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 해룡면 풍기리에 바람이 불면<2부>
8. 마지막 성냥개비
by injury time Aug 22. 2023
탁따닥탁..
얼마나 갔을까. 갑자기 그들이 탄 열기구 버너가 이상 반응을 보이며 불꽃이 약해지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러지? 성규야, 얼른 다시 점화 시켜봐!”
성규는 버너의 손잡이를 다시 한 번 잡아당겨 가스를 수동으로 주입시켰다.
“야, 씨발. 안 돼. 가스가 안 나오는 것 같아.”
“이거 왜 이러냐!”
“이러다 가라앉겠는걸.”
열기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고, 어느덧, 바다 한가운데서 그들은 미세하게 가라앉고 있었다. 그들은 가라앉는 열기구를 살리기 위해 이리저리 방향 핸들을 잡아당기고 돌리고를 반복하며 안간힘을 썼다. 가스 주입을 최대치로 높였으나 좀처럼 그들의 기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열기구는 자꾸 가라앉기만 했다.
“성규야, 우선 이런 것부터 던져버리자. 그러면 좀 가벼워지지 않겠냐?”
기태는 바스켓 외부에 매달린 여러 개의 모래주머니부터 하나하나 풀어 바다에 떨어뜨렸다. 하지만 기구는 잠시 바람에 올라타더니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야, 이것도 뜯어버려.”
그들은 바스켓 내부에 설치된 테이블과 의자를 뜯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장 부피가 큰 벤치를 뜯었고 나머지도 모조리 뜯어 바다로 내던졌다. 그들은 기구를 최대한 가볍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스켓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밖으로 집어던졌다. 하지만 열기구는 올라가나 싶다가도 다시 가라앉기만 했다. 달려있는 불필요한 부속품들까지 다 뜯어내 바다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기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가져온 살림들과 소지품까지 열기구 밖으로 던져버렸다. 코펠, 버너, 생수.. 닥치는 모든 것들을 밖으로 던졌다. 그들이 가져온 식량 가방도 버리고 급기야 입고 있던 옷과 신발까지 무게가 되는 건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벗어 밖으로 던져버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열기구는 떠오르지 않았다.
달빛이 구름에 가려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바스켓 안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을 공포에 떨며 그들은 열기구가 추락하는 시간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 바스켓 구석에 작은 성냥조각 두 개가 눈에 띄었다. 기태가 그걸 주워 들며 말했다.
“친구야,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너랑 나랑 둘이야.”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정말.”
“자, 이 작은 성냥으로 결정하는 거야.”
기태가 성규에게 비장하게 제안을 했다. 성규는 한 개의 성냥에 빨간 황을 부러뜨린 후, 멀쩡한 성냥 한 개와 잘 흔들어 섞은 후 두 주먹을 내밀었다. 황 없는 성냥개비를 뽑은 사람이 조용히 밖으로 뛰어내리자는 제안이었다. 더 이상의 고민은 시간낭비였다. 그들은 한 명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목숨을 건 내기를 하고 드디어 성냥 뽑기를 시작했다. 서로 발가벗은 채 그들은 성냥 뽑기를 했고, 결국 기태가 황 없는 성냥을 뽑고 말았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 자리에서 황 없는 성냥을 움켜쥔 채 기태는 바스켓 밖으로 몸을 던졌다.
그곳이 바로 풍기리 앞바다쯤이었을 것이다.
기태가 밖으로 뛰어내리자 신기하게도 그때서야 열기구는 가벼워졌는지 하늘로 떠올랐다. 그리고 성규만을 태운 열기구는 바다를 벗어나 육지 어디 매로 바람 따라 흘러갔다. 기태는 결국 부러진 황 없는 성냥개비를 손에 꼭 쥔 채 풍기리 앞바다에 빠져 죽었고, 깊은 바다로 떠내려가지 못하고 풍기리 해변으로 밀물에 떠밀려 발가벗겨진 모습 그대로 사망한 채 발견되고 말았다.
기태 시신 옆에는 그들이 급하게 벗어버린 옷과 신발, 가방까지 같이 떠밀려왔으니, 이제 신원파악은 된 것이고 얼마 후 그가 열기구를 훔쳐 타고 가다가 사고로 바다에 빠져 죽었다는 뉴스 기사가 나왔다. 하지만 성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연료도 다 떨어지고 식량도 없고, 게다가 그는 발가벗고 있지 않나 싶은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