱 그분 한 명이었어요. 그분이 인사하면 저는 어정쩡하게 '아... 네' 하면서 대꾸를 했지만 그게 참, 어색하면서도 흐뭇하더라고요.


그분은 차를 놔두고 걸어 다니는 것 같았어요. 가끔 오고 가는 걸 보면 목 뒤로 검은색 귀마개를 하고, 가죽장갑을 끼고, 짧은 패딩재킷을 입고, 늘 등산화 같은 걸 신고 씩씩하게 걸어 다니셨어요.


그분이 입은 패딩은 그다지 방방하게 두툼하지 않았지만 꽤 가격이 나가는 몽클레이 패딩이었어요. 작가님도 알잖아요. 저 옷에 관심 많아서 매번 작가님께서도 제 글에서 새로운 패션 정보를 배운다고 하셨잖아요. ㅎ 

키는 저보다 한 뼘이나 클라나? 제 글에 가끔 등장하는 J보다는 훨씬 작고 아담하신 분이었어요. J는 키가 185인데 그분은 저보다 조금 큰 걸 봐서는 170이 조금 넘으려나.

나 참, 저 그분을 꽤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군요.

어쨌든 그 나이가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그냥 작고 다부지게 생긴 분이었어요. 게다가 구레나룻에 희끗희끗 흰머리가 보이는 그런 늙수그레한 분이었죠. 하지만 웬일인지 세월을 곱게 지나고 계신 분 같았어요. 

전혀 빛나지 않은 외모였던 그분을 제가 기억하는 건 딱 하나 목소리였요. 그날의 '이제 나가시죠.'그날부터 저는 그분이 이상하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요.



작가님, 저 나가봐야겠어요.

오늘 J가 오는 날이에요. 너무 긴 톡을 보내서 작가님 힘들면 그냥 안 읽어도 돼요.ㅎ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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