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순천시 해룡면 풍기리에 바람이 불면<3부>

10. 북카페 <파우스트>

by injury time

고갈비집은 일주일째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가게에 안채가 있었으나 인기척도 없었다. 상식은 출퇴근길마다 고갈비집을 기웃거렸으나 가게 안은 조용했고 은옥은 연락조차 되지 않았다. 그날 옷을 훔쳐간 사람이 마을사람 누구인지 밝혀내지도 못한 채 상식은 은옥 얼굴만 눈앞에 삼삼했다.

철룡도 상식 못지않게 은옥을 찾아 헤맸다. 은옥의 옷까지 내다 버렸다는 괜한 죄책감에 은옥을 걱정했다. 철룡은 뱃일도 내팽개치고 고갈비집 건너편 커피집에 앉아 고갈비집에 누가 오고 가나 지켜보며 하루를 보냈다. 상식이 고갈비집을 기웃거릴 때마다 철룡은 그날의 광경이 떠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검게 그을린 철룡의 광대뼈가 터질 듯이 일그러졌다.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은옥은 긴 머리를 자르고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해룡면에 나타났다. 은옥은 단발머리를 귀 옆으로 꽂고 청바지에 수수하게 흰 셔츠의 단추 하나를 푼 채 경쾌한 소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주방 이모를 새로 모셔왔다며 오랜만에 고갈비집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사장님, 어디 갔다가 이리 한참 만에 문을 엽니꺼?"

콧털 하나가 삐죽 삐져나온 철룡이 벌겋게 달구어진 자신의 귓불을 잡아당기며 날아갈 듯 은옥에게 아는 척을 했다. 입술은 어느새 침이 잔뜩 고여 연신 닦지 않으면 후루룩 흐를 지경이다.

"호호. 철룡씨가 이리 걱정을 해주는데 빨리 와야지요. 주방 이모 모셔 오느라 시간이 여러 날 걸렸네요."

주방이모는 아주 무뚝뚝한 여자였는데 철룡에게 눈길도 안 주고 주방식기만 우악스럽게 닦으며 자기 일에 바빴다. 상식도 어느새 소문을 들었는지 가게 밖에서 기웃거리며 은옥에게 말 붙일 구실을 찾는 눈치였다.

"오늘 마을금고 직원들이랑 점심은 여기서 먹어야겠네요. 허허"

해룡면 삼거리 고갈비집은 오소독소, 오랜만에 참 애매한 분위기다.

고갈비집 문 앞에 기대 담배나 뻐금뻐금 피워대는 상식,

은옥의 빗자루를 빼앗아 테이블 사이를 열심히 청소하는 철룡,

듣는 중 마는 둥 카운터에 앉아 폰만 두드리고 있는 은옥.

셋은 각자 다른 생각으로 속이 요랑요랑해 보인다. 그와 중에 다리를 꼬고 앉은 은옥의 청바지 밑단 사이로 보이는 복숭아뼈 옆, 사과 모양 타투가 눈에 들어온 철룡과 상식은 그녀의 사과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은옥은 역시나 역시나 였다.

풍기리는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청년의 사연이 뉴스에 나온 후로 어이없게도 관광객이 늘었다. 이유는 바다가 깊지 않고 떠내려가도 멀리 가지 않아 호수처럼 안온하여 물놀이하기 좋은 해안가로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해안가 낡은 횟집을 개조해 작은 북카페 <파우스트>가 문을 열었다. <파우스트>는 직사각형 격자무늬 유리창이 있는 묵직한 현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면 원목 4인용 테이블 여섯 개가 띄엄띄엄 배치되어 있고, 여인이 손으로 머리를 괸 채 옆으로 누워있는 특이한 디자인의 원목 책장이 약간 디긋자로 길게 만들어져 있다. 독특한 인테리어다. 옆으로 누운 책장은 높고 낮은 곡선을 따라 유영하듯 책들이 꽂혀있다. 책들은 국내파와 해외파로 구분되어 있거나, 소설과 비소설로 분류되어 있거나, 아니면 크고 작은 책들이 마음대로 옹기종기 꽂아져 있거나, 아무튼 친근하고 익숙하게 마음대로 정리되어 있어 사장님의 자유로운 성품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서 큰 걸음으로 서너 걸음 걸으면 카운터다. 카운터는 술집의 바처럼 꽤 긴 테이블이 있고, 그곳에 앉으면 멋진 사장님이 차 또는 커피를 제조하는 것을 눈앞에서 볼 수 있고, 노닥거릴 수도 있다.

신비로운 <파우스트> 북카페는 들어오기만 하면 책을 빼서 들춰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주 흐릿하게 항시 재즈가 흘러나와 지적 허세가 저절로 뿜어져 나오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50대 초반의, 믿어지지 않지만 싱글남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원래 곱슬머리인지 핑클 펌을 했는지 중년 남자치고 약간 긴 웨이브가 꽤나 자연스럽다. 게다가 나이에 맞지 않게 은회색 브릿지를 넣은 듯 왼쪽 가르마를 사이에 두고 한쪽만 은발이 갈래갈래 섞여있어 신비롭다. 평생 펜대만 굴렸는지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던 모양으로 살집 없이 하얗고 길고 여린 손가락으로 제법 멋지게 녹차라떼를 휘핑한다. 그가 손등부터 까만 털이 숭숭 난 팔목을 걷어붙이고 행주질을 할 때면 그게 뭐라고 힘줄이 울퉁불퉁 제멋대로 튀어나와 있었다.

나른한 오후, 늘 데님 앞치마를 두르고 그 앞치마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북카페 밖을 서성거리면 조개잡이를 하던 동네 아낙들이 멀리서부터 하나같이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서울에서 사업을 크게 하다가 보증을 잘못 서서 재산을 몽땅 말아 먹고, 아부지가 물려주신 땅 팔아서 큰 맘 먹고 어촌 마을로 이주를 왔다는 그는, 개명한 건지 모르지만 참 멋진 이름까지 갖고 있었다. 사장의 이름은 송시인이었다.

[계속]




keyword