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해룡면 풍기리에 바람이 불면<2부>
7. 슈퍼문
by injury time Aug 22. 2023
“기태야, 언제까지 요 눈앞에서만 왔다 갔다 하면서 저렇게 관광용 열기구만 탈거냐? 우리도 태평양 바다 한번 건너 봐야지 않겠냐!”
볼이 발그레하게 취한 성규가 빛나는 눈동자를 가늘게 뜨며 말했다.
“성규 이 자식, 먼 소리 하는 거야?”
“바로 이거, 사이드 패러슈트!”
성규는 폰을 열어 화려하게 부풀어 터키 항공에 위풍당당 떠있는 열기구‘사이드 패러슈트’사진을 찾아 기태 눈앞에 내밀었다.
얼마 전, <드론파크>에는 세계적인 명품 열기구‘사이드 패러슈트 500’이 새로 들어왔었다. 이 열기구는 내부공기의 배출방식이 기존 수동 밴트 타입과는 다르게 자연 순환되는 특징이 있어 여러 가지 비행 방식으로 운행할 수 있는 신형 열기구이다. 또한 구피의 재질이 강화 pvc 연질 아스테이지로 만들어져 외부로부터 저항을 최대한 막아 준다고 했다. 비행 중 바람만 도와준다면 먼 거리까지 운행할 수 있다는 거다. 성규는 기어를 이용해서 바람을 모으거나 배출해서 방향을 정교하게 이동할 수 있는 이 기구를 오랫동안 연구하고 공부해 왔다며 기태에게 자신감을 보였다.
“까짓것, 가보는 거야!”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바다를 건넌 남자가 되는 거야. 가문의 영광이지”
일순간 그들은 이마를 맞대고 앉아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소주 한잔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하여 둘은 술기운을 빌어 열기구를 훔쳐 타고 발칙한 장거리 비행을 꿈꾸게 되었다.
이번 달 말은 백 년 만에 슈퍼문을 볼 수 있는 날이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남동풍과 북동풍이 이 제주시 상공에서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뉴스에서는 연신 일기예보를 했다. 슈퍼문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제주의 소용돌이에 주의하여 높은 곳은 피하고 안전한 곳에서 관람을 하라고 기상캐스터가 덧붙였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바람은 패러슈트 500을 안정적인 최상의 높이로 띄워줄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들의 발칙한 장거리 비행 계획은 이랬다. 그날의 소용돌이를 이용해 패러슈트 500을 띄우고, 태평양을 지나 대한민국 하늘을 한 바퀴 구경하고 다시 제주로 돌아와 무사히 착륙하는 것이다. 다시없을 기회였다.
그들은 제일 먼저 드론파크 기계 정비실에서 고가의 액체 프로판 가스 연료를 여러 개를 빼돌렸다. 그리고 간단한 먹거리와 버너, 코펠 같은 것들을 준비해서 바람이 잔잔히 부는 어느 날, 행동 게시 했다.
그날은 기태의 야간 당직 날이었고, 깜깜한 늦은 밤 <드론파크> 언덕 한가운데 위풍당당 정박해 있는 패러슈트 500은 제주 바람으로 가득 찬 모습이었다. 기구는 수십 개의 체인으로 단단히 묶여 있었다. 멀리서 봤을 때는 태양이 달밤에 잠시 내려와 <드론파크> 언덕에서 졸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자 유난히 레인보우색이 좁아졌다가 넓어졌다가 아름답게 부풀어 있어 어두운 밤임에도 불구하고 우아하고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의 호박마차처럼 성규의 눈앞을 가득 채웠다.
무작정 그들은 의기양양 열기구 바스켓에 올라탔다. 그리고 바람의 흐름만 잘 타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묶여있는 체인을 풀었다. 달빛만 깨어있는 늦은 밤. 드디어 그들은 제주 하늘로 조용히 떠올랐다. 성규는 열기구가 하늘로 50미터 정도 떠오르자 점화장치에 첫 불길을 일으켰다. 가스주머니에 서서히 뜨거운 공기가 알록달록한 열기구에 가득 차올랐다. 둘은 상기된 얼굴로 이리저리 기어를 움직이며 소용돌이치는 바람 길을 찾았다. 이윽고 기구는 두둥실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바람 길을 찾은 듯 흔들림 없이 비행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은 아늑한 바스켓에 의지해 제주를 조용히 떠났다.
소용돌이가 잠잠해져 갔다. 기구는 얼마 후 성규의 예상대로 남동풍을 맞으며 북쪽으로, 북쪽으로 둥둥 떠서 어느덧, 제주 하늘을 벗어나 태평양을 향했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날씨는 선선하기만 했고, 유난히 크고 터질 듯이 동그란 슈퍼문이 그들을 두둥실 뒤쫓았다.
그들은 육지보다 하늘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 몽환적인 구름 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성규는 심장이 터져 나와 뜨거운 풍선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열기구를 조종하는 것은 실력이나 테크닉이 아니라 바람과 불과 공기가 한 몸이 되어야 있는 일이었다. 가스 열기로 기태와 성규의 얼굴도 뜨겁게 달구어졌다. 처음 느껴보는 높은 기류에 정신이 어질어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